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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칠순에도 식지 않는 거장의 열기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칠순에도 식지 않는 거장의 열기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8.10.1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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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은이 만난 사람
ⓒSihoonKim-TIMF2018-0014
ⓒSihoonKim-TIMF2018-0014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는 큰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는 통념을 깨고 1967년 리벤트리트 콩쿠르 우승을 거머쥐었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그녀는 한국 음악가들에게 열정과 희망의 밑그림을 제시한 바이올리니스트다. 공연을 앞두고 또 다른 기대에 부푼 그녀를 KBS 양영은 앵커가 인터뷰했다.[Queen 9월호]
 

P1 칠순의 바이올리니스트, 스물다섯살 피아니스트의 6년만의 재회

“아주 신비로운 연주가 나올 것 같아요.” 2012년에 이어 환상적인 듀오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정경화&조성진 듀오 리사이틀>. 2015 쇼팽국제피아노콩쿠르 우승 후 세계무대에서 맹활약 중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멘토로도 유명한 정경화 선생은 이번 듀오에 대한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일찍이 ‘천재’라는 찬사를 받은 두 음악가는 그런 찬사에도 불구하고 매사에 겸손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에 6년 만에 이뤄지는 두 아티스트의 만남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양영은_곧 화려한 개막을 앞둔 <정경화&조성진 듀오 리사이틀> 콘서트 티켓이 오픈 2분 만에 매진됐다고 들었습니다. 그만큼 이번 콘서트에 대한 음악팬들의 기대가 큰데요,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정경화_글쎄요. 제가 평생 추구했던 게 ‘즉흥성’인데요. 이번에 연주할 때는 그게 ‘도전’이 될까요? 즉흥 연주는 서로 얼마나 믿느냐의 문제거든요. 연주자들이 함께 가야 해요. 그래서 이번 공연에서 흥미로운 연주가 이뤄지지 않을까 더욱 기대됩니다. 특히 한두 번만의 무대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방과 서울을 순회하는 콘서트잖아요. 매 공연 때마다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 매우 행복할 것 같아요. 보통 여러 도시를 돌면서 하는 협주는 뒤로 갈수록 좋아지는데요, 첫 번째 공연 때는 모든 것을 확 집어넣고, 그래서 두 번째는 항상 힘들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서 세 번째는 늘 어렵고, 네 번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기가 원하는 걸 조금씩 추구할 수 있지요. 이번에 조성진과 함께 꾸리는 듀오 리사이틀에서는 아주 ‘신비로운 연주’가 나올 것 같습니다.

양영은_이번 듀오의 파트너인 조성진 씨는 선생님의 멘티이자 후배인데요. 선생님께서 본 조성진 씨는 어떤 음악가인지요?
정경화_성진이는 자신의 갈 길이 아주 뚜렷해요. 무척 특별한 재주를 타고난 사람이죠, 음악가로서도, 아티스트로서도 앞으로가 정말 기대되는 후배이지요. 굉장히 현명하기도 하고요. 자기 포커스가 확실한 데다 ‘내가 필요한 게 뭐고, 그것을 어떻게 충실히 터득하면 되는지’를 누구보다 잘 파악해 추진해 나갑니다. 또 말도 못하게 겸손하지요. 제가 보기에는 현재 본인이 원하고 추구하는 대로 잘 성장하고 있어요. 저 역시 옆에서 그 친구의 결정이나 판단을 보면 ‘아, 확실히 다르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니까요. 다만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스스로 몸 관리를 잘 하고 자신만의 타이밍을 잘 지켜갔으면 해요. 연주를 많이 하는 것도 좋지만, 그 가운데서 자신이 즉흥적으로 할 수 있는 경지까지 오를 수 있는 ‘준비’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양영은_두 분은 서로 닮은 점이 많으세요. 선생님도 성진 씨도 6살 때 각각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시작하셨잖아요, 그러다 선생님께서는 바이올린을, 성진 씨는 피아노를 선택했고요. 또 두 분 다 ‘천재’ 소리를 들으시지만 극구 사양하시면서 ‘우리들은 크리에이터(창조자)가 아닌 리크리에이터(전달자)에 불과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겸허한 자세까지도 닮으셨어요.
정경화_지금 성진이와 제가 조화되어 연주한다는 게 ‘기적’이에요. 제가 2012년 연주 때 만났던 열일곱 살 성진이와 현재의 성진이는 하늘과 땅 차이에요. 그 과정을 제가 다 지켜봤기 때문에 이번 연주가 진행되는 것 자체만으로도 흥미를 넘어 굉장한 기대감을 갖게 해요. 이번에는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매 무대 상황을 흡수해 어떻게 다시 청중들한테 돌려줄 수 있을까 하고요. 무엇보다 저희 연주를 들으러 올 관객들의 참여가 정말 중요할 텐데요, 음악에 담긴 깊이와 아름다움을 전달할 때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신다면 아주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메시지를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이번 무대에서 저도 제대로 불붙을지 몰라요.(웃음)

