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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전쟁’ 사령탑, 김현미 장관의 16개월
‘부동산 전쟁’ 사령탑, 김현미 장관의 16개월
  • 오수연(자유기고가)
  • 승인 2018.11.1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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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망국병과 숨가쁜 씨름, 집값안정에 정치적 성패 달려'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요즘 들어서 한숨 돌리는 형국이다. 서울 강남 3구를 중심으로 치솟던 집값이 9·13 대책 이후 진정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9·13 대책으로 강화된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투기 목적의 가수요를 차단했고 주택 보유에 대한 세금 부담을 키워 대기수요를 막으면서 내년 상반기까지는 관망세가 유지될 것으로 바라봤다. 부동산 망국병과 전쟁 선언한 김현미 장관의 16개월을 돌아본다.


투기세력과 씨름하며 숨가쁘게 달려온 16개월

지난해 6월 취임한 김 장관은 지난 1년 4개월간 숨가쁘게 달려왔다. 이번 9·13 대책을 포함해 문재인 정부는 모두 8번의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7차례 부동산 대책은 김 장관이 주도했다. 김 장관 취임 직전, 문재인 정부은 처음으로 6·19 부동산대책을 발표하면서 부동산시장을 규제하겠다는 신호를 처음으로 시장에 던졌다. 당시 정부는 청약조정대상지역은 종전 37곳에서 40곳으로 확대하고 이들 지역에서의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각각 60%와 50%로 하향했다.

하지만 집값은 잡히지 않았다. 정부는 두 달 만인 8월 2일 다시 규제 카드를 꺼냈다. 2005년 ‘8·31 대책’ 이후 가장 강력한 규제로 평가되는 ‘8·2 대책’이다. 서울 강남구와 서초·송파·강동·용산·성동·노원·마포·양천·영등포·강서구 등 11개 자치구와 세종시가 투기지역으로 지정됐다. 서울 나머지 자치구와 과천은 투기과열지구로 묶였다.

집값, 문재인 정권 좌우하는 아킬레스건

정비사업 규제도 강해졌다.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조합의 경우 조합설립인가 이후 조합원 지위양도가 불가능해졌다. 또한 투기과열지구 내 정비사업 일반분양 또는 조합원분양에 당첨된 세대에 속할 경우 향후 5년간 투기과열구 안에서 다른 일반분양과 조합원분양 재당첨이 불가능해졌다.

조정대상 지역 안에서는 세금도 늘었다. 다주택자가 집을 팔 때 내야 하는 양도소득세는 최고 62% 중과로 급격히 인상됐다. 장기보유 특별공제도 없어졌다. 양도세 중과는 올해 4월부터 시행됐다. 1주택자의 양도세 비과세 요건은 까다로워졌다. 9억 원 이하로 양도할 때 2년 보유 조건이 2년 거주 조건으로 바뀌었다. 분양권 전매는 보유기간과 관계 없이 양도세율 50%를 적용하도록 바뀌었다.

하지만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한 집값 상승세가 좀처럼 멈추지 않으면서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를 답습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수요를 억제하는 쪽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공급물량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 장관은 때를 기다렸다. 정책이 부동산시장에 반영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보고 외부의 비판에 한 발도 후퇴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강화 카드를 꺼내 들기도 했다.

김 장관의 인내가 성과로 이어진 것은 지난 4월부터다. 양도소득세 중과세를 앞두고 3월 주택 거래량이 급증하기 시작했고 4월이 되자 잡히지 않을 것 같았던 서울 강남권 아파트 매매가격이 하락세로 전환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와 송파구, 강남구, 강동구 등 강남4구의 집값은 4월9일부터 11주 연속 하락하고 있다. 김 장관의 성과를 정치권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가 나타난다. 더불어민주당의 지방선거 압승 이후 전당대회와 맞물려 청와대 내각의 일부 교체설이 돌고 있지만 김 장관의 입지에서 흔들림은 없어 보인다.

보유세 후퇴 이후 강북으로 폭등세 확산
 
하지만 4월 이후 관망세를 보였던 시장은 7월 들어 서울의 강남3구 벨트를 중심으로 집값 폭등 현상이 강북은 물론 수도권까지 번졌다. 부동산 이상 과열 현상에 기름을 부은 것은 지난 7월 정부가 발표한 ‘종합부동산세 개편방안’이었다. 당시 기획재정부 스스로 밝힌 종부세 개편안의 연간 증세 효과는 7422억원, 세율 인상 영향을 받는 주택 보유자도 전체의 0.2%인 2만 6천명에 불과했다.

