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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채 전 서울대 의대 교수, 웰다잉에 관한 철학
정현채 전 서울대 의대 교수, 웰다잉에 관한 철학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9.01.31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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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채 전 서울의대 교수.
정현채 전 서울의대 교수.

10여 년간 서울대생은 물론 대중을 상대로 죽음학 강의를 하며 ‘죽음학 전도사’로 불리는 정현채 전 서울대 의대 교수. 그의 전공은 소화기학으로, 위염이나 위궤양 등을 유발하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연구의 권위자다. 대한소화기학회 이사장, 대한헬리코박터 및 상부위장관 연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직업인 정 교수는 왜 죽음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의료현장 최전선에 있었던 그는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대학병원 교수인 그가 본 죽음은 대개 비슷했다. 대부분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집착하다가 자신의 삶을 제대로 마무리도 못 한 채 세상을 떠났다. 죽음은 ‘벽’이며, ‘소멸’이라는 인식 탓에 이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그 역시 부모님과 친척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나?’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 무렵 아내가 건네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의 책 <사후생>을 접하면서 죽음관에 큰 변화를 겪었다. 책에는 급성질병이나 사고로 거의 죽음에 이르렀다가 심폐소생술을 받고 극적으로 살아난 사람들이 전하는 근사체험 사례들이 두루 실려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심장이 멎은 뒤 환한 빛을 봤고, 세상을 떠난 가족과 친지들을 만났다고 입을 모았다. 누구나 한 번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다.

물론 이를 대하는 과학자의 시선은 사뭇 남달랐다. 과연 이게 정말일까? 저명한 의학 저널 <랜싯>이나 의과학 전문 학술지에 게재된 근사체험에 대한 논문을 모두 섭렵하다시피 한 그는 결국 죽음이 사방이 꽉 막힌 벽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문’이라는 것을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미국 버지니아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에서 발표한 3.000개의 케이스를 모두 살펴봤어요. 일례로 제임스 라인걸이라는 꼬마가 자신이 전생에 어떻게 죽었는지를 명확히 기억하고 있었는데요. 그 아이 증언을 추적해보니 진짜 50~60년 전 세계 2차 대전 때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일본에서 똑같이 사망한 사례가 있더라고요. ‘아, 우리가 죽음으로써 끝나는 게 아니구나’. 이 사실을 안 이안 스티븐스 정신과 교수도 매우 신중한 사람이라 말을 아꼈다고 합니다. 윤회 사상, 사후세계, 환생이 단순히 종교나 문화적 전통 믿음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과학 데이터로 증명됐습니다. 우리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더군요.”

이를 널리 알릴 경우 자살하는 이들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며 2007년부터 죽음학 강의를 시작한 그다.

죽음, 가족과 자연스럽게 논하라

죽음이 소멸이 아니라 ‘옮겨감’이라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까?
“이제는 죽음을 잘 준비해야겠지요.”

정현채 교수.
정현채 교수.

잘 사는 것만큼 잘 죽는 것도 중요해진 요즈음. 웰다잉을 위해 그 또한 조금씩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연구실 비품이나 자료를 학교 의학역사문화원에 기증 중이며, 매년 다섯 번은 헌혈을 한다. 원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강의 노트를 흔쾌히 복사해주는 일도 마다치 않음은 물론이다. 장기기증서약서와 유언장, 자신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면 기도삽관이나 연명의료를 하지 말라는 내용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작성했다.
“이때 가족들과의 사전 협의는 필수입니다.”

언젠가부터 가족과도 죽음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기 시작했다는 정 교수. 이제 죽음은 정 교수네의 자연스러운 대화 주제가 되었다. 아내와는 언젠가 올 사별의 날과 장례 과정도 미리 의논했다고 한다.

“제 장례식에 쓸 음악도 USB에 담아 뒀어요. 삼베 수의 대신 무명옷을 입히고 화장해 바다에 뿌려 달라는 사전장례의향서까지 철저히 만들어 놓았답니다.”
슬하에 딸 둘이 있는 그는 얼마 전 큰딸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썼다고 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우리는 무제한 여권을 가진 시간여행자. 힘들기도 했지만 보람과 즐거움이 함께했던 인생 수업을 마치고 본향으로 복귀합니다.’ 그가 미리 썼다는 묘비명이 여운을 남긴다.

