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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병원 일파만파… 잠룡 원희룡 대선 포선인가
영리병원 일파만파… 잠룡 원희룡 대선 포선인가
  • 오수연
  • 승인 2019.01.24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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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제주도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국내 첫 영리병원(투자개방형병원) 개원을 둘러싸고 후폭풍이 거세다. 찬반 양론이 거센 영리병원 문제에 대해 원희룡 제주지사가 중국 국유 부동산 업체(녹지그룹)가 추진한 녹지국제병원 개원을 전격 허가한 것이다. 의료계 안팎에서 의료 분야의 새 활로를 개척했다는 주장과 의료 공공성을 약화할 것이란 우려가 맞서며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원 제주지사의 차기 대선 행보와 맞물려 이번 사태는 일파만파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영리병원 어떤 곳 

영리병원은 외국 자본과 국내 의료자원을 결합해 외국인 환자 위주의 종합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정부는 외국인 투자 비율이 출자총액의 50% 이상인 외국계 영리병원을 제주도와 경제자유구역만 허용하고 있다.

현행 의료법은 영리의료법인을 불허하고 있는데 예외적으로 외국자본 유치 활성화를 위해 경제자유구역 8곳과 제주도에는 설립을 허용하고 있다. 인천 송도나 제주도 등지에서 투자를 받아 첨단 의료기관 설립이 가능하다.

'대규모 생산유발과 고용창출' 

그동안 영리병원 도입을 주장해온 측은 새로운 자본 투자가 이뤄지면서 의료서비스 향상이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제주도에 영리병원이 물꼬를 트면서 의료기술 수준이 높고 연구할 능력도 있지만 투자가 없어 시도하지 못했던 의료기관에 새로운 기회가 마련됐다는 분석이다.

정기택 경희대 의료경영학과 교수는 “의료 분야에서도 다른 산업처럼 회사 형태로 자본을 조달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며 “투자를 통해 국내 의료 수준을 높이고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길이 마련된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병원들은 대출을 통한 투자에 의존했기 때문에 병원이 잘못되면 의사가 신용불량자가 되는 구조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영리병원은 회사 형태로 자본을 조달하기 때문에 첨단 의료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새로운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이 이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환자 입장에서 의료서비스에 대한 선택권이 확대된다’는 주장도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영리병원은 기존에 없는 새로운 선택지로 의료서비스의 다양성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영리병원은 보건의료산업 측면에서 대규모 생산유발과 고용창출을 할 수 있는 블루오션으로 평가받았다. 첨단 의료기술이나 신약개발을 위해선 고가 첨단 장비는 물론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연구·개발(R&D)을 위해 대규모·장기투자가 필요한데도 외부 투자 유치가 어려운 비영리병원에선 엄두를 못 냈다.

보건산업진흥원은 해외환자 유치형 영리병원의 경우 해외환자 수 30만명을 가정하면, 생산유발 효과가 1조6000억∼4조8000억원, 고용창출 효과는 1만3000∼3만7000명으로 분석한 바 있다. 고급의료 서비스 수요 충족형으로 설립될 때도 우리나라 인구 약 3%가 이용한다고 가정하면 2조7000억∼3조5000억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2만1000∼2만7000명의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제주도관광협회는 영리병원 개설 허가에 대한 지지 입장을 나타냈다. 관광협회는 지난해 12월 17일 입장문을 내고 “이번 제주도의 결정은 지난해 중국정부의 방한관광 금지 조치 이후 회복되어 가는 한·중 외교문제에 대한 우려, 감소세로 돌아선 관광산업의 재도약 등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개방형 병원의 조건부 허가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녹지국제병원 내부 시설.
녹지국제병원 내부 시설.


'의료 공공성 무너진다'… 반발 거세 
 
영리병원 도입으로 의료 공공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와 비판도 거세다. 녹지국제병원을 시작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의료서비스가 확대되면서 건강보험체계가 무너지고 의료비가 폭등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김재헌 무상의료운동본부 사무국장은 “녹지국제병원은 이익을 내려는 병원들 사이에 ‘뱀파이어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한 명이 물리면 순식간에 여러 명에게 전파가 되듯 처음에는 경제자유구역에서,다음에는 전국 곳곳에서 영리병원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영리병원은 우리가 가진 보건의료체계 규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며 “의료비를 결정하는 수가와 환자 알선 금지, 의료광고 규제 등 각종 안전장치가 다 무너지게 된다”고 말했다.

