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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직접 만난 김정은 & 문 대통령에 대북정책 제안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직접 만난 김정은 & 문 대통령에 대북정책 제안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8.11.20 1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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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최근 수십 년을 옥죄어온 한반도 냉전 구조가 해체되고 있다. 격동하는 한반도 판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야 할까?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전 장관. 자타공인 한반도 문제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그를 만나 앞으로 한반도 정세 변화의 명쾌한 답을 들어보았다. 특히 비핵화와 종전 선언, 평화 협정이 실제 우리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그의 할아버지다운 입담이 꽤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정세현 전 장관은 남북회담이 가장 빈번하던 시절 대북 접촉을 가장 많이 한 인물이다. 197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총 170여 개의 남북합의서 중 73개가 그가 통일부 장관 재임 중 작성됐다는 점에서 국내 최고 북한 전문가로도 불린다. 40년 동안 남북 관계와 한반도 문제를 평생의 화두로 삼아온 정 전 장관. 지금은 한반도평화포럼과 한겨레통일문화재단, 평화협력원, 더미래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더욱이 그는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환영 만찬에 참석해 또 한 번 유명세를 치렀다.

“2008년 5월 초 이후 10년 만에 옥류관 냉면 맛을 봤어요. 처음에는 맛이 밋밋하고, 횟가루 냄새가 나는데 아주 독특해요. 음식도 인이 배긴다고 했던가요. 한두 번 먹다 보니 맛이 참 오묘하더이다.”

실제로 가까이에서 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모습은 어땠는지도 궁금했다.
“인상은 TV 화면에서 보듯 뚱뚱해요.(웃음) 근데 성격이 급하고 날카로웠던 아버지 김정일과는 좀 다르더군요. 나이에 비해 상당히 노련한 표정이나 몸놀림을 보아 할아버지 김일성을 더 닮았더라고요. 격세유전(隔世遺傳)이지요.”

판이 바뀌었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한 차례씩 열렸던 남북정상회담이 좀처럼 뜸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올해만 두 번이나 열렸다. 북미정상회담은 또 어떠한가. 북한과 미국은 1948년 북한 정권 수립 이후 70년간 정상회담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가 지난 6월 12일 극적으로 만나 한반도 평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음을 시사했다. 물론 미국 입장에서 북한 미사일이 자국 영토까지 넘볼 수 있을 만큼 위협적으로 됐다는 점에서, 북한의 경우 더 이상 폐쇄 경제를 지속하기 어렵게 됐다는 상황 속에서 성사된 회담이지만 말이다. 북이 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함으로써 아이러니하게도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의 판이 바뀌어버렸다.

“여러 가지로 운이 좋았어요. 미국과 북한 두 정상은 각자의 이해관계로 인해 현재의 판을 뒤엎을 수도, 유턴할 수도 없는 판국입니다. 이제는 북미 간 헤게모니 싸움에서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문제의 주인으로서 어떻게 운전자론을 이끌어 갈지가 매우 중요해졌어요. 이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70년 분단체제의 끈을 끊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군사 문제 논의가 우선

9월 평양에서 한 번 더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될 예정이다. 남북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은 이미 4·27 판문점 선언에 모두 담았다. 총론을 좀 더 세분화하는 일은 장, 차관들의 몫이다. 그보다 이번 회담에서는 공동경비구역 내 무장해제에 대한 세세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정 전 장관은 주장했다. 그래야 순차적으로 최전방 내 군사 철수 여부도 결론이 날 것이기 때문이란다. 이는 남북 평화 분위기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남북문제만은 아니에요. 남측 땅에 서 있는 유엔사 소속인 미군의 협조도 필요합니다. 4월 27일에 합의해 놓고 아직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군사 문제를 이번 정상회담에서 결론 내고 대통령 책임 하에 국방위가 이행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비핵화 문제일 터. 서로가 상대방의 양보만을 바라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 정부가 어떻게 길잡이를 해갈 것인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어깨가 매우 무거울 겁니다. 이번에 반드시 북미 간 꺼져가는 모닥불에 다시 불꽃이 튀어 오르게 해야만 해요.”

이에 대한 정 전 장관의 전망은 꽤 낙관적이다.
“아직까지 문 대통령이 아주 잘하고 있어요. 역대 정부의 대북 정책과 관련해서는 소리만 요란하고 성과가 없을 때가 많았는데요. 문 정부 들어서는 소리는 잘 안 나면서 의외로 성과가 꽤 좋습니다. 뒤로 물러나지도, 제자리걸음도 아닌, 조금씩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있는 걸 보면 그렇지요. 조용조용하게 일하는 스타일이라 그런가. 상황도 잘 맞아떨어졌고요. 이 고비만 잘 넘겼으면 좋겠어요.”
이와 함께 그는 문 대통령에게 이같이 제안했다.

“이번에 문 대통령이 가서 김정은 위원장과 회담 결과로, 용을 그려 놓고 눈동자는 폼페이오가 찍도록 하는 것이 좋아요. 트럼프가 국내 정치로 굉장히 어려운 처지에 있지 않나요. 그걸 도와줘야 동력이 생깁니다. 그런 점에서는 공을 미국 대통령과 미국 국무장관에게 돌려주는 것이 좋고, 평양에 가서는 그림은 다 그려 놓고 꼭지는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따도록 하는 화룡점정의 순서로 가는 게 바람직합니다. 절대 자국 중심성을 잃지 않으면서요.”

