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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서 명무와 딸 이주희 교수 ‘우리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의미’
한순서 명무와 딸 이주희 교수 ‘우리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의미’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9.01.3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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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춤의 모녀 전승
한순서 명무와 딸 이주의 교수.
한순서 명무와 딸 이주의 교수.

문화, 풍속을 이어받아 계승한다는 뜻의 전승(傳承). 특히 입에서 입으로 맥을 이어가야 하는 전통 춤사위를 전수, 보전하는 일은 그리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 어려운 일을 60년 가까이 지속해오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한순서 명무와 그이의 딸 이주희 중앙대학교 무용학과 교수이다. 더욱이 이 교수는 평생 외길만 걸어온 어머니의 혼이 담긴 전통 춤을 현대화하는 작업에도 열심이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모녀 전승이 또 어디 있을까?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한순서·이주희 모녀를 만났다.

“주희는 국악 신동이었어요. 어려서부터 제가 운영하는 무용 학원을 그렇게 들락날락하더니 다섯 살에도 춤을 곧잘 추더군요.(한순서 선생)”
“무려 60년 동안 오로지 전통춤을 추는 데 온힘을 다해 온 선생님에 비하면 저는 아직 갈 길이 멀었지요.(이주희 교수)”

한순서 전통춤 연구소에 모습을 드러낸 이주희 교수는 어머니인 한순서 명무를 한사코 선생님이라고 존칭했다. 같은 국악계에 몸담은 제자로서 어머니를 향한 무한한 존경심이 가득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평양 출신인 한순서 명무는 가야금 산조의 명인인 강태홍 선생으로부터 춤과 음악을 사사받고, 17세에 자신의 이름을 건 한순서 전통춤연구소를 열어 이듬해 개인발표회를 했던 천재 무용가로 명성이 자자하다. 아직도 그이의 눈물과 혼이 녹아든 살풀이, 북춤을 본 이들은 깊은 감동에 빠져 박수갈채를 멈추지 못한다.

명무 아래 국악 신동

화가와 결혼해 슬하에 삼남매를 둔 한순서 명무. 그 중 첫째 딸인 이주희 교수가 유난히 어머니를 잘 따랐다고 한다. 모두가 먹고 살기 힘들었던 1970년대. 장녀인 이 교수는 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어머니가 일하는 춤 연구소에 매 끼니를 받아 날랐다. 그러던 어느 날, 학생들의 콩쿠르 대비를 하던 그이가 준비가 생각대로 되지 않아 속상해할 찰나 그녀가 선뜻 춤사위를 뽐냈다.
 

한순서 명무.
한순서 명무.

“갑자기 ‘엄마, 내가 그거 할 줄 알아요’ 하더니 두 발을 번쩍 드는 거예요. 그 어린 애가 초립동을 췄어요. 생전 나한테 배운 적도 없는데 어찌나 잘하던지요. 타고난 소질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끼도 남달랐지요. 그 후에도 돈 내고 배우러 오는 남의 자식만 신경 쓰느라 제대로 봐주지 못했는데 이날까지도 딸내미 춤추는 솜씨는 아주 탁월합니다.”

어머니의 극찬 사례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이주희 교수.
“저로서는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이 잘 안 나요. 언젠가 문득 춤을 추고 있었다는 것밖에는요.”

늘 겸손한 그녀도 음대에서 가야금을 전공, 일본 오차노미즈여대에서 무용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이주희무용단을 결성해 한국과 일본에서 1000회 이상의 활발한 공연 활동을 펼쳐온 장본인이다. 옛 국악계에서도 그녀는 전통춤 꽤나 잘 추는 이로 장평이 나 있었다.

전통춤과 국악이 함께하는 종합예술

현재 국악이라고 하면 소리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예부터 국악이라는 말에는 춤도 포함돼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무용이 독립해 나가자 국악에 음악만 남게 된 것이다.
“그러니 저희 어머니 시대에 국악인이라고 하면 춤꾼을 이야기하는 거랍니다.”

이를 놓칠세라 국악과 춤을 따로 하는 현대 예인들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한순서 명무.
“사실 이 모든 게 같이 따라가야 해요. 음악을 알아야 춤도 잘 추고, 소리도 한가락 좀 해야 춤추는 멋이 더 곰삭게 나옵니다. 마음속에 감정이 우러나야 그 표현이 제대로 발산되는 법이지요.”

심지어 과거에는 공연할 때 입는 의상이며 족두리 등의 소품도 직접 손바느질로 만들었으며, 장구·북 등 악기에 들어가는 그림도 모두 손수 그렸다고 그이는 덧붙였다.
“국악은 반드시 종합예술이어야 해요.”
 

이주희 중앙대학교 무용학과 교수.
이주희 중앙대학교 무용학과 교수.