영리병원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를 받으면 진찰료가 수십만원에서 수백만 원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이런 가격 설정은 시간이 흐르면 어떤 식으로든 국내 의료기관의 의료비를 전반적으로 상승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많다.

병원 양극화 심화될 수도 

경제적 수준에 따라 의료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비싼 치료비를 낼 수 있는 환자들은 영리병원에 가서 첨단 의료서비스를 받지만 가난한 환자들은 이보다 못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 사무국장은 “우리나라 의료시스템도 미국처럼 가난한 사람들만 건강보험에 가입하고 부자들은 비싼 민간보험에 가입하는 구조가 될 것”이라며 “건강보험으로 누릴 수 있는 의료의 질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말 뒤집은 원희룡… 차기 대권 포석인가 

거센 후폭풍을 몰고 온 원희룡 제주지사는 잠재적 대권주자이다. 그가 ‘신뢰 상실’이라는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영리병원 도입을 밀어붙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말을 들어보자.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난해 12월 5일 “제주 녹지국제병원에 대해 외국인 의료관광객만을 진료 대상으로 하는 조건부 개설 허가를 했다”고 밝혔다. 진료과목은 성형외과와 피부과, 내과, 가정의학과 등 4개과로 한정했다. 그는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법도 적용되지 않아 건강보험 등 국내 공공의료체계에는 영향이 없다”도 했다. 녹지국제병원 운영 상황을 철저히 감독·관리해 조건부 개설허가 취지와 목적을 위반하면 허가 취소까지 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숙의형 공론조사위 결정 번복한 원희룡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는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의 불허 권고를 수용하겠다는 원 지사의 기존 입장과 180도 다른 결정이다. 제주도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는 도민 참여단 200명 가운데 180명을 대상으로 한 최종 여론조사에서 반대 비율이 58.9%(106명)로 찬성 비율 38.9%(70명)보다 20%P나 높게 나오자 지난해 10월 4일 녹지국제병원 개원 불허를 제주도에 권고했다.
원 지사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같은 결과를 존중하겠다고 밝혔고 심지어 지난해 11월 15일 제주도의회 제366회 정례회 시정연설에선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불허 권고를 겸허히 수용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원 지사가 이같은 자신의 말을 뒤집고 개원 허가로 방향을 튼 것은 손해보다는 득이 많다는 정치적 계산 때문으로 보인다. 원 지사는 입장을 바꾼 이유에 대해 중국자본에 대한 투자 손실 문제로 한중 외교문제 비화, 외국자본에 대한 행정신뢰도 추락, 사업자 손실에 따른 거액의 민사소송, 병원에 채용된 직원 134명의 고용 문제, 토지 목적외 사용에 따른 토지 반환 소송의 문제 등을 들었다.

제주도에 투자하는 외국인이 정체 수준인데 정부가 사업을 승인해 이미 병원까지 지어진 상황에서 개원을 불허하면 어떤 외국인이 제주도에 투자를 하겠느냐는 게 가장 큰 대외적 명분이다.  

원희룡 지사가 차기 대선을 겨냥해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가 불허 권고를 한 지난해 10월을 전후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60%대의 고공행진을 했지만 최근에는 40%대까지 추락했다. 또 자유한국당은 내년 초 전당대회를 앞두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입당하는 등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침체했던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보수 야당의 지지율은 오르는 상황에서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것은 무소속인 원 지사 입장에서 보수층을 자극하고 지지세를 확보하는데 더 도움이 될 듯하다. 제주도민 60% 가까이가 반대하는 영리병원을 허용하면서 ‘민의를 거스르고 자신의 공언을 뒤집었다’는 비판을 받겠지만 향후 대권행보를 감안하면 오히려 이득이라는 정치적 계산을 했다는 분석이다. 연장선상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하고 보수가 지리멸렬한 상황이라면 당초 자신의 불허 약속을 지켰을 거라는 해석도 같은 맥락이다.