마침내 통일로 가는 길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비핵화와 북미수교를 맞바꾸는 과정에서 우리는 과연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을 끌어낼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한반도의 정세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흐름에 올라타 통일을 위한 준비도 서서히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 협력 문제도 비핵화 속도에 맞춰 나가야 한다는 정 전 장관.

“물론 아직 통일을 언급하기는 일러요. 비핵화, 남북 관계, 북미 수교 및 평화협정. 이런 순서로 가는 게 좋습니다. 비핵화를 비롯해 평화협정 뒤 남북이 절대적으로 서로 필요한 시기가 되어야 해요. 쉽게 말해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그대 없이 난 못살아~’ 정도는 되어야 통일이라는 말을 꺼낼 수 있지요.”

즉 남과 북의 통일에 대한 절실한 마음, 구심력이 커지면 자연스럽게 남북 교류가 심화될 것이라고 그는 이야기했다. 이를 위해 제일 먼저 형편 차를 줄이는 게 급선무가 되어야 한단다. 남한의 GDP는 1,600만불인데 반해 북한은 3만불에 불과하다. 예컨대 한달에 1,600만원 버는 사람과 3만원 버는 사람은 가는 식당부터가 다르다.

“마시는 술도 달라요. 이렇게 일인 당 국민 소득 차가 크면 도저히 같이 어울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형제간에도 사는 수준이 너무 다르면 왕래도 잘 안 하잖아요.”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북한의 일인 당 국민 소득이 올라가도록 도와주는 일이라는 정 전 장관. 이는 단순히 돈만 흘러가는 게 아니다. 민심이 녹아내리고 남북 간 화해 협력이 심화되어야 비로소 통일로 가는 길이 더 탄탄해진다. 마음을 연결하는 일인 것이다.

‘퍼주기’에 대한 찬반 논란

그 방법은 오직 ‘퍼주기’라고 그는 덧붙였다.
“6·25전쟁이 끝나고 배고팠던 시절 미국이 우리한테 밀가루, 쌀 등 온갖 퍼주기를 했기에 국민들 마음이 미국 대륙으로 건너갔어요. 미국이 퍼주는 것은 괜찮고, 우리가 퍼주는 것은 안 된다고요? 말이 안 되지요. 미국도 우리가 불쌍해서 인도주의에 입각해 도와준 건데, 북은 우리와 같은 핏줄이에요. 인도주의도 아닌 동포애입니다. 우리가 북을 돕는 것은 도리입니다.”

물론 무조건적인 퍼주기는 그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초기에만 마중물처럼 투자한 후 나머지는 그 사람들이 스스로 외국자본을 유치해 일할 수 있도록 잘사는 노하우를 알려줘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이 그동안 걸어왔던 길을 그대로 걷도록만 해주면 돼요. 우리가 힘들 때 미국도 쌀과 옥수수 가루, 분유, 밀가루만 보내줬지 실제 경제 건설하려고 했을 땐 돈이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다 우리가 월남전 나가거나 독일에 간호사, 광부 파견 후 외화를 벌어와 여기까지 온 겁니다. 목숨과 맞바꾼 돈으로요. 그 방법론을 알려주자는 거지요. 다만 형이 어느 정도 눈덩이를 만들어주면 동생이 열심히 굴려서 큰 눈사람으로 만들 듯 북한에 대한 남한의 초기 투자는 있어야겠지요. 작은 눈덩이로 어느 세월에 눈사람을 만듭니까?”

이를 위해서라도 북미수교를 가능케 해 북한에 외국 자본이 많이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고 그는 재차 강조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앞으로 15~20년 후에 남북통일을 정상회담 의제에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그는 내다봤다.

“제가 직접 보고 만난 북한 사람들은 그만큼 빨리 일어설 잠재력이 충분합니다. 중국과 달리 북한에는 문맹도 없을뿐더러 주민들의 지식수준이 높거든요.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아줌마만 봐도 굉장히 부지런하고 눈썰미가 좋아 배우는 속도가 재빠릅니다. 여자들의 힘은 남한에서든 북한에서든 아주 위대하더랍니다.”

더욱이 북한은 지리적 특성상 해양에서 얻은 경제적 효과가 내륙으로 들어가는데도 매우 빠를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손자, 외손녀를 떠올리며…

일단 통일이 되면 결과적으로 국방비에 쓴 돈을 복지와 교육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북한이 우리 경제의 블루오션이 될 거란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와 함께 현재 어린 자녀를 둔 30대 여성들은 향후 아이가 살아갈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고 정세현 전 장관은 일침했다.

“지금 네다섯 살 아이들이 대학생이 될 때쯤이면 북한에서도 유학생이 많이 들어올 거예요. 그때 같이 어울려 살 수밖에 없지요. 다 같이 모여 햄버거 가게도 가면서요.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둔 북한 학생들과 우리 아이들이 장학금 경쟁이 붙을지도 모릅니다. 기초과학 교육이 탄탄한 북한 학생들은 IT 역량도 강해요. 왜, 북한이 최고의 해킹 국가라고 하지 않습니까.”

올해 아홉 살 된 손자와 외손녀가 떠올라 저서 <담대한 여정>도 펴냈다는 정 전 장관. 앞으로는 북한에 대한 과거 고정관념에서 탈피해야 할 터.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10대 이하 자녀를 둔 30, 40대 부모들은 각성해야 합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새 세상이 오는 걸 준비해야 해요. 흔들리는 판에 새롭게 올라탈 줄 아는 선견지명이 필요합니다. 우리 아이들과 자신의 남은 인생이 지금보다 좋아지길 바란다면요. 평화와 번영은 대통령 한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만드는 것이란 점 꼭 기억하셨으면 합니다.”(Queen 10월호)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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