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8 12:15 (목)
 실시간뉴스
MIT·하버드 출신 건축가 유현준, 건축을 통해 화목해지기
MIT·하버드 출신 건축가 유현준, 건축을 통해 화목해지기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9.01.25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현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유현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tvN 예능 <알쓸신잡>에서 잡학박사로 맹활약한 건축가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인 그는 예능 프로그램에 강연 형식을 버물려 마치 재즈처럼 신선함을 주었다. 하나의 건축물에 숨겨진 인문학적 스토리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게 그의 장점이었다. 일찍이 KBS 교양 <명견만리>, OtvN 예능 <어쩌다 어른>과 저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 실력을 발휘해 온 그다. 유현준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인문건축학자. 그 탁월한 사유의 비법은 무엇일까?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유현준건축사사무소. 한창 회의하느라 여념이 없는 그를 멀리서도 곧 알아볼 수 있었다. 젊은 직원들과 서슴없이 지내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권위적인 대표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사무실 분위기도 비교적 자유분방했다. 그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는 첫 만남의 긴장을 녹이는 매력이 있었는데….

<알쓸신잡> 출연으로 유명세를 치룬 유 교수. 방송이 나간 후 그의 삶도 많이 달라졌을 듯 했다.
“글쎄요.(웃음) 제가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종종 알아보긴 하더라고요.”

그런 그에게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물었다.
“평소 건축에 관심이 있었던 분들이 많이 좋아해 준 것 같아요. 건축을 단순하게 건물 짓는 일이라고만 오해했던 분들도 제 인문학적인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달리했고요. 아무래도 건축물에 얽힌 재미있는 스토리에 호응해 주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릴 적 꿈은 발명가

건축에 관한 인문학적인 지식이 상당한 그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과 하버드대에서 건축설계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소위 화려한 학벌에도 겸손해하는 그는 대학원 합격엔 포트폴리오의 힘이 컸다고 강조했다. 건축학계에서 포트폴리오는 한 사람의 건축 철학이 담겨 있는 아주 중요한 평가 매체란다. 최종 작품보다 마지막 디자인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본다고 한다.
“건축가는 자기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왜 이렇게 설계했는지를 많이 설명하거든요. 포트폴리오만 봐도 그 사람 생각의 흐름을 읽을 수 있어요.”

이는 건축업계에서 인재를 뽑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의 경우 자신뿐 아니라 회사 구성원이 생각하는 건축의 의미와 지원자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일치하는가에 가장 큰 비중을 둔다고 말했다.
유 교수가 건축에 대해 갖는 철학은 세 가지다. 일단 건물 안의 사람과 일의 관계를 최우선순위로 여긴다. 그리고 건물이 지어짐으로써 그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과의 관계, 마지막으로 건물의 사용자와 자연의 관계를 절대 놓치는 법이 없다.
 

유현준 건축가
유현준 건축가

“핵심은 관계인데요. 저는 건축을 통해 사람들을 화목하게 하려고 해요. 또 인간과 자연 사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이러한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어릴 적 그는 단지 발명가가 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사실 발명가가 되려면 길이 없잖아요. 무슨 대학에 발명학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제가 학창시절 좋아했던 과목이 미술, 지리, 지구과학, 물리 딱 네 과목이었는데요. 우선 대학을 가야하므로 네 과목의 접점인 건축학과를 선택하게 됐어요.”

막상 대학을 다니다 보니 건축일도 하나의 발명과 비슷했다는 유 교수. 애초 그가 원했던 것은 컴퓨터나 핸드폰 등을 발명하는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 지우개와 연필을 연결해 기발한 지우개연필을 만들었듯, 그 역시 기존에 있던 것들을 하나둘 결합해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싶었다고 한다.

“건축이 딱 그래요. 창문부터 계단, 벽, 바닥, 지붕까지 수천 년 전부터 존재했던 것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매번 새로운 게 나오지요. 이로 인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달라질 수 있고요. 이것도 일종의 발명이지요.”

어머니의 특별한 교육관

결국 발명은 창의성과도 연결된다. 그는 1999년 멤브레인 디자인 공모전 3등을 비롯해 젊은 건축가상, 2013 올해의 건축 베스트 7, 대한민국 건축학회 무애건축상,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최우수상 그리고 지난해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까지 무려 20여 회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Boston Society of Architects Unbuilt Architecture Competition Honorable Mention상까지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건축가다.

그런 그가 어릴 때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도 궁금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그의 어머니는 확실히 교육관이 남달랐다. 가장 큰 특징은 칭찬에 인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는 항상 형이 가지고 놀다 부서진 장난감을 다시 조립하곤 했어요. 어느 날 황금박쥐의 떨어진 발에 모나미 볼펜을 꽂아 로켓처럼 만들어 놀고 있는 저에게 어머니의 칭찬이 끊이지 않은 기억이 있어요. 별 것 아닌 일에도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느냐?’, ‘정말 대단하다’라는 과찬도 마다치 않으셨지요.”

레고 같은 조립식 장난감을 선물받아도 설명서 한 번 읽어 본 적 없다는 유 교수. 무엇이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 만드는 일이 그에겐 습관이 되었다. 이 또한 선행학습을 경계한 어머니의 선견지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머니는 그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한글을 일절 가르쳐 주지 않았다.
“동화책을 봐도 한글을 모르니까 그림만으로 스토리를 상상했어요. 한 번 읽은 책도 두 번, 세 번 더 봤지요.”

특히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의 글을 읽기보다 자신의 생각을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그는 덧붙였다.
“사실 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요. 초등학교 입학식 때 제가 울었답니다. 다른 친구들은 다 한글을 아는데 저만 모른다면서요. 매일 받아쓰기도 다 틀려서 오고…. 그런데 돌이켜보니 오히려 또래 친구보다 한글의 원리를 깨우치며 재밌게 글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미리 공부하면 학교 다닐 때 재미없다던 어머니의 말씀이 맞았지요.”
 

유현준 교수.
유현준 교수.

생각의 방아쇠를 당기다

이러한 어머니 덕분에 유니크한 자신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그는 확신했다. 지금도 그는 여행 다닐 때 계획을 잘 안 세운단다.
“포털 사이트 블로거를 서칭하며 마치 숙제하듯 계획을 짜서 하는 여행은 비추예요. 심지어 저는 혼자 여행갈 때 숙소도 미리 알아보지 않아요. 그로 인해 꼭 들려야 하는 여행지를 스킵할 수 있지만 대신 남들이 못 본 곳을 다녀올 수도 있지요.”

이어 그는 청소년 권장도서도 싫어하며 실제 독서량도 얼마 되지 않는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앞서 언급했듯 그는 남의 생각을 읽기보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더 즐기는 편이다.
“그래도 제가 소크라테스보다는 책을 많이 읽었을 거라고 봐요.(웃음) 지금 같은 정보화 시대에 더 소중한 것은 얼마나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가 아닐까요? 저는 정말 좋은 책을 만났을 땐 한 번에 쭉 못 읽어요. 한 챕터씩 넘길 때마다 중간중간 상념에 빠지거든요. 지적으로 자극하는 책이 저에게 맞습니다. 제 생각의 방아쇠를 마구 당겨 주니까요.”

여러 방송활동 등으로 바쁘게 달려온 유현준 교수. 향후 사람과 일, 자연 등이 어우러져 소통을 기반으로 한 그의 화목하고 행복한 건축물이 새롭게 탄생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