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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바랜 추억 하나... 재래시장에 나가 보세요
빛 바랜 추억 하나... 재래시장에 나가 보세요
  • 김수경
  • 승인 2019.01.23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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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에세이

가고 오지 않는것이 있습니다. 세월… 가고나면 그뿐인 세월이 그리워서 문득, 쓴웃음 짓게 됩니다. 엄마 손 잡고 시장 가던 그 기억도 이제는 멀리 갔습니다. 갔지만, 그 세월은 떠났지만, 저기 가까운 자리 어디에 여전히 시장 풍경은 남아 있습니다. 오늘은 추억의 골목길 같은 그곳, 재래시장에 나가보세요.

사람 사는 정이 스민 곳, 주머니 가득 착한 행복을 채우게 하는 자리…

제가 사는 경기도 어디쯤에는 기차역이 하나 있습니다. 허름한 역사를 지나 한 바퀴만 돌아들면 만날 수 있는 곳이 재래시장이에요. 아직 바람 찬 어느 날, 아들 녀석을 데리고 시장통으로 나섰습니다. 기억 때문이었어요. 시장 가는 엄마를 졸졸 따라나서던 기억, 가면 언제나 밀가루만 범벅인 핫도그나 오뎅 한 꼬치쯤 먹을 수 있었던 오랜 기억이 떠올라서.

발길을 묶는 어린 딸이 귀찮은 엄마는 어린 시절 야채 가게나 생선 가게 앞에 세워 두고는 장바구니 손에 든 채 혼자 분주했어요. 꼼짝 말고 거기 있어. 엄마 올 때까지 거기 있어야 해…. 손에 든 핫도그를 야금야금 아껴 먹으며 마냥 엄마를 기다리던, 그 시절이 문득 그리워졌습니다. 이젠 너무 많이 왔습니다. 추억하기에도 먼, 아득한 기억이에요.

시장은… 여전했습니다. 사람 냄새가 났어요. 사람 사는 냄새가 비릿한 생선 냄새와 버무려져 더러 코끝을 살피게도 하지만, 그래도 따뜻한 풍경이 고스란했습니다. 보자기 위에 한 움큼 올린 나물을 정성껏 다듬는 할머니의 손이, 푸줏간의 벌그레한 공포가, 족발과 돼지머리가, 고춧가루 빻아드린다는 방앗간 앞의 매캐함이, 덧버선에서 귀후비개까지 없는 게 없는 방물장사 아저씨의 리어카가, 그리고어디서부턴가 흘러넘치는 뽕짝 메들리가….

키 작은 계집아이였던 제가 마흔을 앞둔 여자가 되었음에도 그 풍경은 그대로, 오래 전 어느 날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무언가 그대로 있어 주는 것이 고마웠어요.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어 주는것이. 그리움에…그 추억을 새기느라 쓰지도 않을 살림을, 먹지도 않을 음식을 봉지봉지 손에 들었습니다.

재래시장에 나가보세요. 허름해서 불편하고, 어수룩해서 발길이 뜸해지지만 기름 칠한 듯 반질한 백화점이나 할인매장 같은 곳에서는 만날 수 없는 훈훈함이 있습니다. 사람 사는 냄새, 그 착한 온기가 걸음 사이사이로 스며듭니다.

아들도 저도 내내 즐거웠습니다. 만두에 노란 단무지를 두 접시나 채운 배가 방실방실 행복했고, 사람에 채여 길 잃을까 노심초사하며 꼭 쥔 두 손이 따뜻했어요. 껍데기 있는 돼지고기 한 봉지 사들고 돌아오던 그 길. 추억 속의 흑백사진 같은 그 풍경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글 _ 김수경 사진 _ 김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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