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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새해 희망을 말하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새해 희망을 말하다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9.01.23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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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는 차별 없는 세상에서 살도록…”
진선미 여성가족부장관.
진선미 여성가족부장관.

인권변호사 출신의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의 소원은 하나다. 차별 없는 세상,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 이에 진 장관은 ‘불이(不二)’라는 문구를 늘 가슴에 새긴다고 한다. ‘겉으론 별개인 것 같지만 그 근간에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새해엔 ‘젠더 폭력’ 아웃을 위한 일에 주력할 것이라는 진선미 장관. 남녀 모두 행복한 세상 만들기를 소망하는 진 장관이 전하는 새해 희망 이야기.

진선미 장관은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다. 한부모 가정 안에서 누구보다 바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는 진 장관. 그러나 그녀가 학창시절을 보냈던 전라북도 순창군은 시골로, 어린 여학생에게 너무나 차별적인 세상이었다. 이는 향후 진 장관이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는데 큰 밑바탕이 되었다.

변호사 시절, 진 장관은 호주제 위헌소송부터 구리·남양주 철거민 소송, 탤런트 고 최진실 씨의 친권소송 등 여성·아동 인권 사건을 주도했으며, 당시 뼈아프게 느껴야 했던 사회 구조적인 성차별 문제를 풀고자 전념했다. 의정 활동을 할 때도 형제복지원 피해 사건 진상규명법,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소수자·약자를 위한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같은 진 장관의 올곧은 인생에는 크게 네 남자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북5도민 출신으로 문화 예술적 감각이 뛰어났던 아버지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대학교 진학부터 사회초년병 시절까지 돌봐준 큰 오빠, 대학교 1학년 때 첫사랑으로 만나 30년 넘게 묵묵히 옆자리를 지키고 있는 남편, 변호사가 된 후 항상 귀감이 된 이석태 변호사에 대한 이야기가 인터뷰 내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외유내강형의 진 장관은 현재 “가정폭력부터 데이트 폭력, 디지털 성폭력까지 국가가 총체적인 젠더 폭력에 대해 체계적으로 접근해 이를 최소화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면서 “새해에는 가정폭력에 대한 대책을 적극 마련, 데이트 폭력·디지털 성폭력(웹하드 카르텔 포함) 등 젠더 갈등을 전면에 나서서 고민해줄 플랫폼도 만들 예정이다”고 밝혔다.

다음은 진선미 장관과 Queen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Q 어린 시절, 학창 시절의 진선미 장관님은 어떤 아이, 학생이었는지요?
A 저는 전라남도 순창군에서 사남일녀 막내딸로 태어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어요. 이북5도민 출신으로 문화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아버지가 계셨는데, 중학교 3학년 때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후엔 내내 어려움이 있었지요. 어머니가 홀로 탁구장을 운영하며 5남매를 키우시느라 월사금도 제때 내지 못할 만큼 참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순창에서 공부를 잘하면 전주 같은 대도시로 고등학교를 가곤 했는데요. 아버지의 뜻밖의 죽음 때문에 혼자 남은 어머니와 계속 순창에서 학창시절을 보내야 했어요. 특히 시골은 어린 여학생에게 굉장히 차별적인 세상이었어요.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며 저도 모르게 위축되고 틀에 갇힌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아비 없는 자식’이란 흠을 잡히지 않도록 바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다행히 저보다 11살 위였던 큰 오빠가 아버지를 대신해 진학상담을 많이 해주셨어요. 큰오빠가 성균관대 법대에 진학했는데, 제게도 큰 동기가 되어 같은 길을 가게 됐습니다. 큰오빠는 제게 대학 선배이자 변호사의 길을 먼저 간 인생 선배이기도 해요.

