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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자수의 예술성 확보한 자수계의 레전드, 남상민 명예회장
전통자수의 예술성 확보한 자수계의 레전드, 남상민 명예회장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8.11.11 1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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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자수의 경지를 공예에서 예술로 끌어올린 그녀의 자수 작품에서는 예술성과 더불어 여성성이 짙게 묻어난다. 펑생을 자수 문화와 예절문화 확립에 힘써 온 남상민 한국자수문화협의회 명예회장을 만나 그녀의 예술세계와 삶에 대해 들었다.
취재 백준상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회화 작품이다. 그러나 가까이 가보면 회화보다 더 정교한 자수(刺繡) 작품이다. 그중 <신선도>는 하늘, 땅, 나무, 흙 등 대자연을 배경으로 신선을 표현한 작품이다. 10폭 병풍에 대자연의 풍경을 신선과 함께 표현하여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대작인 <산신도>는 또 어떤가. 신선과 함께 그려진 호랑이가 표구에서 막 튀어나올 듯하다. 화난 호랑이를 다잡는 신선의 인자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자수가 생생한 것은 일일이 실의 색감을 다르게 해 원근감마저 표현하기 때문이다. 자수 작품이 수채화보다 더 정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서울 남가좌동에 위치한 남상민자수문화전시관에서는 이 같은 남상민 자수 작가의 주옥같은 자수 작품과 틈틈이 직접 만든 자수장, 다기세트, 꽃신, 꽃버선, 보서감, 족두리, 귀주머니, 염낭 등 전통공예품 15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한국 자수문화의 걸작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남상민 작가는 자수에서 일가를 이룬 명장(明匠)이다. 많은 자수 기법을 개발하는 등 한국 현대 자수문화의 근간을 그녀가 이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세기 이상을 자수와 교육에 몸바쳐온 인물로 한국자수문화협의회 명예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장인을 넘어 예술가로 나아간 자수 작가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전통자수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자수를 인위적으로 꾸미기보다는 대자연 그대로를 담으려 했습니다. 인간이 잠재의식적으로 지니고 있는 창의력을 대자연과의 대화를 통해 풀어냈지요.”

남상민 명예회장은 자수 작품에서 창의력을 매우 중요시 했다. 그녀는 “머리로 수를 놓고 손은 노예일 뿐”이라고 말한다. 단순한 장인이기보다는 예술가의 길을 걸어온 그녀다. 부처의 일대기를 담은 ‘자수팔상전’ 등 문화재급 작품을 제작했다. 영국 런던의 해사기구에 그녀의 작품이 대한민국의 대표작품으로 기증된 바 있으며, 고 이승만 전 대통령도 그녀의 작품을 두 점이나 소장했었을 정도이다.

그녀에게 자수는 다양한 감각과 기술을 요하는 복합예술이다. 밑그림 스케치, 채색, 건조, 수놓기 등 여러 과정에서 정성과 인내로써 작품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다. 그리하여 자수가 기술이 아닌 예술, 그리고 문화로 인정받게 만들었다.

한국자수 수법에서 서양자수 수법까지 동원하고 세사, 극세사, 중세, 대사, 합사 등 다양한 소재와 굵기로 수를 놓으며 그녀는 자수 표현의 한계를 없앴다. 그리고 그녀의 작품에는 항상 대자연과 더불어 인간이 등장한다. 사람의 감정을 대자연을 보면서 순화시키려 했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대자연과 공유, 공존, 공생하고자 하는 그녀의 철학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예부터 자수는 가부장적 남성중심의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전유물로서 한편으로는 폄하의 대상이기도 했다. 한 땀 한 땀 정성과 인내로써 수를 놓아가는 것은 여성들이 인고의 삶을 헤쳐 나가는 방식과 다를 바 없지만 남 명예회장은 예술로의 승화로 이끌었다.

남 명예회장은 “자수문화는 작품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면서 “사람은 예와 덕을 갖추고 대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그녀의 생각은 후세에 대한 교육으로 연결된다. 그녀는 17년간 모교인 동명여고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자수를 가르쳤으며, 여러 대학에서도 강의를 통해 자수를 전수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예를 가르치는 일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다. 그녀는 교육으로써 자수와 예절을 전수하는데 한 평생을 바쳤다.

남상민 명예회장의 자수작품들
남상민 명예회장의 자수작품들

 

교육으로 예절문화 보급에도 크게 힘써
남상민 명예회장에게 자수는 예를 갖추고 대자연을 받아들이는 좋은 방법이었다. 그녀는 예(禮)를 예의, 예절, 예법 등 세 가지로 분류했다. 먼저 예의는 대자연을 접하는 느낌부터 혼자 행하는 모든 관습을 말하며, 예절은 두 사람 이상에서의 제도와 절차로 교양, 인품, 인성, 품위 등을 망라한다. 예법은 예에 있어서는 헌법과 같은 존재이다.

