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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석-노영민 청와대 신구 비서실장 교체 안팎
임종석-노영민 청와대 신구 비서실장 교체 안팎
  • 오수연(자유기고가)
  • 승인 2019.02.02 09: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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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꿈 안고 떠나는 2인자 임종석 vs 문 대통령 일급책사 노영민

 

문재인정부 집권 2기 청와대가 노영민 비서실장 체제로 출범됐다. 집권 3년차를 맞은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최측근을 전진배치하며 ‘친정체제’를 강화했다.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1기 청와대 참모진이 시스템 구축과 안정에 전력했다면 이번 2기 참모진은 국정 성과 도출을 위한 인사로 평가된다. 임종석 초대 비서실장 등 1기 참모진들이 정치권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아  집권 여당 내 권력 지형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는 형국이다.(Queen 2월호 게재 기사로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지난 1월21일 UAE 특임 외교특보로 13일 만에 청와대로 복귀했다)

 
이례적 고별무대 만든 청와대

지난 1월 8일 오후 4시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 단상에 오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2기 청와대 참모진 개편을 발표했다.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오늘까지 대통령비서실장 임종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이 발표가 마지막 미션이다. 부족했던 기억만 가득하다”는 등 퇴임 소감을 밝혔다. 형식은 인사발표 브리핑이었지만, 떠나는 임 실장을 위한 고별무대가 마련된 자리였다.

물러나는 대통령 참모가 카메라 앞에서 별도의 고별사를 하거나 기자회견을 갖는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오로지 대통령을 보좌하는 책무를 갖고 있어 ‘참모는 입이 없다’는 게 청와대 불문율이다. 청와대 ‘2인자’가 인사발표를 위해 직접 단상에 오르는 것 자체가 극히 이례적이다. 그동안 인사발표는 대변인이나 국민소통수석의 몫이었다. 이날 자리에서 물러나는 임 실장이 ‘경질’이 아닌 소임을 마친 ‘아름다운 퇴장’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깜짝 이벤트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날 브리핑에선 임 실장의 소회를 듣는 시간도 따로 마련됐다. 그는 “노심초사 지켜봐준 국민께 감사드린다”며 “지난 20개월 동안 문재인 대통령의 초심은 흔들린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 “올해는 안팎으로 더 큰 시련과 도전이 예상된다. 더 힘을 내서 헤쳐갈 수 있도록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고도 했다.

자연인으로 돌아간 ‘2인자’ …2020년 총선에 승부수

임종석
임종석

임 실장은 이날 임기를 끝으로 자연인으로 돌아가지만, ‘정치인 임종석’의 행보는 이제 시작이다. 비서실장 자리를 정치인생의 마지막 여정으로 여겼던 과거 정권의 2인자들의 퇴장과는 다르다. 임 실장은 여전히 50대 초반의 현역 정치인이다. 청와대가 임 실장이 떠나는 길에 화려한 ‘고별행사’를 열어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임 전 실장은 국회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정무 감각과 조정능력, 특유의 친화력으로 청와대 안살림을 도맡아 무난하게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이 나온다. 특히 탄핵사태와 조기 대선으로 혼란 와중에 인수위도 없이 집권한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여러 출발 과정의 국정 혼선을 줄인 것도 그가 노력한 결과물로 꼽힌다.

그의 비서실장 수행 과정에 대한 공과엔 여론의 평가가 엇갈린 경우도 적지않다. 비핵화를 위한 우리 정부의 북미간 가교역할 과정에서 문 대통령을 보좌한 그의 역할과 노력의 결과로 지금의 북미나 남북관계가 나름의 성과를 냈다는 평가가 있다. 반면 참모로선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 하락을 막지 못하고 각종 국정 혼선에 대한 참모진 책임론도 꼬리표가 되고 있다.

일부 도드라진 행보로 야당으로부터 자기정치를 한다는 눈총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문 대통령의 해외 순방 중 강원도 철원 지뢰제거 현장 방문시 선글라스를 낀 것을 두고 야권에선 ‘자기 정치’를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이어졌다.

하지만 남북공동선언 이행추진위원장으로 남북정상회담 과정을 총괄하는 역할을 도맡았다. 또 현 정부 출범 이후 3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마다 준비위원장을 수행하며 두 정상간 담판에서 이전 회담보다 나은 성과물을 내놓는데 기여한 점 등이 모두 그의 공으로 불린다.
 