이 교수 역시 박동진 명창에게 소리도 배우고 가야금 악기를 다룰 줄 알기에 춤추는 감정이 다른 이들과 사뭇 다르다고 그이는 자랑을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어머니와도 쉽사리 한 무대에서 교감할 수 있었다는 이 교수. 전통 교육 방식에 서양식 대학이 들어서면서 종합 교육이 모두 분화되기 시작했다고 그녀는 설명했다.

“사실 춤꾼은 춤만 추는 줄 알고, 음악가는 음악만 하는 줄 아는데요. 이 모든 게 종합적으로 이뤄줘야 플러스, 마이너스 되어 비로소 자기만의 예술이 완성됩니다. 춤추는 사람도 음악을 듣고, 음악 하는 사람도 춤을 배워야 소통이 가능하니까요.”

이어 한 명무는 하나의 훌륭한 예로 강태홍 선생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끄집어냈다.
“그분은 가야금을 치시다가도 악기를 번쩍 들고 일어나 바닥에 딱 세우고 춤도 췄어요. 춤추다가 마이크에 대고 재밌는 변말도 하고요. 절름발이 춤에 오리 춤도 아주 멋지게 추었습니다. 그러면서 관중들을 웃겨요. 요즘엔 이런 사람이 없지요.”

그렇기에 더욱 모녀가 1, 2년마다 함께 하는 공연 <모녀전승>이 국악에 대해 좀 안다는 사람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가

인천시 무형문화재 범패·작법무 보유자인 일초 스님의 범패 소리의 웅장함과 함께 강태홍류 승무를 이어가고 있는 한순서 명무의 발 디딤새를 볼 수 있는 승무부터 동적이고 화려한 화관무, 한 명무가 직접 전수하고 있는 살풀이, 날렵하고도 비장미 넘치는 장검무, 무을농악의 전투적인 북놀이의 움직임과 상장고의 가락이 어우러진 상장고, 경쾌한 밀양아리랑을 배경으로 동심을 해학적으로 풀어낸 초립동까지 무려 12회 째 공연을 이어온 한순서·이주희 모녀.

이제는 눈짓만 해도, 입모양만 봐도 서로 통한다고 모녀는 행복해 했다. 어머니는 이러한 무대를 만들어준 듬직한 딸이 고맙고, 딸은 아무리 춰도 어머니의 춤을 따라갈 수 없다고 못내 부담스러워 한다.

무엇보다 앞으로 딸 이주희 교수가 짊어져야 할 짐이 사뭇 무거울 터. 어머니가 평생 고수해 온 전통 춤의 대중화는 아직도 풀어야 할 과제들이 산재해 있지 않은가.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여전히 대세는 K팝인 요즈음. 순수예술을 너무 대중화 하면 깊은 미가 떨어져 본래의 멋이 퇴색되고, 그렇지 않으면 관객이 더 이상 쳐다보지 않으니 큰일이다.

“전통춤이 고루하고 재미없는 것이 아니라, 공연을 보러 가면 너무 신이 나야 하는데요. 그게 아주 어려운 문제예요. 일본의 게이샤가 아직도 관객층을 보유하고 있듯 우리 전통춤도 무엇인가 체계적으로 쌓아갔어야 했는데, 전쟁을 많이 치르다 보니 전승의 맥을 올곧게 가지고 갈 기회를 여러 번 놓쳐버렸어요.”

이는 그녀가 대를 이어 세습하는 공연 <모녀전승>을 기획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만큼 배움의 참된 의미도 바래져 갔다고 그녀는 안타까워했다. 
“하다못해 저고리를 개는 것도 선생이 직접 방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제자가 어떻게 하는지 눈여겨보는 거잖아요. 한 지붕 아래 살면서 자연스럽게 세습되어가는 문화가 있어야 하는데 중간에 맥락이 끊겨버린 셈이지요. 사제지간이 돈독하다는 것도 다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창작도 전통을 기반으로 해야

무엇인가를 새롭게 만드는 창작도 기존의 전통을 기반으로 한 것이야 한다는 이주희 교수. 그녀는 전통을 계승하는데 있어서도 버릴 것과 취할 것을 잘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는 국악소녀 송소희와 유럽에서 전통 민요 <아리랑>을 재즈로 선보였음에도 그 혼과 감정을 오롯이 전달해 온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나윤선이 제일 바람직한 사례다.

그 길목에서 그녀는 향후 전통춤을 소재로 한 전시회를 하나 더 구상 중이다. 어머니가 예부터 간직해 온 무대 의상을 비롯해 장구, 공연 사진, 녹취본 등을 전시장에 종합예술로서 선보일 계획인 것이다. “저희 어머니가 바로 살아있는 사료이니까요.”

어느덧 팔순을 향해감에도 여전히 잠들기 전까지 전통춤에 대한 구상을 스케치할 정도로 열정이 식지 않았다는 한순서 명무와 그이의 딸 이주희 교수의 모녀전승도 아름다리 계속 꽃피우기를 힘껏 응원해 본다.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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