가뜩이나 ‘미세조정’에 그쳤던 재정개혁특별위원회의 개편안보다 오히려 정부가 한 발 더 후퇴한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시장과 투기세력들은 ‘정부가 부동산 소득 환수의지가 없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게다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여의도·용산 개발 계획을 밝힌 ‘싱가포르 선언’과 1조원 규모의 강북 발전 계획을 담은 ‘옥탑방 구상’은 강남에 국한됐던 집값 폭등이 강북, 수도권으로 번지는 도화선이 됐다. 

헨리조지포럼 이태경 사무처장은 “보유세는 부동산 대책의 근간이자 기본”이라며 “현 정부 부동산 정책 설계 조합은 좋지만, 보유세가 빠지면서 모든 것이 틀어졌다”고 지적했다. 양도세 증가나 임대주택 등록제도도 보유세 강화가 병행되지 않자 투기로 악용된 측면이 크다.

토지+자유연구소 남기업 소장은 투기심리에 불이 붙을 때 공급을 확대하면 ‘정말 공급이 부족하다’고 정부에 확인해주는 셈일 뿐“이라며 ”집을 짓는 데에는 3, 4년 이상 걸릴텐데, 그동안 오히려 주택을 살지 고민하던 이들도 대거 주택 매수에 뛰어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부동산 망국병 휩쓸자 초강경 9·13 대책 던져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

 

부동산 망국론이 팽배하면서 김현미 장관은 승부수를 던졌다. 바로 9·13 부동산 대책이다. 종합부동산세 최고세율을 많게는 3.2%까지 끌어올리면서 투기세력의 대출을 틀어막는 것이 핵심이다. 앞으로 3주택자나 조정대상 지역에 주택을 2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의 보유세 부담이 많게는 3배 가까이 늘어난다.

정부는 종합부동산세에 적용되는 공정가액 비율 역시 당초 정부안보다 확대해 100%까지 높이기로 했다.‘9·13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한 달이 지났다. 서울을 중심으로 과열 양상을 보였던 주택시장이 뚜렷하게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급매물이 나오기는 하지만 거래량이 뚝 떨어져 거래절벽은 심화되는 상황에서 높은 호가를 고집하는 집주인들과 더 떨어질 것을 기대하는 수요자들간의 눈치싸움도 치열하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주간 상승률은 지난달 3일 0.47%를 기록하며 큰 상승률을 기록하다 9·13 대책이 발표되면서 오름폭이 계속 둔화됐다. 지난 8일 기준 지난주 대비 0.07% 상승률을 나타냈다. 서울 부동산 시장은 전반적으로 매도 호가가 크게 떨어진 않았지만 매수자들의 집값 하락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되면서 관망세가 짙어진 분위기다. 특히 강남은 9·13 대책 발표 전 대비 5000만원~1억원 가량 떨어진 매물이 나와도 매수자들이 가격을 저울질하는 분위기다.

대치동 인근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최근 은마아파트 34평이 17억5000만원에 거래됐다”며 “이도 비싸게 팔렸다는 말이 나온다. 같은 평수로 17억5000만원에 나온 매물이 꽤 있는데 안 팔리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똘똘한 한채’로 갈아타는 흐름도 차단됐다. “싸게 팔아서 싼 가격으로 똘똘한 한 채로 이동하려고 해도 살고 있는 집이 안 팔리니 움직일 수가 없다”며 “집값 대세 상승에 대한 기대감도 사라졌다”고 말했다.강북도 비슷한 분위기다. 양도세는 여전히 강하고 보유세 개편안 등 집값 향방을 가를 최대 변수를 앞둔 상황에서 매도자도 매수자도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 강북 지역 공인중개사 사무소 다수는 “9.13 대책이 발표되기 전에 거래한 게 마지막이다”며 “집 주인들의 고민은 깊어졌고, 투자를 목적으로 찾아오던 매수자들의 발길은 끊겼다”고 입을 모았다.  

4선을 향한 정치적 야심 드러낸 김현미

3선 국회의원 출신인 김 장관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4선을 향한 정치적 야심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함진규 자유한국당 의원(시흥갑)이 공공택지 관련 질의 중 김 장관에게 “내년 총선에 출마해야 하지 않냐”고 묻자 김 장관은 “해야겠죠”라며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엄중한 국정감사장이 한때 웃음이 감돌기도 했다. 김 장관의 지역구는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다. 지난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입성한 뒤 지난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양 일산서구에서 당선됐고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연이어 금배지를 달았다. 시흥시가 지역구인 함진규 의원의 질의는 “시흥에 공공택지가 집중됐다”며 김 장관의 텃밭인 일산에 유리한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도로 해석된다.