최종 목표는 차기 대권…

정치권에선 임 실장의 최종 목적지가 차기 대권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여권에선 임 실장이 한동안 휴식시간을 가지며 정치적 다음 수순을 모색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임 실장은 주변에 “당분간 쉬면서 가족과 여행을 가겠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청와대를 떠난 임 실장이 문재인 정부 초대 비서실장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정치적 잠재력이 크다는 점에서 여론의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까지 정치권에서 회자되면서 대권행보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 당장 2020년 21대 총선을 놓고는 종로· 용산 등의 지역구 출마설이 나온다. 차기 총선은 대권에 도달하기 위한 필수 기착지 가운데 하나다. 정치권 안팎에선 임 실장의 서울 종로 출마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정치 1번지’ 종로에서 승리할 경우, 임 실장은 곧바로 유력 대권주자로 올라서게 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도 종로를 거쳐 대권으로 향했다.

설 명절 전으로 예상되는 개각을 앞두고는 통일부 장관 입각설도 돌고 있다.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 정동영 현 민주평화당 대표가 장관으로 개성공단 가동을 성사시킨 뒤 당내 개혁그룹 정치인에서 일약 당의 대표적인 대권주자로 도약의 발판이 된 사례도 있다. 

야권에선 임 실장을 견제하기 위해 칼을 갈고 있다. 임 실장이 출마하는 지역에 ‘거물 인사’를 내세워 맞불을 놓겠다는 구상이다. 임 실장의 총선경쟁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2000년 16대 총선(서울 성동을)에서 34세의 최연소 의원으로 당선돼 재선에 성공했지만, 18대~20대까지 연거푸 고배를 마시며 금배지를 달지 못했다. 벌써부터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 대결 상대로 거론된다. 

문 대통령의 일급 책사…노영민
 

노영민(가운데)
노영민(가운데)

노영민 비서실장은 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원조 친문’으로 분류되는 인사다. 국회의원과 문재인 대선 후보의 선거캠프에서 보여준 기획력과 조직력을 토대로 청와대의 내부 기강을 잡고 외부 소통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그동안 폭넓은 정무감각을 보여준 만큼 청와대와 여당의 관계를 더욱 가깝게 만들면서 야당과 관계도 조율하는데 힘쓸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청와대의 국정 장악력과 추진력을 높일 수 있는 카드로 평가된다. 노동계와 기업계 양쪽을 경험한 만큼 노사 양쪽과 소통하고 경제정책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고 비교적 중도 성향에 현실감각을 갖춘 인사로 보인다. 의원 시절 기업 규제 완화와 반도체 육성 등에 상당한 관심을 보여 ‘시장을 아는 운동권 인사’로 꼽혔다. 2008년 ‘반도체의 날’ 지정을 주도하기도 했다. 노 비서실장은 임명 소감으로 “나는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 참 두렵지만 경청을 통해 부족함을 메우려 한다”며 “어떤 주제든, 누구든, 정책이든 가리지 않고 경청하겠다”고 소통에 방점을 찍었다.

주중 대사로 사드 갈등 해소 견인차 역할

그는 2017년 8월 문재인 정부의 첫 주중 대사로 내정됐다. 중국대사로 임명된 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양국 갈등 완화에 힘썼다. 한국-중국 통화스와프의 연장에 이어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도 힘을 보탰다.

중국 정부를 상대로 한국 기업의 담합 조사를 완화할 것을 요청하는 등 기업친화적 행보가 돋보였다. 중국사와 한시, 바둑 등을 통해 중국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좋은 평가를 얻었다. 중국 내부의 인적 네트워크도 상당히 갖춘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2017년 12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신임장 제정식 때 방명록에다 ‘황하가 만 번을 굽이쳐 흘러도 반드시 동쪽으로 향한다’는 의미의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는 글을 적었다. 이 말이 조선 시대 명나라 만력제를 기리는 사당 이름으로 사용되는 등 중국을 향한 충성을 의미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사대주의라”라고 반박한 뒤 “모든 일이 본래의 뜻대로 된다는 사필귀정의 의미”라고 강조했다. 사드 갈등 등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다시 잘 풀릴 것이란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
 
