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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담채화의 대가, 오용길 화백... 중국 명산 대작 산수화로 돌아오다
수묵담채화의 대가, 오용길 화백... 중국 명산 대작 산수화로 돌아오다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9.02.02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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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길 화백
오용길 화백

우리에게 화사한 동구 밖 꽃 풍경 그림으로 유명한 산수화의 대가, 오용길 화백이 중국 명산을 여행하고 그린 대작 산수화로 화단의 관심을 끌었다.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이고 있는 오용길 화백을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Queen 백준상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한국화가 오용길 화백(72)이 지난해 4월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작품전을 열었다. 오 화백은 현재 이화여대 명예교수로 운보 김기창, 오광 안동숙의 뒤를 이어 동양화가들의 단체인 후소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가는 지난 2013년부터 올해까지 그린 산수화 26점을 지난해 전시회에서 선보였다. 황산 무이산 태행산 안탕산 등 중국의 명산을 돌아본 뒤 그린 작품들로, 500호 이상의 대작들도 6점이나 내걸려 관람객들의 환호를 자아냈다. 폭이 4m에 육박하는 커다란 그림들은 디테일이 살아 있어 그 앞에 선 관람객들에게 마치 산속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중국 명산의 절경을 힘들이지 않고 짧은 시간 안에 둘러볼 수 있었던 만족감도 적지 않았다.

최소 100호에서 500호를 넘어서는 작품들은 모두 지필묵(紙筆墨), 즉 한지나 화선지에 먹과 수채화물감을 안료로 사용하여 동양의 붓으로 그린 그림들로 놀라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동양의 붓으로도 서양화에 못지않은 디테일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 처음에는 쉽게 믿겨지지 않았다. 오용길 화백이 국내 최고의 수묵담채화가로 꼽히는 이유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전시회였다.

중국 명산의 비경을 그린 대작 산수화 화제
 

중국 황산.
중국 황산. 오용길 작.

“중국산의 스케일이 커서 크게 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쉬운 그림이냐, 어려운 그림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대작을 그리는 데는 보통 한 달 이상의 기간이 걸립니다. 중국의 많은 산을 가본 것은 아닙니다만 가봤던 산 중에서는 황산이 제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설악산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규모가 어마어마하고 험함과 수려함, 아기자기함을 모두 갖췄습니다.”

경기도 안양의 작업실에서 만난 오용길 화백은 중국 명산에서 만난 자연의 아름다움이 아직 눈에 선한 듯했다. 자연에 대한 그런 경외와 감탄 없이 작품을 완성하기란 쉽지 않을 터였다.

고령인 데다 중국산의 규모가 커서 산행에 어려움이 있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중국은 자연공원으로의 접근 시설이 워낙 잘 구비되어 있는 데다 오 화백은 평소 테니스 등으로 몸이 단련되어 있지 않았던가. 그의 얼굴과 몸에 흐르는 건강함은 그가 아직 청년다움을 온전히 잃은 것은 아님을 알려주었다.

작업실에서 중국 명산을 스케치 하듯 찍어온 자료 사진들을 볼 수 있었다. 산의 풍경을 조각조각 이어붙인 사진들은 사실 대단하진 않았다. 그 성긴 사진들을 토대로 작가는 유려한 필치와 조형감각으로 현실보다 더 대단한 산수풍경들을 완성해냈다.

주로 암봉에 숲과 나무들, 그리고 가끔은 마을 풍경이 정겨움을 더했다. 그의 산수화 풍경은 전통 산수화에서 보았던 범접하기 쉽지 않은 산, 이상화 된 산은 아니었다. 원경의 산과 숲을 전통성이 강한 수묵으로 표현했지만 근경 부분에서는 세필의 채색으로써 나무 잎사귀 하나하나를 정성으로 그려낸 필묘가 돋보였다. 전체적으로 수묵과 채색의 균형으로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는 화면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한 서정을 이끌어내게 했다.