마지막 성장의 기회

이렇게 적극적으로 죽음을 준비하던 중 그는 올 초 방광암 진단을 받았다. 처음 암 선고를 받은 환자라면 으레 부정, 분노, 일시적 타협, 우울, 수용 단계를 거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암 환자라는 사실을 바로 담담하게 수용했다. 오히려 죽음을 더 준비할 시간이 있다는 게 다행스러웠다고 한다.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심장질환으로 돌아가셨거든요. 형도 심장 질환 때문에 몇 년 째 응급수술을 받고 있었기에 저도 같은 질환으로 세상을 떠나겠구나 생각할 무렵에 참 의외였어요. 암이 우리나라 사망률 1위인데요. 제가 암에 걸린 것도 그다지 이상한 것도 아니지요.”

어쩌면 앞서 죽음에 대해 천착하지 않았다면 자신도 방황했을 것이라는 정 교수. 죽음학 강의의 최대 수혜자는 곧 자신인 셈이다.
“삶이 이렇게 제게 마지막 성장의 기회를 주네요.”

나는 누구이며,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남은 생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등 곧 닥칠 죽음을 준비하는 지금을 자기 삶을 정리하는 선물 같은 나날처럼 보내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죽음은 준비할 때 비로소 존엄해질 수 있으니까요.”

존엄한 죽음이란

뜻밖의 암 투병으로 그는 지난 여름 정년을 2년이나 앞당겼다. 죽음에 한 발짝 다가선 암 환자의 시각으로 10여 년 해온 죽음학 강의 내용을 더욱 보완한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가>도 펴냈다. 존엄하게 죽을 인간의 권리를 알리고, 많은 사람이 죽음을 제대로 알고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가능한 일찍 죽음을 직시해 자신만의 죽음관을 가지세요.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다 쓸쓸하고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지 말고요. 일흔이든 여든이든 나름대로 훌륭한 삶을 살았다면 삶의 길이를 무의미하게 연장하기보다 잘 마무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죽음으로써 인생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면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허투루 살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혹시, 유명을 달리한 사람 중 가장 존엄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칭송할 만한 위인은 없을지 궁금했다. 이에 그는 과거 가장 가까이에서 임종을 함께했던 고 정두희 서강대 사학과 교수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정두희 선생님은 5년 동안 위암 투병을 하다 돌아가셨어요. 병문안을 갔다가 마침 가족들과 함께 임종을 지켰습니다. 마지막까지 삶을 아주 잘 마무리하셨어요. 호스피스 병동에서 운명하셨는데,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가족과 격리된 채 혼자 인공호흡기 달고 새벽에 떠나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었지요. 죽음에 대해 미리 준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거예요.”

이어 그는 한 번도 만나진 못했지만 홍성훈 인천 홍정형외과 원장의 사례도 언급했다. 홍성훈 선생은 70세 넘어 건강검진을 받다가 위암이 발견됐다고 한다. 발견 당시 암이 온몸에 전이된 상태였다. 본인이 항암 치료를 안 받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죽는 순간까지 즐겁게 사진 찍으러 다니며 전시회까지 열었다. 전시회장에 온 지인들과 사전 장례식을 한 것이다.
“그 후로 한 달째 되는 날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다고 들었어요. 보통이 아닌 분이시지요.”

정현채 교수의 경우 현재 큰 수술을 받은 후 회복 단계를 밟고 있다. 올해 말 그의 죽음학 강의도 어느덧 500회째를 맞이한다. ‘타나톨로지(Thanatology)’라고도 불리는 죽음학. 인류학, 의학, 철학 등 여러 학문이 혼재된 연구가 한창인 죽음학이 그의 노력을 필두로 웰다잉을 위한 실용 학문으로 더욱 발전해 나가길 기대해본다.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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