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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오찬호가 말한다... 감정 오작동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
사회학자 오찬호가 말한다... 감정 오작동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9.02.06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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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오찬호.
사회학자 오찬호.

혐오와 폭력, 강박, 차별에 찌든 누군가를 삿대질하는 세상. 당신은 어느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누구나 어떤 면에서는 사회적 약자와 성 역할에 대한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사회 구조의 힘은 생각보다 대단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학자 오찬호의 이야기는 다소 불편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우리가 상식처럼 여기던 편견들을 속속들이 들추는 그가 말한다. “부끄러움을 제대로 느끼는 사람이 성장할 수 있어요.”
 

당신은 정말 괜찮나요?

개인이 행복해지기 위해 사회가 상식적이어야 한다고 믿는 오찬호. 그는 인류의 평등을 방해하는 고정관념을 발견하고 파괴하는 글쓰기를 주로 하는 사회학자이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진격의 대학교>,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등 저서를 통해 생생한 사례와 함께 독자의 옆구리를 훅 파고들어 한국 사회의 갑질을 폭로하는 작가라는 평을 받고 있다. JTBC <차이나는 클라스>, <말하는 대로> 등 TV 프로그램에서 논리적이고 훌륭한 말솜씨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방송 출연 이후 ‘불평불만 투덜이 사회학자’라는 별명도 얻었지만, 그는 오히려 이러한 타이틀을 자랑스러워했다.
“사실이니까요.(웃음)”

심지어 그는 한국 사람들이 일상에서 좀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문을 텄다. 우리네 평범한 일상 속에는 마치 공기처럼 익숙한 강박과 차별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란다. 가장 대표적으로 우리가 어릴 때부터 강요받아 온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라는 강박이 수많은 성차별을 낳았다고 그는 설명했다.

“최근 미투 운동에서 보듯 남성이 여성을 그런 식으로 대하는 게 자연스럽게 커 온 거지요. 지금까지 미투 운동에서 거론된 가해자들도 참 나쁜 사람들이지만, 지금 사회에서는 누구나 직·간접적으로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문화적인 속성을 배워 왔다고 봐요. 이는 한국 사회의 성폭력, 성희롱 등 각종 성범죄의 씨앗이 되기도 했습니다.”

감정 표현에 서툰 한국 사람들

특히 그는 한국 사회에 자리한 성 평등에 대한 많은 연구를 진행해 왔다. 사회학자라는 현미경적 시선으로 볼 때 사회의 구조적인 파워는 어마어마했다고 그는 회상했다.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가정 내 경제 활동과 가사노동부터 양성 불평등이 자리 잡아 온 지는 꽤 오래다.

한국 가정에서 경제적인 활동은 대개 남편의 책임이다. 남자가 돈을 버는 가정은 기울어진 운동장. 대신 여자가 가사 노동 대부분을 책임짐에도 모든 촉을 남자에게 맞추고 있다. 이러한 가정 구조에서만 해도 예민하지 않으면 캐치할 수 없는 숱한 성 불평등이 이뤄지고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멀리서 보면 행복한 가정이지만, 아내 역할을 하는 여성들의 마음속은 고름으로 가득 차 있을 터다. 불평불만 청개구리처럼 토 달지 말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이상한 주문이 만든 결과다.

“제 입장에서 보면 아내가 남편을 위해 밥을 차린다는 것도 너무 부자연스러워요. 제가 마치 아내를 가해하는 거 같지요. 저 역시 나름대로 성 평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만, 알게 모르게 행하는 차별들이 수두룩할 겁니다. 한국 사람이 유독 감정 표출에도 서툴다 보니 아내도 마냥 참고 견디는 것 같아요.”
 

오찬호 사회학자.
오찬호 사회학자.

꼰대란?

그런데 과연 우리가 무작정 참는다고 개인이, 사회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좀 회의적이라는 오찬호. 이에 그는 최근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라는 책을 통해 감정 오작동 사회에서 자신을 지키는 실천 인문학을 제시했다. 크게 혐오와 폭력, 강박, 차별이라는 키워드로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낱낱이 도려낸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우리가 상식처럼 여기던 편견들에 대해 얼마나 낯 뜨거운 줄 모르고 괜찮다고 했는지 얼굴 빨개질 질문을 마구 던진다. 먼저 그가 물었다.

“당신은 혐오하지 않습니까?”
일단 사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꼰대’라는 지칭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꼰대란 ‘너는 회사에 오는데 옷이 그게 뭐니?’, ‘화장은 왜 이렇게 떴니?’ 등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을 아무 이유 없이 부당하게 지적하는 어른을 일컫는다. 그러나 위에서 아래를 볼 때뿐 아니라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꼰대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자신은 몸매 관리 철저히 하고 개성 있게 옷을 입는다고 해서 배가 나오거나 옷을 고리타분하게 입는 윗사람을 흉보는 것도 어떻게 보면 꼰대지요. ‘나는 네가 뭘 해도 맘에 안 들어’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도 꼰대입니다.”

그가 정의하는 꼰대를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의 생각대로가 아니라 그저 관성대로 사는 사람이다. 위에서 내려오는 모든 지시를 권력적인 간섭으로 치부해 버리는 젊은 사람들에게도 엄연히 문제가 있다고 그는 단단히 꼬집었다. 