Q 이는 향후 변호사가 되어 활동하는데 크나큰 밑거름이 됐다고 전해집니다. 처음 변호사가 됐을 때 가졌던 마음을 아직도 기억하고 계시나요?
A 사실 저는 사법시험 합격 후 ‘법무법인 덕수’에 점심 먹으러 갔다가 우연히 변호사로 취업하게 됐어요. 당시 대표였던 이석태 변호사님이 인권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었지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국내 대표 인권변호사로 찬사가 자자하신 분입니다. 그때도 동성동본 금혼, 호주제 등 성차별적인 법조문을 찾아내 문제 제기를 하고 계셨어요. 저 역시 신입으로 들어가 호주제 폐지를 위한 공부 모임을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위헌소송 변론도 준비하게 됐지요. 덕수에는 사회 소수자나 약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려는 변호사들이 상당했어요. 그곳에서 변호사 인생에 첫 발을 디딘 게 제게도 너무나 큰 행복이었습니다. 초기 인권위원장과 조선대 총장을 역임했던 고 이돈명 변호사님도 덕수 출신인데요. 이돈명 변호사님의 ‘법이 따뜻한 한 그릇의 밥일 수 있다’라는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지금도 제가 하는 일들이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Q 과거 변호인으로서 호주제 위헌소송 공동변호인단,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백인변호사단 등 여성, 가정과 관련된 일을 많이 하셨어요. 여성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신념이 있었는지요?
A 제가 처음부터 신념에 가득 찬 사람은 아니었어요. 당시 법무법인 덕수의 유일한 여성 변호사로서 자연스럽게 가사 사건을 도맡으며 사명감을 가지게 됐습니다. 호주제 위헌소송부터 구리·남양주 철거민 소송, 탤런트 고 최진실 씨의 친권소송 등 변호사 시절 주로 인권 분야에 집중해 온 것도 마찬가지예요. 변호사로 활동하며 알게 된 우리 사회의 구조화된 성차별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정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참 감사하게도 정치 부문 여성 대표성 제고를 위한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특히 제19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위원을 지내며 형제복지원 피해 사건 진상규명법, 성폭력처별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소수자, 약자를 위해 일하는 마음을 계속 잊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에서야 신념이라고 한다면, 늘 마음속으로 되뇌는 문구인 ‘불이(不二)’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겉으론 별개인 것 같지만 그 근간에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궁극적으로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는 제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공감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끔은 소수자 편에 서면서 비난받는 일도 생기지만, 그럼에도 항상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길을 가고자 합니다.

 

진선미 장관.
진선미 장관.

 

Q 옆에서 큰 지지대가 되어주는 남편은 어떤 분이신가요?
A 남편은 법대 신입생 때 만난 여섯 살 위 복학생 선배예요. 경상도 분인데요. 전라도 여자와 경상도 남자가 만났다며 다들 신기해했지요.(웃음) 14년간 연애한 끝에 사법연수원을 마칠 무렵인 1998년 결혼식을 올렸어요. 남편은 제가 대학 졸업 후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어려울 때마다 항상 곁을 지키면서 힘이 되어준 아주 고마운 분이에요. 마치 ‘키다리 아저씨’처럼요. 1990년부터 개인적으로 수많은 일을 겪은 제 남편은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개인적인 이익보다 회사와 직원들의 삶을 유지하는 데 노력했습니다.

Q 호주제가 폐지될 때까지 남편과 혼인 신고도 미뤘다고 들었습니다.
A 네, 졸업하자마자 신입 변호사 생활로 바빠 혼인신고도 못 하고 살았어요. 그때 마침 호주제 폐지 준비모임에 참여하게 되면서 혼인신고 동시에 호주는 남편, 부인은 가족으로 당연시되는 걸 없애고 평등한 부부관계로 인정해달라는 부부들을 보면서 많이 반성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남편을 호주로 하는 혼인신고를 하는 게 자꾸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이에 오래된 남자친구, 같이 사는 남자에게 호주제가 폐지된 뒤에 혼인신고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어요. 제가 소송 준비를 잘해서 빨리 호주제를 폐지하겠다면서요. 결국 2008년 호주제 폐지에 성공했고, 새로운 가족 관계등록부 시행 후 19년 동안 사실혼 관계였던 저희 부부는 마침내 2016년 혼인신고를 하게 됐습니다.