김 장관의 ‘일산 사랑’은 이날 국정감사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이날 이학재 바른미래당 의원(인천 서구갑)이 부동산시장 관련 질의를 하면서 김 장관에게 “집값이 다 똑같다면 어디에 살고 싶냐?”고 묻자 “일산”이라고 고민 없이 답해 또 한 번 웃음을 자아냈다.

이학재 의원은 서울 강남에 인프라와 교육시설이 집중돼 있다는 점을 지적한 터였다. 강남보다 일산이 살기 좋다는 일종의 립서비스였다. 김 장관은 평소 국토부 출입기자들에게 “일산이 좋다, 일산으로 이사를 오라”는 식의 발언을 자주해 왔다. 이날 일산을 관통하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사업이 지지부진하다며 빠른 착공을 내비치기도 했다. 김 장관은 “국토부에 와서 놀란 점은 과거 수도권을 중심으로 많은 철도 사업이 예정돼 있었는데 수년간 거의 진행이 되지 않았다”며 “GTX-A노선의 경우도 예비타당성조사 통과까지 5년이 걸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수도권에 상대적으로 자족시설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무의미하다”며 “연말 공공택지 입지를 발표할 때 이 같은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기로 방향을 잡았다”고 덧붙였다. 

김 장관 앞에 놓인 산적한 과제들

김 장관은 부동산 전쟁을 시작으로 서민과 취약계층의 주거복지에 매진하는 한편 건설, 교통 관련 일자리 여건 개선에도 성과를 냈다. 김 장관은 주택시장이 투기세력이 아닌 실수요자가 중심이 돼야 한다는 원칙 속에 투기를 막고 주거복지를 확충하는 정책을 폈다. 그 결과 급등하던 주택가격 상승세가 일단 꺾였고, 다주택자의 주택매도 비중도 다소 높아졌다. 신혼부부 특별공급 물량,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늘어나며 ‘따뜻한 주거 정책’도 시행됐다.

정부 정책 기조에 따라 국토교통 분야에서 창출할 수 있는 일자리 로드맵을 만들었고 대통령 공약 사항이기도 했던 화물차 안전운임제 도입을 관철했다. 3선 의원으로서 국회를 설득하는 작업에도 역량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토부 직원들로부터 일하는 보람이 있다는 평을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토부 조직 개편도 그의 몫이다. 김 장관 취임 후 본부 조직표에 네 명뿐이던 과장급 여성은 10명으로 늘었고 정책계장도 총 22명 중 9명이 여성이다. 문재인 정부는 정부혁신 종합 추진계획을 내고 2022년까지 고위공무원 중에서 여성 비율을 10%로 높일 계획이다.

최근 몰카 범죄도 그의 관심사다. 김 장관은 철도역사, 고속도로 휴게소, 공항 등 화장실에 카메라 존재 여부를 점검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집값 상승세가 꺾이긴 했지만, 산업 침체와 맞물려 지방 부동산이 침체 양상을 보이는 데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여파도 적지 않아 보인다. 최근 서울지역의 집값 상승세도 주춤한 상황이긴 하나, 지난해와 연초 집값이 급등한 탓에 주택 소유 자체를 사실상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나아가 수도권과 달리 울산, 경남 등 지역 경제가 침체한 곳에서 주택가격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고 미분양도 증가세다. 김 장관은 “공급 과잉으로 침체가 우려되는 곳은 서민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업계 애로 사항도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국토부는 건설현장에서 근로시간 단축이 문제 되지 않도록 공기(工期)를 충분히 산정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버스 준공영제 도입도 주요 과제다. 근로시간이 줄면 노선버스 운행이 어려워지므로 지방자치단체 지원을 통해 버스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버스 준공영제 도입이 해법으로 부각됐다.

김 장관은 취임 후 1년 4개월 동안 부동산 정책에서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이제는 집값 안정화라는 성과를 내야 한다. 역대 정권의 발목을 잡은 부동산 망국병을 잡지 못하면 그의 정치적 여정에도 적잖이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반면 모든 국민들이 공감하는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경우 그의 정치적 주가는 한껏 올라갈 것이 확실하다. 이래저래 부동산 문제는 김 장관의 정치적 성패를 가르는 최대의 과제일 수밖에 없다. [Queen 11월호]

[Queen 오수연(자유기고가)] 사진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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