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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Queen 다시보기] 1990년 11월호 -조관희의 시네마 에세이⑤
[옛날 Queen 다시보기] 1990년 11월호 -조관희의 시네마 에세이⑤
  • 양우영 기자
  • 승인 2018.11.26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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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1월호
1990년 11월호 -조관희의 시네마 에세이⑤
1990년 11월호 -조관희의 시네마 에세이⑤

 

성 폭행은 여자를 세 번씩이나 죽이는가?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이른바 '혀 잘린 사건'을 소재로 만든 영화 '단지 그대가…'는 한국판 '피고인'이라고 할 수 있는 법정 드라마. 강간범과 사회 그리고 가정으로부터 거듭 세 번씩이나 폭행 당하면서도 끝내 재판을 승리로 이끄는 어느 주부와 여자 변호사의 집념을 그리고 있다. 보고난 뒤 자신도 모르게 주먹이 쥐여져 있는 영화.

젊은 주부가 도시 뒷골목에서 성폭행을 당한다. 상대는 두 명의 건장한 청년이고 한밤중이어서 소리쳐 구원을 요청할 길도 없고 힘이 모자라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안간힘을 쓰던 여인은 최후 수단으로 입손ㅇ 들어온 사내의 혀를 깨물어 버린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정당방위였다. 그런데 혀를 끊긴 사내가 상해 혐의로 고소를 했다. 그리고 어처구니없게도 유죄 판결이 났다. 그 이유는-

첫째 혀를 물어뜯은 행위는 정당방위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란 해석이다. 그녀가 폭행당한 장소는 대도시의 도로상이고 남자는 흉기를 들고 위협한 것도 아니다. 소리치면 구조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여인은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고 도망가지도 않았다. 이것은 강간이라기보다 화간에 가까운 것이란 주장이다.

그 다음은 여인의 행동이 성폭행을 자초했다는 해석. 그날 밤 그녀는 밤 늦게 술 마시고 혼자 거리를 방황했다. 그녀의 지난 이력을 조사해 본 결과 첫남편과 헤어진 뒤 술집에서 호스테스로 일한 경력도 있다. 다시 말하자면 술집 호스테스였다는 그녀의 이력은 정조 관념이 희박할 수도 있는, 그저 그렇고 그런 여자라는 해석이다. 그래서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한다'는 그 유명한 '대사'도 나온다.

법정에서의 이런 결론은 주로 고소한 남자의 진술과 그쪽 변호사의 주장에 따른 것이고 명백한 증거가 제시된 건 아니다. 여자측의 진실과 주장은 묵살된채 선입관과 심증만으로 재판이 진행된 것이다.

이 영화는 이런 재판 결과에 불복하고 진실을 밝혀 내는 과정에 역점을 두고 있다. 폭행 당하고 유죄 판결을 받은 주부(원미경)의 억울함을 여자 변호사(손숙)가 예리하게 파헤쳐 무죄를 도출해 내는 것이다. '연약한 여자에게 두 명의 건장한 사내의 육체는 충분히 흉기일 수 있다'는 근거를 새로운 증거와 증언으로 도출해 낸다. 어두웠던 과거를 청산하고 깨끗하게 열심히 살아가려는 여성이 어느날 갑자기 당한 이중 삼중의 불행, 여자이기 때문에 당할 수밖에 없는 성폭행의 비극과 그 여파를 이 영화는 리얼하고 아주 차분하게 그리고 있다.(중략)

 

Queen DB

[Queen 사진_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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