양영은_선생님이나 조성진 씨 같은 분들을 뵈면, 한국 음악가들은 정말 대단하다는 경외감이 듭니다.
정경화_클래식이라는 서양 고전 음악의 역사가 한국에서는 몇 십 년 밖에 안 됐는데도 한국 음악가들은 세계무대를 정복했어요. 한국인들의 독특한 재주는 우리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저희가 얼마나 피눈물을 흘린 민족입니까. 음악은 즐거운 웃음도 필요하지만 눈물이 제일 중요하거든요. 우리 속에 있는 피눈물이 흘러 웃음까지 이어진 거지요. 예술적인 재능이 있는 데다 고집도 너무 세서 자기 개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기가 막힌 요소를 찾아 계속 발전해나가는 거예요. 음악가뿐만 아니에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표현력도 뛰어나고, 예술적인 재능 면에서도 개성이 분명해요. 예술에서는 자기 개성을 얼마나 뚜렷하게 나타낼 수 있느냐가 중요하거든요, 같은 도자기를 빚더라도 거기서 살아 숨 쉬는 기운이 느껴지느냐 아니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그런데 그 느낌은 아티스트, 즉 예술가한테서 나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들은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어느 청년이 가마에서 도기를 구울 때 ‘아, 최고로 기가 막힌 도자기를 만들려면 마지막에 내 혼을 집어넣어야 하는구나, 그러니까 내가 가마에 뛰어들면 여기서 나오는 건 누구보다도 더 독특한 무엇인가이겠구나’ 하고 뛰어들어요. 저는 일곱 살 때 그 이야기를 대하고는 소름이 쫙 끼쳤어요. ‘아, 이게 음악이지. 연주할 때마다 내가 가마 속에 뛰어들어야 하는구나!’라는 게 마음에 딱 와  더라고요.

양영은_그래서 지난 5월에 발매하신 앨범 <Beau Soir>를 녹음하실 때도 ‘죽을힘을 다해서 레코딩했다’고 말씀하셨던 거군요.
정경화_죽을힘은 누구나 다 합니다. 한국 민족은 어쩌면 다들 그렇게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사는 민족인지 몰라요. 제가 말은 ‘죽을힘을 다해서 했다’고 하지만 사실 그러면서도 너무 모자란다고 생각해요. 죽을힘을 다한다고 했는데 죽을힘을 다하지 않은 거지요. 해놓고 나면 항상 모자란 것 같아요. 그래서 녹음을 하고 난 뒤에는 스스로 너무 수치스러워서 들을 수가 없을 정도로 괴로웠어요.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이제는 많이 내려놨습니다. 옆에서 ‘괜찮다’고 하면 저 자신도 ‘괜찮아, 괜찮아’라고 해요. 예술가들은 자신의 모자라는 점에 대해 한도 끝도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감동을 한다고 하면 거기다 대고 제가 감히 ‘이게 글렀느니, 저게 글렀느니’ 하면 안 되는 거니까요. 음악이라는 것은 얼마만큼 듣는 사람의 귀를 통해 들어가 마음을 울리며 그 안에 신비스러운 세계를 펼치느냐 하는 것이에요. 요즘은 좀 불만족스러워도 그렇게 제 마음을 토닥거리고 달랩니다. 그러면서 할 수 있는 노력은 계속하면서 잠깐이라도 제 음악을 듣는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는 데에서 벅찬 보람을 느껴요.
 

P2 다시 태어나도 바이올린을 잡을 것인가?

ⓒSihoonKim-TIMF2018-0009
ⓒSihoonKim-TIMF2018-0009

평생을 바이올린에 흠뻑 빠졌던 정경화. 그녀는 다시 태어난다면 바이올리니스트 대신 세상을 두루두루 경험하면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보다 풍성하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유로운 경지에 이르고 싶다는 뜻에서다. 그러면서도 후배 음악가들에게는 소중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정경화 선생. 그녀가 말하는 ‘오랜 인내’가 빚어낸 ‘정경화’라는 다이아몬드가 신비로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양영은_선생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 ‘처절하다’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선생님은 다시 태어나도 바이올린을 하실 건가요?
정경화_아니요. 저는 다시 태어나면 바이올린을 안 할 거예요. 최근에 생각했습니다.

양영은_왜죠?
정경화_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라는 책이 있잖아요. 깨우침, 부처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데요. 거길 보면 여러 단계를 지나야 비로소 자유로운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돼 있어요. 인생을 살면서 여러 경험을 하고, 많은 것을 다 극복해야 한다고요. 그런데 너무 한 악기에만 매달리다 보면 아무래도 한쪽으로 치우치는 삶을 살게 되지 않나 싶어요.