Q 장관님의 가정 내에서는 양성평등이 실질적으로 잘 이뤄지고 있는지요?
A 양성평등이라…. 사실 저희는 아직도 부부라기보다 룸메이트 같아요. 아주 쿨한 룸메이트 혹은 소울 메이트 같은 느낌도 있지요. 우리 사이에 아이가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요. 그동안 몇 번 유산의 아픔을 겪으면서 지금은 사회적 아이를 키우자는 합의점을 찾았어요. 정말 조촐한 가족이 된 셈이지요.

Q 그럼 부부싸움을 할 때도 없나요?
A 부부싸움을 아예 안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서로 논쟁을 시작해도 굉장히 싱겁게 끝나곤 해요. 저희는 성향이 사뭇 다르거든요. 제가 막 화났을 때 남편은 이미 안정을 찾은 상태고, 남편이 업 됐을 때 저는 오히려 차분해진 뒤예요. 서로 싸움이라는 게 잘 안 되는 편이지요.

Q 이러한 남편의 든든한 응원 하에 앞으로 여가부 장관으로서 해야 할 일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또 하고 싶은 일들로는 무엇이 있나요?
A 제가 변호사 시절 호주제 폐지를 비롯해 여러 가사 사건을 맡으면서 든 생각이 있어요. 바로 ‘가족 제도가 좀 더 유연해졌으면 좋겠다’라는 거지요. 내 가족이 소중한 만큼 남의 가족도 소중하잖아요. 또한 내가 선택한 모습이 중요한 만큼 남의 선택, 피치 못해 처해있는 환경 등도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하는 거고요. 가족이 해체되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 됐지요. 그 해체 속에서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계속 찾아낼 수 있도록 여가부 장관으로서 적극 독려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시에 다양한 객체를 존중하면서 가족의 소중함도 일깨워주고 싶습니다.

Q 취임사에서 가부장제의 낡은 규범을 버린 뒤 그 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말씀이 기억납니다.
A 본래 사회제도는 언제나 구성원들의 삶을 보다 편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한 제도가 현대인들을 더 불편하게 하고 있다면, 이는 사회 인식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특히 가부장제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과연 맞는 제도일까,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지요. 가장 우선적으로 ‘결혼한 부모와 그 자녀’로 이뤄진 전통적 가족 외에 다양한 형태의 가족 구성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는 것이 큰 과제일 듯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함께 살아갈 것인지 선택할 권리가 있고, 사회는 이들의 선택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래야 사회도 통합과 안정을 이루고, 구성원들의 행복지수도 높아집니다. 제 소원은 하나입니다. 차별 없는 세상,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요. 이에 여가부는 현행 ‘건강가정기본법’에 대한 전면 개정을 추진 중입니다. 법명부터 가치 중립적인 용어로 바꾸고, 내용 자체도 더욱 포괄적인 가족 형태와 사회 인식변화를 담을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Q 새로운 가족 문화를 위해 더 필요한 것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A 가부장제 이후 새로운 가족 문화는 무엇보다 구성원 간 평등한 관계가 기반이 되어야겠지요. 특히 우리 사회가 성 역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가족 구성원들이 육아, 가사를 함께 분담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3개월 전 여가부 장관 취임 후 여러 분야의 여러 계층 사람들을 많이 만나왔는데요. 그 중 육아 휴직을 경험한 한 남성분의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처음 선택하기까지 정말 고민을 많이 했고,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해보니 정말 잘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사회편견으로 인한 짐을 덜고 육아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삶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정부가 ‘남성육아휴직 보너스제’를 시행하고, 내년부터 ‘부모 동시 육아휴직제’ 도입을 추진 중인 것도 남성들이 다른 가족들과 눈빛을 맞추는 삶을 지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위해 개인의 인식 변화는 물론 외벌이 남성 중심의 직장 문화 역시 개선돼야 하기에 여가부는 기업과의 업무협약 등에 대한 내용도 담아볼 계획입니다.

 

진선미 장관.
진선미 장관.

