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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건축정책위원장 건축가 승효상, '채움보다 비움, 오래 된 것의 아름다움'
국가건축정책위원장 건축가 승효상, '채움보다 비움, 오래 된 것의 아름다움'
  • 김은정
  • 승인 2019.01.2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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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재생에 총력
국가건축정책위원장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 승효상.

세계적인 건축가 승효상. 건축 하면 하나의 브랜드처럼 떠오르는 그가 오스트리아 빈 공과대학에서 일 년간의 객원교수 활동을 마치고 지난해 2월 한국에 돌아왔다. 지난 1월 21일 서울시가 발표한 광화문광장 재조성 설계당선작 공모에서 국제설계공모 심사위원장을 맡은 국가건축정책위원장 승효상은 ‘빈자의 미학’을 내세우며 채움보다 비움, 오래된 것의 아름다움을 역설한다. 그에게 건축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들어보았다.


‘생각하는 건축가’, ‘말하는 건축가’. 승효상의 이름 앞엔 늘 그만의 철학이 풍기는 수식어가 붙는다.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로 세계에서도 활동하는 그는 오스트리아 빈 공과대학에서 유럽의 건축학도들을 가르치다 귀국했다. 오스트리아는 자신이 젊은 시절 유학했던 곳이고, 건축하는 사람의 태도를 갖추게 해 준 인연이 깊은 곳이다.

“유학 시절 오스트리아의 ‘아돌프 로스’라는 건축가에 대해 알게 됐지요. 그가 1907년 설계한 건축물은 모더니즘의 시작을 연 것으로, 건축으로도 혁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큰 계기가 됐습니다. 그를 통해 건축은 예술가가 만드는 작품이 아니라 시대를 통찰하는 지식인들의 시대적 과업이라는 것을 알게 됐지요.”

건축가의 기본 태도를 깨닫게 한 도시 오스트리아 빈에서 그는 이번엔 파란 눈의 유럽 건축학도들에게 건축가의 기본자세를 가르쳤다.
“건축은 다른 사람의 집을 설계하는 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잘 알기 위해선 내 자신을 객관화해야 하죠. 그러려면 제도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늘 경계 밖에서 볼 줄 아는 시선을 가지라고 당부했습니다.”

     
서울시 총괄 건축가로 도시재생 사업에 총력

2014년 그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요청으로 서울시 총괄 건축가라는 중대한 역할을 맡기도 했다. 2년의 임기 동안 서울의 전체 도시 디자인을 맡으며 그는 도시 재생 사업에 총력을 다했다. 특히 세운상가 재생 프로젝트,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 등 서울의 역사적 풍경을 보전하는 데 힘을 썼는데, 뒤돌아보면 보람과 아쉬움이 교차한다고 한다.

“단지 서양의 도시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성격의 서울의 정체성을 주장하고 공유한 것이 가장 큰 보람이었습니다. 반면 뿌리 깊은 관료적 행태, 습관 등을 고치지 못하고 때론 오해를 받으며 한편으론 적을 만들고 온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건축가로서의 그의 큰 입지와 존재감이 오히려 그의 진정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와 시기를 불러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가 서울에서 처음 시도한 도시 재생 사업은 이제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는 성과를 남겼다. 도시 재생 사업을 펼치고자 하는 지방자치단체에 그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도시는 늘 변하는 생물체 같은 것이어서 완성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속성을 모르고 자치단체장들이 자기 임기 내에 뭔가 완성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서울시의 총괄 건축가 제도 같은 좋은 제도를 마련해서 전문가들과 의논을 하고 도시 간 네트워크도 하며 도시 재생 문제를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

두 사람은 경남고 동기이다. 경남고 시절 문과엔 문재인, 이과엔 승효상이 천재였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 하지만 정작 두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 서로 친분은 없었다고 한다. 다만 문재인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며 들려줬다.

“고등학교 2학년 소풍 때였어요. 우린 산에 올라가 한창 놀고 있는데 소아마비에 걸린 학교 친구를 문재인이 업고 땀을 뻘뻘 흘리며 뒤늦게 올라온 거예요. 그 모습을 보고 우린 모두 죄책감을 느껴 내려갈 때는 번갈아 가며 그 친구를 업고 내려왔습니다.”

열여덟의 사춘기 고등학생은 이제 한 나라를 이끌어 가는 대통령으로, 한 나라를 대표하는 건축가로서 자신의 소명을 다하고 있다.
 

건축은 인간에게 무엇인가  
 

건축가 승효상.
건축가 승효상.

그만의 뚜렷한 철학으로 건축가의 길을 걸어 온 그에게 건축은 인간에게 무엇인지 그 의미를 물어 보았다.
“건축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개인이 죽어도 그 건축물은 남습니다. 건축이 땅을 점거하고 있는 이상 그 땅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건축은 자기 돈으로 지었다 해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건축의 역할을 말했다.
“건축은 인간을 가장 진실하게, 가장 선하게, 가장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잘만 하면요. 만약 잘하지 못하면 그 정반대가 되겠죠. 인간 내면의 존엄함이 건축을 통해 발휘되고 우리 삶을 존재시키는 아주 절실하면서도 적확한 도구가 건축입니다.”