제주도민 거센 반발… 촛불시위로 번져 

건강보험체계의 붕괴 논란을 차치하고도 한번 깨진 정치인 원희룡의 신뢰는 회복이 쉽지 않아 보인다. 당장 제주도내 정당과 시민단체는 물론 전국 의료단체가 강하게 반발하는 등 후폭풍은 거세다. 정치적 상황과 선거 유불리에 따른 원 지사의 오락가락 행보는 도민사회에서 거센 반발을 하고 있다. 원 지사는 공공의료체계 영향 등의 문제로 영리병원이 선거 쟁점이 될 것을 우려해 6·13 지방선거 이후로 결정을 미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중국의 부동산개발업체인 녹지그룹이 지난 2016년 4월부터 서귀포시 헬스케어타운 내 2만 8163㎡의 부지에 778억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3층(연면적 1만8223㎡) 규모로 조성한 뒤 2017년 8월 개원 허가를 신청했지만 1년 4개월이 넘도록 결정을 미뤄 왔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결정을 미루던 원 지사는 불쑥 숙의형 공론조사 카드를 꺼내 들었고 정치적 타격을 우려한 판단 떠넘기기라는 지적이 그래서 나왔다.

박근혜 정부의 보건복지부가 지난 2015년 12월 녹지국제병원 설립을 승인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영리병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원 지사의 끝도 없는 결정 미루기는 분명히 문제였다.  

허가 철회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원희룡 제주지사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의료연대본부와 의료영리화 저지 및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 등은 지난해 12월 16일 촛불집회를 가졌다. 이어 12월 18일에도 제주도청 앞에서 영리병원 철회 결의대회를 열었다.  

의료영리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는 지난해 12월 15일 제주시청 앞에서 영리법원 허가를 반대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영리병원은 의료의 모든 것을 바꾸는 판도라의 상자다. 결코 허용돼서는 안 된다”며 “영리병원을 막아내는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료·시민단체들의 결의대회에 이어 촛불집회까지 대규모 집회가 연말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녹지그룹 투자 서귀포 제주헬스케어타운.
녹지그룹 투자 서귀포 제주헬스케어타운.

영리병원 실체 의혹 제기… 정보공개 청구 

시민단체들은 “녹지국제병원 운영주체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원희룡 제주지사가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허가한 근거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제주특별법) 307조(의료기관 개설 등에 관한 특례)다. 이에 따르면 외국인이 설립한 법인은 도지사 허가를 받아 제주도에 의료기관(외국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데, 법인 종류나 개설요건은 조례로 정한다. 제주자치도 보건의료 특례 등에 관한 조례는 외국의료기관은 외국인 투자비율이 50% 이상(14조)이어야 하고, 개설 허가시 내국인 또는 국내법인이 우회투자 등을 통해 국내 영리법인 허용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여부를 명백하게 심사(15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녹지국제병원을 설립한 녹지그룹은 중국 부동산회사다. 녹지그룹은 2015년 12월 제주에 자회사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를 만들어 병원 설립과 운영을 맡겼다. 현행법상 의료기관 개설요건은 의료인이거나 의료행위 경험이 있어야 하는데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는 의료행위 경험이 전무하다.

시민단체들은 국내 의료기관의 우회투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녹지국제병원의 실질적 운영 주체가 국내 비영리의료법인인 미래의료재단”이라고 폭로한 바 있다. 미래의료재단 이사이자 리드림 의료메디컬센터 대표인 김수정 원장은 지난해 열린 제주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 참석해 녹지국제병원 입장을 설명한 인물이다. 현재 김수정 원장은 우회투자 의혹이 불거지면서 녹지국제병원 업무에서 발을 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주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회의 내용 △녹지국제병원 사업계획서 △녹지그룹과 제주도가 주고받은 공문 △녹지그룹측과 원희룡 제주지사 간의 면담 내용의 정보공개를 청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글 오수연(자유기고가) 사진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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