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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민, 배우의 변신은 무죄
한지민, 배우의 변신은 무죄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8.11.1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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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민.
한지민.

 

툭 건드리면 왈칵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소녀 이미지가 무척 강했던 배우 한지민. 아직 아기마냥 순수하고 귀엽다가 갈수록 청순하고 단아하며 발랄한 매력을 풍기더니 이제는 어떠한 역할도 거리낌 없다는 듯 유연하고 단단해졌다. 특히 최근 영화 <미쓰백>서 선보인 그녀의 파격적인 연기 변신이 연일 화제다.

2003년 성인의 나이에도 드라마 <올인>을 통해 송혜교 아역으로 데뷔했던 한지민은 애초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어린 아이, 소녀 이미지가 다분했다. 동안 스타라는 수식어만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기 충분했다. 이에 단번에 불후의 명작 <대장금>의 예쁘고 착한 의녀 ‘신비’ 역을 꿰찬 그녀는 한복이 잘 어울리는 외모로 단아하다는 평을 얻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런 그녀가 2005년 바로 드라마 <부활>의 여주인공을 맡은 것은 여느 톱스타의 행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청순가련하거나 발랄하거나. 어엿한 성인 캐릭터를 소화하며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으로 섭외 1순위에 올랐던 그녀다. 그렇게 <경성스캔들>을 비롯해 <이산>, <카인과 아벨>, <옥탑방 왕세자> 등 데뷔 후 12년 간 로맨스 장르의 선두주자로 맹활약한 한지민. 때로는 사랑스럽고, 때로는 까칠하기도 한 역할도 제법 잘 소화한 그녀지만, 왠지 모르게 2% 부족한 목마름을 불러일으키는 배우인 것도 사실이었다.

무엇인가 변곡점이 절실하다고 느껴질 때 즈음, 그녀는 영화 <밀정>을 만났다. 김지운 감독의 <밀정>은 1920년대 말, 일제의 주요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상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이를 쫓는 일본 경찰 사이의 숨 막히는 암투와 회유, 교란 작전을 담은 작품이다. 극 중 그녀는 의열단의 핵심 여성단원 ‘연계순’으로 분해 단아함 속에 숨은 강인함을 지닌 배우임을 증명했다. 곱고 여린 외모와 달리 누구보다 곧고 단단한 강단을 갖춘 여성 독립운동가 연계순의 당찬 면모와 어떠한 돌발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캐릭터는 그녀의 섬세한 감정 연기로 탄생할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우 한지민의 새로운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한지민 다시 보기

<밀정> 이후 그녀의 행보는 확연히 달라졌다. 가슴 속에 있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거나 도리어 짜내려는 연기 방식은 안녕! 언제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를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던 그녀의 변화는 최근작 <아는 와이프>에서도 고스란히 감지되었다.

<아는 와이프>는 한 번의 선택으로 달라진 현재를 살게 된 운명적인 러브스토리를 그린 드라마다. 극 중 그녀는 너무 일찍 결혼해 맞벌이와 육아라는 현실에 부딪히는 ‘서우진’ 역을 맡아 열연했다. 3년 만에 복귀한 드라마에서 처음 유부녀 역할을 맡은 그녀는 부담이 됐을 법도 한데, 마치 작정이라도 한 듯 속사포 같은 대사를 마구 쏟아냈다. 과거와 현재, 또 달라진 미래를 오가는 드라마 스토리 상 설렘 가득한 고등학생 서우진과 결혼 전 매사 차분하고 조심스러운 여자 서우진, 결혼 후 고리타분한 잔소리 대마왕 아줌마가 되고 만 서우진을 종횡무진하며 그 일 자체의 즐거움에 흠뻑 빠져들었다. 말 그대로, 좀 더 유연해진 배우 한지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그녀는 지난 제작발표회 때 “특히 분노조절장애 연기가 제일 재밌었어요. 비주얼은 포기하고 연기에 임했답니다(웃음)”라고 여유 있게 화답했다.
 

자료 사진 1, 2 : 영화 '미쓰백'에서 상처투성이지만 강인한 여성 ‘백상아’ 역을 맡아 파격 변신한 배우 한지민.
자료 사진 1, 2 : 영화 '미쓰백'에서 상처투성이지만 강인한 여성 ‘백상아’ 역을 맡아 파격 변신한 배우 한지민.

 

‘백상아’라는 인생 캐릭터

이 같은 그녀의 연기 변신은 영화 <미쓰백>에서 최절정에 달했다. <미쓰백>은 스스로를 지키려다 전과자가 된 '백상아'가 세상에 내몰린 자신과 닮은 아이를 만나게 되고,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참혹한 세상과 맞서게 되는 감성드라마다. 그녀가 선택한 백상아는 전과자 신분으로 맨손으로 남의 차도 닦고, 몸도 닦으며 살아가는 삶의 터전에서 자신을 감추는 동시에 이름보다 ‘미쓰백’이 더 익숙하게 불리는 캐릭터다. 어릴 적 자신처럼 가정폭력으로 온몸이 시퍼런 멍 투성인 ‘김지은’을 만나면서 그녀의 마음에 큰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청순의 대명사인 그녀에게 백상아 이미지가 과연 잘 맞아떨어질까, 라는 의구심은 영화를 보는 순간 싹 사라진다. 원래 깨끗한 피부와는 상반되는 거친 피부 연출하며, 짧은 탈색 머리, 짙은 립스틱 등 강한 분장부터 검은 가죽 재킷, 딱 붙는 스커트, 버건디 색 힐 등 포스 넘치는 의상까지 장착, 와일드한 비주얼로 변신했다.

또한 쌍욕이 섞인 거침없는 말투와 담배를 피우는 모습 등도 척박하게 살아온 백상아의 인생을 곧이곧대로 녹여낸 듯 자연스럽다. 기존에 대중들이 알던 배우 한지민은 온데간데없이 스크린 속에는 오로지 세상에 상처받았지만 강인함을 지닌 백상아만 존재했다. 알면 알수록 단단한 배우 한지민의 진면목이 발휘된 것이다. 극한 상황에서 보인 파괴력과 에너지, 보는 이의 눈물샘마저 자극하는 처절한 오열 장면이 아직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평이 자자하다.

“극 중 ‘상아’처럼 실제로 세차장, 마사지숍에 찾아가 일을 배우기도 했어요. 온전히 상아가 되기 위해 세계 담배는 모조리 다 피워봤습니다.”

역시 그녀의 엄청난 노력이 빚어낸 성과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한사코 이 영화의 포인트를 자신의 연기 변신에 두기보다 작품 메시지에 귀 기울였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미쓰백>을 통해 용기 내지 못했던 분들도 주위를 둘러보고 김지은과 같은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배우 한지민이 써 내려갈 인생작품, 인생 캐릭터의 역사가 더욱 기대되는 요즘이다.(Queen 11월호)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서울신문 자료 사진 리틀빅픽처스, 영화사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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