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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서울대 교수 ‘자꾸 욱하는 당신을 위한 심리 처방전’
윤대현 서울대 교수 ‘자꾸 욱하는 당신을 위한 심리 처방전’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8.11.12 1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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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머리 좀 식히세요"
윤대현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요즘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외래어 1순위는 무엇일까? 바로 ‘스트레스’다. 사회생활을 하며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오는 갈등 때문에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이들이 많다는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들 대부분은 마음의 에너지가 다 방전된, 즉 번아웃 신드롬에 빠져 있다. 우리말로는 소진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꾸 욱하는 자신이 쌈닭이 될까 봐 두렵다면 그의 심리 처방전을 받아 볼 때이다.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다.’

이 말 한마디가 극도로 공감 가는 이라면 혹시 자신이 현재 소진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 소진 증후군은 번아웃의 순 우리말로, 마음의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를 말한다. 뇌의 에너지가 다 타 버린 것이다. 이 정신 질환의 증상은 아주 뚜렷하다.

윤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일단 의욕이 떨어진다. 일에 열정적이었던 자신은 어디로 가고, 이제는 의욕이 제로. 더 이상 일을 하고 싶지 않다. 온갖 의지를 동원하려고 애를 써 봐도 동기 부여는 쉽사리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성취감도 떨어진다. 분명 열심히 노력해서 무언가 목표를 달성했는데도 만족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공감 능력이 현저히 결여된다.

공감은 남을 위로하는 능력이자 자신이 남에게 위로받는 능력이기도 하다. 본인이 지쳤을 때 상대방에게 따뜻한 감성 에너지를 받아 충전해야 하는데, 주기는커녕 받는 것조차 잘 안 되는 마음 상태가 돼 버린 것이다. 갑자기 이 사람이고 저 사람이고 다 싫어졌다는 사람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외 도저히 주체가 안 되는 감정과 스트레스에는 단것만 찾는 습관, 불면증, 공황장애 등도 소진 증후군의 여러 증상 중 하나다.

“그동안 감성의 뇌를 주로 쓰다 보니 스트레스성 뇌 피로증이 온 거예요. 뇌는 스트레스를 받아 피곤하면 거기서 도망가고 싶어 해요. 요즘 사람 만나기도 싫고 혼자 있고 싶으며 어디로 훌쩍 떠나고 싶지 않으세요? 실제로 요즘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자신도 모르게 인터넷 검색 창에 ‘이민’이란 단어를 검색한다는 환자들이 꽤 많습니다.”

번아웃 증후군 환자 양성하는 피로 사회

현대인들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감성 노동 속에 살고 있다는 윤 교수. 감성 노동은 최전선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현상이 결코 아니란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곧 감성 노동이지요.”

이는 감성 에너지가 충전이 아닌 방전, 사용 상태로 계속 스위치가 켜질 수밖에 없는 원인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렇게 소진된 개인이 모이면 사회가 피로해진다는 데 있다. 더 나아가 피로한 사회는 개인을 더 소진시킨다. 개인과 사회 시스템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근래 번아웃 증후군 환자가 마치 전염병처럼 널리 번지고 있는 이유다. 더욱이 과중한 역할과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고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은 한국 사회에선 누구나 뇌의 피로를 느끼게 되고, 그로 인한 무기력과 회피, 갈등을 쉽게 경험하는 터다.

이어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은 스트레스성 뇌 피로증의 2단계 합병증. 회피 행동이 길어지면 3단계 합병증이 나타난다. 행복에 대한 내성이다. 이전에 즐거웠던, 행복했던 일들이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 무감동은 미래 충격의 극심한 증상이다. 세상의 정보와 자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감성 예민도를 0으로 떨어뜨리게 되면 고독과 좌절은 물론 따뜻한 위로와 작은 행복들도 느낄 수 없게 된다. 그나마 우울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자기감정 시스템이 과도하게 작동하기는 하나 생존을 위해 뜨겁게 반응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에 윤 교수는 진짜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를 없애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놀아라. 그게 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지금의 스트레스를 잘 관리할 수 있을까? 그의 저서 <잠깐 머리 좀 식히고 오겠습니다>라는 책 제목에 모든 답이 다 들어 있다.

진료실을 넘어 라디오와 방송, 칼럼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심리에 명쾌한 처방과 따뜻한 위로를 건네 온 윤대현 교수. 그는 자꾸만 욱하게 된다는 사람에게 ‘화나게 하는 상대를 향한 최고의 복수는 나의 행복’이라고 말하며, 스트레스 때문에 단것에 중독된 이에게는 ‘심리적 허기를 채우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윤대현 교수.
윤대현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먼저 아무리 먹어도 배고프다는 이들이 꼭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 있다. 소진 증후군은 심리적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복부 비만도 소진 증후군의 합병증 중 하나다. 마음도 서글픈데 몸매까지 망가지고 건강도 망치게 되니 분노가 더 쌓인다. 세상도 싫고 내 몸도 싫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안 먹으면 그만 아니라고? 안타깝게도 식욕 조절은 감성의 뇌가 담당하고 있다. 우리가 느끼는 허기의 최소 4분의 1, 때론 반 이상이 심리적 허기, 정서적 허기이다. 배가 아니라 마음이 고파서 먹는다는 뜻이다.

