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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방도감 우영미 대표... 전통 바느질로 한땀한땀
규방도감 우영미 대표... 전통 바느질로 한땀한땀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9.01.2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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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돌아가는 무명이불… 옛것이 좋아라
규방도감 우영미 대표.
규방도감 우영미 대표.

무엇이든 원하기만 하면 후딱 만들어주는 3D 프린트까지 나온 세상. 지금 이 순간에도 공장들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있을 터. 바쁜 현대인들을 위해 빨래는 세탁기가, 청소는 로봇청소기가, 심지어 끼니까지 자판기가 해결해준다. 과학 기술 발전 덕에 우리 삶은 분명 편리해졌는데…. 행복하냐는 물음에는 쉬이 답을 내놓는 이들이 없다. “우리가 조금만 불편을 감수하면 훨씬 건강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뭐든 빠르게 흐르는 도심 속에서 느릿느릿 자신만의 속도로 살고 있는 우영미 전통 수예 작가.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규방도감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마치 딴 세상에 온 듯 절로 힐링이 되었다.

옛 정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삼청동의 좁은 골목을 따라가면 마주할 수 있는 규방도감. 아담한 한옥 문을 열고 조심스레 발을 옮기니 주방에서 국수 삶는 냄새가 진동했다. 수예 작업실로 꾸며진 방 한 칸에서는 한창 바느질에 집중하던 우영미 대표가 온화한 미소로 기자를 반겼다.

우영미 대표는 전통 방식대로 침구를 만드는 수예 작가로 유명하다. 결혼 후 전업주부로 살면서 취미 삼아 조각보를 만들다 시누이의 제안으로 천연 염색을 배운 게 시작이었다. 물론 그녀의 자수법이 그리 고난이도는 아니다. 100% 수작업인데다 대량 생산이 어려워 자수는 작품에 포인트를 주는 정도로만 들어간다. 그보다 사람들은 그녀가 침구 하나를 만드는 전체 과정을 높이 평가한다.

화학제품, 무엇이 문제인가

침구는 피부에 직접 닿는 것인 만큼 소재부터 깐깐히 고른다는 우영미 대표. 요즘 흔히 쓰이는 화학섬유는 멀리한 채 인위적으로 가공되지 않는 실크, 무명 등 천연 소재만 취급하는 게 그녀의 작업 철학이다. 또한 무명은 화학 표백제 없이 수차례 삶고 말리며 두드리는 일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하얗게 만든다. 색상도 천연염색으로 뽑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 수고스러운 일을 15일 정도 지속해야 비로소 단 하나의 침구가 완성된다. 비나 눈이 와 햇빛이 없으면 작업 기간은 더 길어진다.

“제가 워낙 기계를 잘 못 다루거든요. 기계를 못 믿기도 하고요. 재봉틀은 물론 세탁기도 없이 여태껏 손빨래를 해요. 화학제품도 꺼려 세제는 일절 안 씁니다.”

이에 화학 덩어리로 이뤄진 시중 침구를 볼 때면 매우 안타깝다고 우 대표는 토로했다.
“천연 염색한 천도 세제로 빨면 색깔이 다 빠져버려요. 그걸 보고 화학 성분이 얼마나 안 좋은지 알게 됐어요. 처음엔 저도 화학 조각보를 썼지요. 며칠 지나니 손끝이 갈라지더군요. 천연 소재는 절대 그렇지 않거든요. 무엇보다 화학 섬유들은 쓰다가 버려도 안 썩잖아요. 뭐든 다 흙 속에 묻히면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예요.”

그녀가 여전히 천연 소재만을 고수하는 이유다.

천연 소재가 답이다

실제로 최근 나일론, 라텍스 등 화학 섬유로 된 제품들의 안전성 논란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아토피 등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부 질환들로 고통 받는 사람들도 늘어나자 천연 제품의 수요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 슬하에 아들과 딸을 둔 그녀 역시 어릴 때 비염이 심한 애들로 인해 모든 화학제품을 천연 제품으로 바꿔 치료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2005년 일산에서 문을 연 후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규방도감도 근래 들어서야 천연 침구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들로 인해 활기를 띠고 있다.

무명으로 된 이불은 통기성이 좋고 땀 흡수력이 매우 좋다. 어느 당뇨병 환자도 규방도감 이불로 교체한 뒤 잠을 푹 자게 됐다는 평을 심심찮게 한다고 한다. 몇 년 전에는 대기업 모 회장 측에서도 입소문을 듣고 찾아와 이불을 주문했다고 우 대표는 자랑스러워했다.
“비서실이 돌고 돌다 천연 소재로 해야겠다 싶었는지 모시로 된 여름 이불과 무명으로 된 겨울 이불을 하나씩 장만해 갔어요.”