Q 아직도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한 성차별 문제는 어떻게 뿌리 뽑을 수 있을까요?
A 최근 제가 처음 정치를 꿈꿀 때 작성한 ‘나는 왜 정치를 하려고 하는가’에 관한 자료를 다시 꺼내 볼 기회가 있었어요. 한참 잊고 살았었는데, 이를 계기로 또 한 번 생각해봤습니다. ‘내가 왜 지금 여성가족부 장관 자리에 와 있는가’에 대해 말이에요. 우리가 그동안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여성이 사회에 진출할 제도와 법도 빠르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를 위한 사회적 준비는 잘 되어왔을까요? 제가 보기엔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과 조직 문화는 여전히 지체된 것 같아요. 그 갭 속에서 희생된 사람은 남성 혹은 여성이었던 거지요. 특히 남성들이 아직 여성의 성적인 의식의 진전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직 문화 또한 그만큼 미성숙했으므로 예전에는 그냥 웃고 넘어갈 일도 지금은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성범죄가 돼버렸어요. 이를 구성원들에게도 조금씩 알려줬어야 했는데, 그런 노력들은 등한시됐던 게 사실이에요. 그게 다른 성별이나 소수자들에 대한 반감으로 표출되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예전에 못 다한 일, 즉 성평등 교육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여성가족부는 이 문제를 청소년부터 시작해보려고 해요. 청소년 때부터 남녀가 ‘대립 관계’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공생 관계’라는 것을 가르쳐야지요. 서로에 대한 예절과 공존하는 법을 직접 논의하는 방식으로 성평등을 익힐 수 있는 과정을 만들어 볼까 합니다. 성평등 문제와 관련해서는 남녀 간 소통과 연대가 중요하다는 점을 제일 강조하고 싶습니다.

Q 이에 여가부가 새해 핵심적으로 풀어나갈 과제는 무엇인가요?
A 새해는 두말할 것 없이 ‘젠더 폭력’ 아웃을 위한 일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남녀를 통틀어 가정폭력부터 데이트 폭력, 디지털 성폭력 등 국가가 총체적인 젠더 폭력에 대해 체계적으로 접근해 이를 최소화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최근 국무회의에서도 여가부는 가정폭력에 대한 대처 방안을 발표했는데요. 가정폭력은 나를 보호해줘야 할 존재가 행하는 폭력이라는 점에서 그 비극성과 심각성이 매우 큽니다. 더 이상 가정을 유지한다는 명목 하에 폭력이 합리화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먼저 가정폭력 피해자 안전과 인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자 가정폭력 현장을 출동한 경찰이 현행법 요건을 갖춘 가해자를 즉시 체포, 접근금지 위반 시 징역형까지 부과하도록 하는가 하면 주거침입, 퇴거불응죄 등도 가정폭력 범죄에 추가하는 등 가해자 처벌을 강화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정 안에서의 폭력을 막아내는 게 국가의 책무라는 것을 선언하고 새해 관련 법률 개정 등 대책을 적극 추진할 예정입니다. 현재 누구나 공포에 떨게 하는 데이트 폭력, 디지털 성폭력, 웹하드 카르텔도 완전히 척결하고, 아예 젠더 갈등을 전면에 나서서 고민해줄 플랫폼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축입니다.

Q 마지막으로 퀸 여성 독자들에게 새해 덕담 한마디 해주시지요.
A 새해에는 특히 여성들이 사회에서 설 자리가 풍부해졌으면 하는 게 여가부 장관으로서 바람입니다. 제가 변호사 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여성 법조인을 보기 드물어 여성 변호사에 대한 의뢰인들의 신뢰도가 낮았어요. 정성껏 상담해줬더니 남성 변호사로 교체해 달라는 요구에 허탈한 적도 수두룩했지요. 이들의 태도는 참여정부 들어 한명숙 총리, 강금실 법무부 장관, 김영란 대법관 등 여성들의 사회 고위직 임명이 미디어에 다수 노출되면서 바뀌었습니다. 오랫동안 고착된 성 고정관념을 바꾸는데 여성들이 해야 할 일도 지대합니다. 퀸 여성 독자분들도 새해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유리천장, 유리벽을 깨고 우뚝 설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성평등한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일인 만큼 여성가족부도 민간 기업 여성 임원 비율 제고를 위해 일본처럼 성별 다양성을 기업의 투자기준에 반영을 추진하는 등 다방면으로 열심히 노력해 가겠습니다.


인터뷰 백준상 편집국장 |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 촬영 협조 시몬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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