오 화백은 대작을 종종 그린다. 그림 값이 워낙 높아서 일반에 팔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미술관용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는 2010년도 들어 자연을 배경으로 한 풍속화를 4~5점 그렸는데 모두가 대작이다. 우리 주변의 숲을 배경으로 들어선 인물들에게는 각자 상황에 맞는 역할과 스토리텔링이 주어졌다. 얼핏 신윤복이나 김홍도의 그림이 떠올려졌다.

오 화백이 산수화가로서 산수와 풍경에만 관심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초창기 70년대 그가 주로 그렸던 그림의 소재는 인물이었다. 풍속화 중에는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에 그려져 세월호 침몰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담은 것도 있다. 당시 충격적인 세월호 사건은 짐짓 세상을 등지고 자연에 귀의한 듯한 작가에게까지 발언(?)을 하도록 만든 것이다.
 

진경산수의 거목, 오용길 화백
실경산수의 거목, 오용길 화백

한국 산수화의 새 지평 열어

자연을 바라본다는 것이 그리 순수한 것만은 아니다. 자연을 그려 표구해 간직하는 산수화라면 더욱 그렇다. 자연을 그리는 것에는 인간의 행위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전통 동양화에 있어 산수화는 산을 사실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이념이나 관념이 크게 게재되어 있고 실제보다 이상화 된 자연이다.

산수화가 실제 산을 대상으로 하게 된 것은 조선 말 겸재 정선(1676~1759)이 <금강전도> <인왕제색도> 등 진경산수(眞景山水)를 그리고 난 후부터이다. 오용길 화백도 겸재를 시조로 하는 한국화의 전통에 기반하고 있다.

“겸재의 진경산수의 정신을 현실에서 이어받아 자연을 수묵으로 그립니다. 진경산수를 어떻게 현대화 하느냐가 주된 목표이며 이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한국 수묵화에 서양 풍경화의 접목을 시도해왔습니다. 이를 꾸준히 하여 지금은 오종길이는 수묵 풍경을 한다고 평가하고 제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 화백은 한국화단에서 진경산수의 정신을 이은 실경산수(實景山水)의 거목이다.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선비화가로 비유되는 그는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온갖 유행의 유혹을 뿌리치고 묵묵히 필묵의 길을 걸어왔다. 오랫동안 수묵담채로 우리의 자연 실경을 격조 있게 화폭에 담아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한국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통산수(관념산수)와 대척점에 선 실경산수는 관념이 아니라 사생(寫生)을 통해 우리의 자연 모습을 담아낸다. 진경산수는 현대에 이르러 실경산수로 진화의 흐름을 이어왔다. 진경산수의 비조 겸재가 리얼하게 산수를 그린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이상화된 자연이 남아 있었다. 우주만물의 겉모습만이 아닌 본질을 드러내려 한 때문이었다.

실경산수 역시 우리 자연을 실 대상으로 하지만 자연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은 아니다. 오 화백의 그림도 실존하는 풍경은 맞지만 작가의 관념으로 재해석한 풍경들이다. 현실의 풍경과 심상의 풍경이 한데 어우러진 것이다.

오 화백은 1980년대부터 실경산수계열의 작품을 발표해왔는데 기존의 관념적 전통산수화에서 탈피해 친근한 풍경을 다룬 수묵화를 보여주었다. 특히 1990년대부터 시작한 매화, 산수유, 벚꽃 등을 화면 가득히 그린 화사한 그림은 작가 특유의 화풍으로써 많은 작가들과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대부분이 비경이나 절경이 아니라(오 화백이 명산을 배경으로 산수화를 그린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이름 없는 흔한 산과 들 등 시골풍경이라는 것도 파격이다. 특히 야산이나 마을 어귀의 매화, 산수유, 벚꽃, 진달래 등이 만발한 풍경을 그린 <봄의 기운(氣韻)> 연작은 오 화백 그림의 백미이다. 그는 화사한 그림들로 자연에 내재한 생명력의 기쁨과 환희를 드러내는데 익숙하다.

오 화백 그림의 대단함은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다양한 기법을 자유롭게 운용한 데 힘입은 바 크다. 그는 전통적인 수묵에 서양적인 감성의 조형방법을 탁월하게 접목하는데 있어 대가로 평가받고 있다.