“무조건 할 말 없으면 꼰대라고 하는 젊은 친구들의 태도도 개인은 물론 사회 발전을 아주 저해하니까요. 인류 역사를 보면 앞서 배운 사람이 그 노하우를 후대에 알려 주며 발전해 왔습니다. 그 노하우가 얼마나 타당한지도 충분히 살펴봐야지요. 더욱이 서로 외모와 패션을 질책하며 모욕을 일삼는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편협했는지 반성해야 할 때입니다.”

맘충과 노키즈존에 대한 시선

아직도 당신은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폭력을 휘두른 적이 없는가? 더 나아가 일상에서 우리가 은연중에 내뱉는 병신이라는 단어, 이 또한 차별이라고 그는 되짚었다. 사랑의 매? 이도 엄밀히 말하면 폭력이다. 딱 한 걸음만 떨어져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생각과 행동을 타인을 향해 할 수 있는 용기. 이는 다른 말로 혐오라고 한다. 그럴만한 이유를 상대를 가려서 주장하는 사람, 혹시 당신 아닌가? 또 하나 예시를 제시하는 오찬호.

근래 논란이 된 맘충과 노키즈존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이 없는 쾌적한 공간을 이용할 권리를 주장하며 노키즈존에 찬성하는 어른들이라면 그의 말에 한 번쯤 귀 기울여 보자.
“우리가 맘충과 노키즈존으로 논쟁에 들어가면 자꾸 진상 부모들을 이야기하는데요. 저는 그걸 이해하라는 게 아니에요. 다만 인류는 사람이 싫을 때 그 행동을 통제하려고 선택해 온 방법이 있어요.”

예컨대 식당이나 카페 안에 ‘정숙해 주세요’라는 안내문을 붙이는 것이라고 그는 이야기했다. 무조건 엄마들이 유모차 끌고 와서 큰 소리로 수다 떠는 게 싫다고 칼로 무 자르듯 간단하게 노키즈존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물론 자영업자들도 목숨 걸고 운영하는 가게다 보니 사적 재산권에 대해서는 인정합니다. 그런데 맘충, 노키즈존이라는 단어 때문에 요즘 부모들이 너무 예민해졌어요. 아이들이 떠들면 남들이 혹여 맘충이라고 욕할까 봐 아이를 거의 학대 수준으로 조용히 시키더랍니다.”

이쯤 되어서 한 번 더 돌이켜 보면 어떨까? 요즘 대학생들이 카페에 와서 커피 한잔 시켜 놓고 온종일 공부하는 카공족도 큰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그렇다고 카페 앞에 대학생 출입 금지라고 붙여 놓진 않잖아요?”

잃어버린 감정 온도의 균형을 찾아서

뿐만 아니라 독해지기를 강요하는 강박에 대해서도 짚어 봐야 한다는 오찬호. 현대사회는 휴식조차 아껴야 잘 산다는 강박, 다이어트 강박, 절약해야 한다는 강박 등 셀 수 없는 강박이 잔재해 있다. 자신의 성공, 목표를 위해 필연적으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던 경험은 없는가?

“자신이 너무 철두철미해서 타인의 가치관은 모조리 무시했던 일 말이에요. 가장 흔한 예로 ‘놀 때는 화끈하게!’라는 말도 누군가에게는 부담을 줬을 거예요. 반대로 절약을 생활화하는 친구 앞에서 스타벅스 텀블러를 들고 있는 것 자체가 눈치가 보였던 기억도 있겠지요. 앞서 언급한 노키즈존과 연결하면 자신이 사천 원 주고 커피를 샀으니 이곳에서 조용히 있을 권리가 있다? 이것은 아주 위험한 말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이해가 아니라 남 자체를 아주 배제해 버린 셈이니까요.”

강박과 차별을 부추기며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부끄러움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를 그는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게 다 강박인 줄도 모르고 별걸 다 부끄러워하라는 사회, 비정상적이지 않나요? 내 집이니까 쿵쾅거려도 괜찮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하며 얼굴이 뜨거워져야 하는 순간 당당한 모습들을 보면 감정 오작동 사회가 분명합니다. 예민하게 왜 그러냐고요? 뭘 또 그렇게까지 하느냐고요? 좋은 게 좋은 거라고요? 아니오,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그래도 된다는 분위기 때문이라는 오찬호. 혐오와 폭력, 강박과 차별은 특별한 누군가가 특별한 상황에서 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사회적 분위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살다 보면 누구나 차별에 둔감한 사람이 된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러나 이 빌어먹을 사회를 만든 것도 우리라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다시 행복한 사회를 향해 갈 수 있을까?

이에 그는 행복한 내일을 위해 다른 이의 존엄성을 뭉개고 있는 자신의 오늘부터 발견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부끄러움을 제대로 느끼는 사람이 성장한다며 말이다. 무결점의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과오를 줄여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단다.

“해법은 제대로 제때 성찰하며 사는 거예요. 나중이 아니라 당장 해야 합니다. 이제는 그게 다 폭력이고 혐오이며 강박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감정 오작동 사회에서 벗어나야 해요. 잃어버린 감정 온도의 균형을 찾아 나섭시다. 이것이 시스템이 붕괴된 현실 안에서 어쩔 수 없이 숨 쉬고 살아야 하는 보통 사람들이 직접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실천적 대안입니다.”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 촬영 협조 프리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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