이에 잠깐이라도 머리를 ‘제대로’ 식히기 위해서는 뇌과학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특히 최근 뇌과학 연구는 ‘일한 자여 놀아라’가 아니라 ‘놀아라. 그게 일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조정 신경망에 대칭되는 신경망으로 디폴트 신경망이 있다. 말 그대로 기본 신경망,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 기본적으로 활성화되는 태스크 네거티브 네트워크다. 멍 때릴 때 작동하는 뇌 안의 신경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한심해 보이는 멍 때릴 때 작동하는 디폴트 신경망이 활성화되어야 창조적 아이디어 창출이 잘 일어나요. 좋은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회의 시간에 골몰할 때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다가 잠시 화장실 가서 앉아 있는데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험 있으시죠? 이게 디폴트 네트워크가 활성화된 결과입니다. 따라서 죽어라 일만 하는 것보다 뇌를 놀게 해 줘야 오히려 문제 해결의 답이 될 아이디어가 나온답니다.”

연결을 위한 단절이 필요해

바야흐로 연결을 위한 단절 훈련이 절실해진 요즈음. 그는 디지털 세상을 주도했던 미국의 실리콘밸리 경영자들에게서 연결을 위한 단절 훈련이 유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 마디로 마음에 자유를 주는 마인드 바캉스 훈련이지요.”

바캉스의 어원은 ‘자유를 찾는다’에 있다. 마음의 자유를 정신의학적으로 설명하면 ‘거리를 둠’이다. 맹렬히 작동하던 전투 시스템의 스위치를 잠시 끄고 한 발짝 치열한 삶에서 거리를 둔 채 떨어져 뇌를 이완시키며 충전 시스템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하루에 10분이라도 외부 정보와 연결을 끊는 단절 훈련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연결을 위한 단절 훈련의 효과는 매우 크다. 자신의 내부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도 키워 준다. 자기가 스스로를 모니터링 하는 능력이 향상되어야 비로소 삶에 여유가 생기고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그는 이야기했다. 채찍질만 해대는 무의식과 시스템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하나의 정보로서 그것을 다룰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마인드 바캉스 훈련법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훈련을 하는 몇 가지 팁을 공개했다. 핵심은 자신의 고민을 들어 줄 타자와의 따뜻한 관계와 뇌의 권태로움을 날려 주는 일상의 취미, 스스로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에 있다.

첫째, 세 번 깊게 호흡하며 그 호흡의 흐름을 느낀다. 출근해서 컴퓨터가 켜지는 동안, 회의 시작 전에 또는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호흡의 흐름을 느끼며 마음을 지켜보는 것이다. 둘째, 조용한 곳에서 밥을 음미하며 먹는다. 음식의 색깔, 향 그리고 밥알의 움직임을 느끼며 천천히 먹는 것도 내부 세계에 집중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셋째, 하루 10분 사색하며 걷는다. 여유롭게 몸의 움직임을 느끼는 경우 뇌의 긴장감이 이완되고 내 마음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긴다. 넷째, 일주일에 한 번 친구와 힐링 수다를 떤다. 지치고 불안한 마음은 내 마음을 바라볼 여유를 빼앗는다. 공감 수다만 한 위로가 없다. 제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 단 한 명만 있어도 행복한 사람이다.

다섯째, 일주일에 한 번씩 슬픈 영화나 슬픈 작품을 감상한다. 즐겁고 재미있는 내용으로 마음을 조정하는 것을 기분 전환이라고 한다. 기분전환만 주로 쓰다 보면 자기 마음의 슬픈 콘텐츠를 바라보는 능력이 줄어든다. 여섯째, 일주일에 세 편의 시를 읽는다. 사람의 마음은 논리보다 은유에 움직인다. 은유에 친숙해지는 것은 내 마음을 바라보는 데 유익하다. 일곱 번째,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당일치기 기차 여행을 간다. 기차 창문을 멍하니 보다 보면 명상 효과가 일어나고, 제 마음을 바라보는 힘이 자란다.

“언뜻 들으면 단순하지만 이런 연습을 하다 보면 자기 뇌가 만들어 내는 생각과 감정이 하얀 스크린에 비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할 거예요. 자유를 찾는다는 어원을 가진 바캉스, 심리학적 자유는 자신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여유에서 찾아온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여유가 창조적 마인드를 갖게 하고, 비즈니스 성공도 불러온다는 것이 최신 뇌과학의 주장이에요. 지친 마음을 공감 에너지로 가득 채워 준다면 결국 우리 마음에 따뜻한 긍정성도 찾아올 거라 믿습니다.”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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