침선(針線)

1 빨갛게 천연 염색된 베개 위에 수려하게 놓인 수예.2규방도감은 어디에나 천연제품이 넘쳐났다. 티슈 커버도 예외는 아니었다.3 베개에 포인트로 들어간 수예. 한국전통미가 풍긴다.4 무명으로 만든 아이 원피스. 살에 닿는 부드러운 촉감이 일품이다.
규방도감은 어디에나 천연제품이 넘쳐났다.

더욱이 누군가의 정성이 가득 담긴 수제품은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된 것에서 절대 느낄 수 없는 고유의 분위기를 품고 있다. 어떤 이는 아침, 저녁으로 이불을 펼쳤다 덥고 갤 때마다 심적으로 치유되는 기분이 든다고 이야기한다.

“규방도감에 들어오기만 해도 마음이 차분해진다는 분들도 계세요. 제가 만든 이불을 덮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고 전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 제일 큰 보람을 느낍니다. 어느 작품은 너무 예뻐서 팔고 싶지 않기도 한데요. 저마저도 바느질을 할 때 심신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아요. 그 순간만큼은 아무런 걱정이 없지요. 왜 옛날 어른들이 침선이라는 말을 썼는지 이해가 가요.”

특히 학교 폭력 문제가 심각한 청소년들에게 자수 수업을 해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고 그녀는 소원했다.

추억의 공간, 규방도감

지금은 부잣집 할머니들이 간간이 규방도감을 찾는다. 옛날 옛적 시집 올 때 샀던 오래된 이불, 베개 커버를 버리기 아까워하는 할머니들이 건네준 것들을 재료 삼아 리폼 하는 일도 요즘 그녀에게 있어 꽤 즐거운 작업이다. 인터뷰 중에도 버려진 이불을 재활용해 만든 고운 팔 토시를 들며 자랑 일색이었다. 당시 할머니들이 혼수로 해갔던 무명은 손주들 옷을 만들어 돌려보낸다고 한다.

“옛날 무명은 정말 귀해요. 지금은 그렇게 좋은 무명을 구할 수 없거든요. 저희 집에 오신 어르신들이 옛 추억에 젖으신 듯 무명을 한 보따리 가져와 곧 태어날 손주 배냇저고리며 귀여운 꼬맹이 원피스를 제작해 가신답니다.”

작업실 바로 옆에 마련된 쇼룸은 침구뿐 아니라 영유아 옷, 보자기, 각티슈 커버, 방석, 실내화 등 소품과 옛날 바구니를 다시 옻칠해 재상품화한 앤티크 제품들로 이목을 끌었다.

느리게, 건강하게

규방도감 우영미 대표.
규방도감 우영미 대표.

규방도감은 우 대표의 수예 작업실이자 쇼룸이지만 몇 달 전부터 음식도 판매하고 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온 손님들에게 된장찌개에 밥 등 정감 어린 식사 대접도 마다하지 않았던 우영미 대표. 그녀의 요리 솜씨를 알아본 이들이 하나둘 요리 클래스와 식당을 오픈하면 좋겠다고 했고, 그 바람은 곧 현실이 되었다.

길상사에서 잠깐이나마 사찰음식을 배우기도 했던 그녀다. 워킹맘임에도 한 번도 아이들에게 찬밥을 먹인 적 없었던 그녀의 집밥 경력은 전혀 흠잡을 데가 없었다.

“제가 행복하고 재밌게 살려고 시작한 일 때문에 아이들의 끼니까지 내팽개치고 싶진 않았거든요. 맏며느리라 손도 빨라서 사람들이 이렇게 맛있는 밥을 어떻게 뚝딱 해주느냐며 기뻐해 주시더라고요.”

규방도감의 메인 메뉴는 국수와 연밥. 음식 또한 화학조미료 없이 자연 그대로의 재료만으로 손수 요리하고 있다. 시시때때로 많은 여성이 모여드는 규방도감은 역사적 의미를 지닌 이름답게 의식주가 합쳐진 생활문화 공간이었다.

앞으로는 어르신뿐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천연 제품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그녀의 소망에 아들이 그 대를 이어 가고 있다. 젊은 층을 겨냥한 세컨드 브랜드를 만든 것. 이에 대견해 하는 우영미 대표가 마지막으로 전한 새해 덕담이 귀에 남았다.

“우리가 조금만 불편을 감수하면 훨씬 건강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어요. 무엇이든 대량으로 빨리빨리 만든 후 소비하고 버린 것들은 다시 엄청난 재난이 되어 돌아올 겁니다. 새해에는 다소 느리게 가더라도 모든 분들이 건강하길 바랍니다.”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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