평론가 김상철(동덕여대 교수) 씨는 “산수화와 시대정신, 새로운 산수경의 전개”라는 평문에서 “적잖은 이들이 자연을 소재로 삼고 산수에 천착하지만 그만큼 분명한 개별성과 확고한 조형성을 확보한 이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그의 성취는 ‘오용길 류’라고 칭할 만큼 강한 인상과 영향력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고 평했다.

진경산수의 정신을 차용하고 전통적인 재료 위주로 작업하지만 화면 구도는 다분히 서양화적이다. 탁월한 조형 감각에 명쾌한 필치는 보는 이로 하여금 탁 트이는 시원함마저 부여한다. 그는 채색을 많이 사용하고 때때로 추상기법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과도하거나 이질적인 정도로까진 나아가지 않는다. 기법의 절제로 결국은 담백한 그림을 완성해내고야 만다.

전통의 필묵을 사용해도 그 숙련도가 대단해 서양화에 못지않은 세밀화가 가능하다. 지난해 발칸반도를 여행하고 그린 <드브로니크 2경(二景)>은 이 같은 사실을 잘 알려준다. 기예가 정점에 도달한 그는 “필묵으로 표현 못할 것은 없다”고 말한다.
 

오용길 화백.
오용길 화백.

“사물을 통해 수묵의 매력을 보여주려 노력합니다. 동양의 붓으로써 선을 통해 사물을 표현하고 필을 통해 작가의 감정을 전달하려 합니다. 나머지는 동양화를 고루하지 않게 하려는 노력들이지요. 수련과 경험을 통해 지필묵을 잘 다룰 줄 알아 지금까지 이어왔습니다.”

오 화백은 지필묵은 그가 잘 했기 때문에 이어온 선택이라고 했다. 여러 시도를 해보았지만 결국엔 자신이 잘 하는 부분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그리는 대상이 조금 달라질 수 있어도 지필묵을 기본으로 하는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했다.

아울러 많은 수련이 필요한 지필묵의 특성상 그동안 자신을 키워준 스승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서울예고 시절 은사이던 김병기·안동숙 화백, 서울 미대 시절 은사이던 서세옥·박노수 화백 등이 그들로, “좋은 분들의 가르침 덕에 자부심을 갖고 스스로 채찍질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회고했다.

“남은 인생 좋은 그림 남기고 싶어”

오용길 화백으로부터 “그림 그리며 한 번도 힘들어 본 적이 없다” “스스로 예술가적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라는 말을 들은 것은 신선했다. 예술가라면 보통 고흐처럼 정열적인 화가를 떠올리는데 자신에게는 그런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는 착실, 꾸준했고 그림과 함께하는 탄탄대로의 인생을 살아왔다.

중학교 졸업 전에 이미 그림을 자신의 길로 정했고 서울 예고, 서울대 미술대로 이어지는 학업을 순조롭게 마쳤으며, 열심히 하다 보니 교수(이화여대 동양화과)까지 하게 되었다고 했다.

회사원이었던 부인을 중매로 만나 결혼해 슬하에 1남1녀를 두었다. 홍익대 동양화과 출신으로 현재 일러스트레이션 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며느리와 미술에 재주를 보이는 손녀딸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오 화백은 현대미술계에서 전통화단에 대한 우려와 희망도 나타냈다. 그는 “전통회화의 입지가 좋지 않으며 불리한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세상이 바뀌어도 시류에 흔들려도 남을 그림, 시대가 지나도 대접 받을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자신감을 갖고 작업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를 돌아보니 참 복 많고 감사한 게 많은 인생입니다. 그림 빼놓고 할 게 없으니 후대에 좋은 그림을 남기고 가겠습니다. 작가가 그리는 게 다 걸작은 아니잖습니까. 얼마 더 살지 몰라도 제가 가진 세계를 깊이 있게 부지런히 남기고 싶습니다."

[Queen 백준상기자] 사진 양우영기자 산수화사진 오용길 화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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