그리고 그런 건축을 설계하는 건축가야말로 성직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진지하게 말한다.
“건축가는 타인의 삶을 조직해 주는 사람입니다. 건축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삶의 행태가 좌우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선 하나 긋는 것도 마지막 확신이 들 때까지 고민하고 주저하게 하는 일이어서 삶을 대충 살아도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하면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면서 건축가로서 40여 년을 살아 온 그가 지금도 선 하나 긋는 것을 어려워하고 주저하고 있다면서 자신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한다.

이제 집중해서 내 건축을 할 때

그동안 서울시 총괄 건축가라는 공공의 일에 몸담기도 하고, 최근 오스트리아 빈 공과대학의 객원교수로 지내다 오는 등 찾는 곳이 많아 자신만의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그가 올해는 건축가로서 자신의 일에 더욱 몰두할 것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가장 왕성히 활동한 나이가 대개 60대 후반입니다. 저도 이제 그 나이에 접어들었으니 더욱 집중해서 내 건축을 바로 할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40여 년을 건축가로서 뚜렷한 족적을 남겨 온 그가 이제야말로 자신의 건축을 바로 할 때라고 집중하겠다고 하니 세월의 연륜과 인생의 깊이가 더해진 그의 작품이 더욱 기대된다. 

그는 최근 노무현 대통령 기념관의 설계를 마쳤다. 노 대통령의 묘역도 그가 설계한 것이기에 기념관은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물으니 한마디로 말한다.
“건축을 설계한 것이 아니라 풍경을 설계했습니다.”

그리고 기자에게 봉하마을에 가 봤냐고 물었다. 아직 가 보지 못했다고 하자 바로 말을 이어갔다.
“봉하마을은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아주 아름다운 곳입니다. 거기에 큰 건축물이 들어오는 것은 맞지 않죠. 그래서 그 마을의 풍경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장소로 설계를 했습니다.”

기념관이라 하면 뭔가 크고 위엄 있는 건축물이 아닐까 하는 선입견을 무너뜨리는 답이었다. 건축이 아닌 풍경을 설계했다는 노무현 대통령 기념관은 내후년쯤 완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하늘과 바람과 땅이 숨 쉬는 그의 작품들

그동안 그의 대표작들을 보면 건축학도들에겐 전설이다. 유홍준 교수의 자택인 수졸당을 비롯, 여러 개의 마당이 건물과 담에 의해 나눠져 독특한 공간을 이룬 수백당, 공간을 나누고 비움으로써 숨 쉴 수 있는 도시로 나눈 웰콤시티. 파주출판단지, 아트 빌라스 제주 등 국내는 물론 베이징 장성호텔과 아부다비 문화지구 전시관 등 해외에서도 굵직한 작품들이 많다. 그가 설계한 건축 작품들을 보면 하늘과 땅과 바람이 느껴진다. 건물 안에 하늘이 들어와 앉은 듯하고 바람이 속삭이는 듯하고 흙냄새가 나는 듯하다.

그런 그의 작품 속에 들어가 있으면 인간의 존엄성이 더욱 높아지는 느낌이 들 것만 같다. 건축이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존재 가치마저 높여 주는 것은 왜일까? 그래서 그에게 건축을 할 때 무엇을 가장 우선으로 하느냐고 물었다.   

“저는 건축을 할 때 가장 먼저 그 장소가 들려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모든 장소는 고유해서 그 장소마다 내가 어떤 건축이 되고 싶어 하는지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장소, 그 땅이 들려주는 목소리부터 들으려고 합니다.”
장소와의 충분한 교감을 나누고 건축을 한다는 그의 말에서 분명한 철학을 지닌 거장의 면모가 느껴졌다.

그의 철학은 그의 사옥명이기도 한 ‘이로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로재는 중국 <예기>에 나오는 말로, ‘이슬을 밟는 집’이라는 뜻이다. 중국의 한 가난한 선비가 늙으신 아버지가 아침에 밖에 나오실 때 행여 몸이 상할까 웃옷을 준비해 드리기 위해 새벽마다 이슬을 밟고 간 길을 말한다. 요즘 같은 물신주의의 시대에 그렇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해 지표로 삼고자 이로재를 사옥명으로 했다고 하니 ‘빈자의 미학’이라는 그의 건축 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  

채움보다 비움, 소유보다 공유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40여 년 한 길을 걸어 온 건축가가 생각하는 좋은 집은 어떤 집인지 궁금했다.

“좋은 집은 자기 존재 가치를 가장 잘 나타내 주는 집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매일 해가 뜨고 지고 하지만 그것을 가장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집, 다시 말해 일상을 가장 아름답게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집이 좋은 집이죠. 그런 집은 인간을 선하고 진실하고 아름답게 해 줍니다.”

글 김은정기자 사진 양우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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