양영은_그럼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을 하시고 싶으세요?
정경화_우선 인간으로서 세상을 두루두루 살펴보면 좋겠어요. 지금껏 제가 보지 않은 것 중에 보고 싶은 게 꽤 많거든요. 물론 저도 그동안 세계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아무래도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데 도움 될 만한 것 위주로 봤어요. 박물관에 가도 미술 작품들만 굉장히 집중해서 봤지요. 미술과 음악은 예술적으로 연결돼 있으니까요. 나름대로 책도 많이 읽으면서 저 자신의 색채와 여러 가지를 이해한 후 서로 연결시켜내려고 노력도 했고요. 특히 작곡가들은 천재적인 재능을 받아 그걸로 몸부림쳐가며 음악을 만들어내는데요. 저는 그중에서도 아주 작은 부분 하나를 가지고 평생 곱씹으면서 터득해갔어요. 그러면서 그것이 말도 못 하게 깊이 들어갈 수 있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런 삶보다는 완전히 다른 방면으로 치우쳐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최근 들어서 해봤습니다.

양영은_후배 음악가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고 계시잖아요.
정경화_그럼요. 저는 지금 정말 행복해요. 특히 우리 후배들이 클래식 음악사에서 한창 반짝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능 면에서도 그렇고, 정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지요. 지금의 자신을 제대로 지키면서 ‘오랜 인내’를 가지면 그 끝에 터득하게 되는 것과 그 깊이는 상상도 못 할 만큼 창조적일 거예요. 앞으로도 우리 후배들은 정말 흥미로운 시나리오를 펼치게 될 것 같아요.

양영은_‘오랜 인내’라고요?
정경화_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청년이 가마 속에 뛰어든 이유가 뭘까요? 제가 일곱 살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언제 가마에 뛰어들어야 저런 걸 만들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가 목표한 것을 끌고 갈 수 있는 게 인내예요. 신앙적으로도 그렇잖아요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다.’ 오랫동안 참고 견디어낼 때만이 거기서 가장 순수한 것을 찾을 수 있어요.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순수성’이거든요. 무슨 일이 있어도 주위 상황에 좌우되지 않고 꼭 지켜가야 할 게 있을 때 ‘인내’가 필요하지요. 거기에서 정말 오랫동안 지켜온 신비함을 발견할 수도 있어요. 마치 다이아몬드처럼요. 그걸 다듬어서 신비스러운 빛을 낼 수 있게 하는 건 결국 자기 노력에 따른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또 절대 급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자기 시간을 만들어 개성을 살려야 해요. 좋은 기회는 잡아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떻게 자기만의 공간을 늘릴 수 있는지, 그 부분에 가장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시대 젊은이들은요.

P3 칠순에 꾸는 꿈

‘예술은 죽을 때까지 터득해 가는 것이다.’ 인생 역시 매한가지라는 정경화 선생. 그녀는 70년 인생살이에 스스로 깨우친 삶에 대한 지혜를 기꺼이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손녀딸을 바라는 소박한 소원도 빌었다. 일가를 이룬 칠순 거장의 꿈.

양영은_선생님께선 올해 칠순을 맞으셨어요. 그만큼 인생에 대한 깨달음도 깊어지셨겠죠?
정경화_제가 지금까지도 바이올린을 잡고 있는데요. 예술을 한다는 건 죽을 때까지 터득해 가는 것 같아요. 제가 며칠 후에 <브람스 콘체르토>도 연주해야 하는데 55년 동안 아무리 이해하고 터득하려고 해도 한도 끝도 없어요. 그게 또 인생이고요. 인생이란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얼마만큼 자기가 그걸 되씹고 신비로움을 느끼며 터득해나갈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행복은 자기 손 안에 있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이라고 봅니다.

양영은_지금 소원이 있으시다면요?
정경화_저를 기절할 만큼 행복하게 만들어줄 소원이 하나 있는데요, 손녀딸을 보는 거예요. 제 밑으로는 어떻게 사내아이들 밖에 없는지.......(웃음)  

양영은_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정경화_저는 살아 있는 한 음악을 쭉 끌고 갈 거예요. 마지막 숨이 넘어갈 때도 ‘아주 무의식적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전달하는 게 음악이다’라는 생각을 할 겁니다. 여기서 ‘무의식적’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무의식적이라는 것은 아무런 조건이 안 붙은 거예요. 그래야 사람들이 제 음악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어요? 사람들이 조건 없이 제가 하는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들어준다는 것도 매우 행복합니다. 하지만 저는 말보다 음악으로 표현하는 사람이지요. 그래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음악은 춤’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음악을 너무 심각하게 듣는 것을 원치 않아요. 그리고 지금 한국에 와서 이렇게 사랑을 많이 받고 산다는 게 정말로 제게는 큰 힘입니다. 고맙습니다.(위 인터뷰는 지난 9월 조성진과 듀오 리사이틀을 앞두고 진행되었습니다)
 

#에필로그
정경화 선생의 최근 앨범에는 <자장가>가 수록됐다. 얼마 전 결혼한 아들이 손녀를 얻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손녀딸이 나오면 그 자장가를 직접 틀어주고 싶다는 정경화 선생. 그녀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해본다. 이 인터뷰를 정경화 선생이 추천하는 곡들과 함께 직접 들어보고 싶다면 팟방에서 ‘디토 클래식’ 팟캐스트 클릭!

인터뷰 KBS 양영은 앵커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뮤직앤아트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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