남 명예회장에게 자수는 대자연과 교감하고, 대자연과의 공생의 철학을 확고히 하는 매개였다. 그녀에게 예는 비단 인간 사이에서만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대해서도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자연과의 공존과 공생으로, 인간 또는 신과 대자연을 함께 표현하는 자수 작품에서 잘 드러난다.

남 명예회장은 1988년에 서울시 교육감의 권유로 사단법인 한국예절문화원을 설립하여 88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대국민 예절교육을 시작하였다. 그녀는 일반 예절만이 아니라 예법에도 정통해 각종 전통행사에서 자문 역할을 하였으며 방송에서도 2년간이나 가정의례를 강의하였다.

“사람의 일심 중에는 지혜가 으뜸입니다. 지혜로부터 사고, 철학, 삶의 방식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나무의 뿌리와 같습니다. 지혜를 갖출 수 있는 인성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 명예회장은 (사)한국예절문화원과 인성HRD평생교육원의 이사장을 겸하며 아직도 한국의 ‘예문화’와 ‘정신문화’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대학, 대학원, 중소기업, 대기업 등으로부터 강연 요청이 쇄도해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이렇게 자수에 이어 예를 가르치며 그녀는 반세기를 보냈다. 쉴 틈이 없어 남들 다하는 여행이나 노래방 한 번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교육으로써 국가와 민족에 대한 공헌으로 그녀는 국정교과서 집필위원장을 18년이나 맡았다. 김영삼 정부에서부터 현재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기도 하다.

남 명예회장은 “후손들이 잘 못하면 한국의 예문화가 없어질 수 있다”면서 “예절을 가르치는 교육프로그램이 점점 없어지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녀는 고리타분한 형식에 얽매이는 예절을 배격한다. 예절은 형식에 앞서 마음이 중요하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여성성의 승리, 자수 박물관 세우는 게 꿈
남상민 명예회장은 교육자인 아버지가 있는 다소 엄격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아버지 앞에서 무릎 꿇고 예절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것이 현재 예절 교육을 펼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고교시절부터 수를 잘 놓아 교장이 교장실 옆에 특별공간을 만들어주어 틈틈이 수를 놓을 수 있었다. 성실성이 대단해 6.25전쟁으로 한강대교가 끊어진 상황에서도 새벽에 일어나 임시 고무다리를 건너 서울 상도동 집에서 서대문 동명여고까지 등교하기도 했다.

대학은 수도사범대를 나왔고 이화여대 장선희 교수, 숙명여대 전명자 교수 등으로부터도 자수 가르침을 받았다. 대학 졸업 후에는 국립중앙직업보도소의 자수 시험에 합격하여 국비생 교육으로 교육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녀는 그때부터 교육자로서의 사명감을 느꼈다고 했다.

17년간의 동명여고 교사생활을 마치고 2년제 대학 졸업자로서는 드물게 모교인 수도사범대 강사로서 후배들에게 자수를 가르쳤다. 당시 급박한 상황에 투입되어 후배들을 직접 집에서 지도하기도 하며 자수 작품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그 이후 인하대, 동덕여대, 한성대 등 여러 대학에서도 학생들에게 자수를 가르치고, 자신의 자수 작품들을 모아 개인전을 열었다. 당시에는 자수는 배워서 뭐 하느냐는 식으로 말하는 남성들이 적지 않았다. 여자는 고등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당시 분위기 때문에 부모 몰래 대학원에 등록해 5년간 공부하기도 했다.

이러한 남성중심사회에서 남상민 명예회장이 자수와 교육 분야에서 이뤄낸 성취는 놀랍다. 자식들에게도 재능을 물려주고 교육도 잘 시켜 다섯 딸 모두 바르게 자라나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사회활동에도 나서고 있다. 특히 넷째 딸인 전재희 씨는 한국예절문화원 원장으로 어머니의 일을 잇고 있다.

이제 남 명예회장의 소원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을 기꺼이 받아줄 곳을 찾아 자수 박물관을 여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대중과 더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하는 곳에 모든 작품을 기증키로 했다고 밝혔다.

예술성과 더불어 여성성이 듬뿍 녹아있는 남상민 명예회장의 자수 작품들. 하루 빨리 자수 박물관이 세워져 그녀의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흥을 줄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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