노 비서실장은 정치권에서 친문재인 계 핵심 인사다. 2003년 대통령정책실 신행정수도건설 추진기획단 자문위원으로 일하던 시절 문 대통령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당시는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계파 모임인 민주평화국민연대 사무총장을 역임하는 등 ‘친김근태’ 인사로 분류됐다.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2012년 민주평화국민연대 출신 인사들을 중용하는 과정에서 노영민을 후보 비서실장에 임명하면서 ‘친문재인’으로 떠오르게 됐다. 노영민은 문재인 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한 뒤 선거캠프에 참여한 의원 10여 명과 함께 ‘문지기(문재인을 지키는 사람)’ 모임을 만들었다. 그 후 최측근 인사로 활동하면서 ‘원조 친문’ 또는 ‘문재인의 스핀닥터(정치전략가)’로 꼽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시절 노영민은 당직 인선을 총괄했다. 이때 문재인 대표의 측근 인사들을 일컫는 ‘6인회’ 구성원으로도 꼽혔다. 다른 5명은 전해철, 박남춘, 홍영표, 김태년, 윤호중 의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경선에 출마했을 때 한 라디오 토론회에서 정치적 고민을 누구와 상의하는지 질문받자 “노영민 의원과 상의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동운동가에서 사업가로 변신하다

그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다니던 도중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77년 구국선언서 사건에 연관돼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한 혐의로 구속된 뒤 2년 동안 복역했다. 1979년 광복절 특사로 석방돼 사면복권 된 뒤 1980년 연세대 복학생협의회장을 지냈다. 그러나 그해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수배되면서 제적됐다.

1981년부터 1985년까지 서울, 오산, 청주 등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이때 생계를 위해 전기공으로 일하면서 전기공사 2급 자격증을 따 경력을 쌓았다. 청주에서 전기기술자노조를 출범하기도 했다. 1986년 전기공 경험을 살려 금강전기를 설립하면서 중소기업인으로 활동했다. 그 뒤 청주환경운동연합 이사, 아동학대방지센터 자문위원, 충북자치21 발행인 등 시민운동을 했다.

시집 강매 오점으로 남아

노 비서실장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이던 2015년 말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 카드결제 단말기를 두고 국회 산업통상자원위 산하 기관들에 그의 시집 ‘바람 지나간 자리에 꽃이 핀다’를 판매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강매 논란’에 휩싸였다. 시집 강매 논란의 여파로 노영민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에서 물러났다. 더불어민주당 윤리심판원도 자체조사를 통해 노영민에게 당원 자격정지 6개월의 징계를 처분했다. 노영민은 2016년 20대 총선에도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0대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청주 흥덕구)에 시인이자 비례 초선 의원이었던 도종환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노영민은 도종환 후보의 지원유세에 참여하며 당선에 일조했다.
 
청주 토박이 노영민

그는 청주 석교초등학교와 주성중학교,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6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지만 민주화 운동으로 구속과 기소를 연이어 겪고 1980년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수배되면서 제적됐다. 1990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6남매 가운데 넷째다. 대학 동문인 부인 최영분씨는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공장에 함께 취업해 노동운동을 했다가 1983년 결혼했다. 슬하에 노해영씨와 노해준씨 2명의 아들을 뒀다. 노해영씨는 2010년 26세의 나이로 홍재형 국회 부의장실 기획비서관(4급)에 채용돼 특혜채용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시인 등단 경력…독실한 기독교 신자

취미는 바둑으로 아마 2급의 실력이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한국과 중국 사이의 ‘바둑 의원외교’를 진행했고 주중대사 시절에도 바둑으로 중국 인사들과 교류했다. 3대째 기독교를 믿는 독실한 신자다. 아버지는 장로, 형이 목사로 알려졌으며 자신은 교회 고등부 시절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학생운동을 할 때도 연세대학교 기독학생회(SCA)를 이끌었다.

예술에도 상당한 관심이 있다. 미술에 일가견이 있고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학창 시절에는 문학서적에 심취했고 신동엽 시인에게 빠져 갑오년 동학혁명을 노래한 서사시 ‘금강’ 전편을 암송했다고 한다. 1997년 지역 미술작가를 후원하는 동호인모임 무심미술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이장섭 충청북도 정무부지사와 시민운동을 함께 했다. 이장섭 부지사는 노영민이 3선 의원을 지내는 동안 보좌관과 정무 특보 등을 맡은 측근 인사이기도 하다.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비서실장 임명 직후 페이스북에서 “노영민은 회사를 경영한 경험과 실물 경제의 이해를 바탕으로 경제계와 원활하게 소통하고 실물경제를 정확하게 진단해 대통령에게 고언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인사”라고 평가했다.


[Queen 오수연(자유기고가)] 사진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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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파두목림종석 2019-02-02 14:45:14
두 놈 공통점.........골수빨갱이라는 점..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