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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Queen 다시보기] 1990년 11월호 -PEOPLE/8년째 소년 소녀들에게 책을 보내 주고 있는 새우젓 아줌마 유양선
[옛날 Queen 다시보기] 1990년 11월호 -PEOPLE/8년째 소년 소녀들에게 책을 보내 주고 있는 새우젓 아줌마 유양선
  • 양우영 기자
  • 승인 2019.03.2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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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1월호
1990년 11월호 -PEOPLE/8년째 소년 소녀들에게 책을 보내 주고 있는 새우젓 아줌마 유양선
1990년 11월호 -PEOPLE/8년째 소년 소녀들에게 책을 보내 주고 있는 새우젓 아줌마 유양선

 

사람들은 그녀를 '책 아줌마'라고 부른다. 노량진 수산 시장에서 20년 남짓 젓갈 장사를 해오고 있는 쉰 여덟 살 유양선씨. 새우젓 · 멸치젓을 팔아 모은 돈으로 고아원과 각급 학교에 5천여만원 어치의 책을 사소 보내 주고 대학생들에게도 장학금을 주는 등 이웃을 위해 베푸는 삶을 살고 있는 유양선씨의 밝고 따뜻한 나날들.

직업은 새우젓 장수, 별명은 책 아줌마

83년도부터 지금까지 고아원과 국민학교에 5천여만 원 어치의 책을 기증했다, 대학에도 장학금을 몇 백만 원씩 보낸다, 양로원이나 복지원 등에도 정기적으로 성금을 보낸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아주 돈 많고 인정 넘치는 부자 혹은 자선 사업가를 떠올리기 쉬우나 천만의 말씀. 미담의 주인공은 부자도, 자선 사업가도 아닌 한 평범안 아주머니다. 바로 노량진 수산 시장 한 귀퉁이에서 20여 년째 젓갈 장사를 해오고 있는 새우젓 아줌마 유양선씨.

"새우젓 장수라고 우습게 보지 말아요. 보기는 이래도 이 장사가 수입은 쏠쏠하답니다. 아, 책도 돈이 있어야 사 보내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그게 어디저 혼자 좋은 일 한 건가요? 손님들이 새우젓을 많이 팔아 준 덕분이지. 언제 어디를 도와 줬는가 기억도 안 납니다"

'충남 상회'라는 상호가 말해 주듯이 유씨는 1932년 충남 서산의 가난한 농가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국민학교도 다니는 척만 했어요. 모를 내거나 보리 타작을 하는 날엔 아예 학교에 못 가도록 아버지가 책보를 감춰 버리셨거든요"

사춘기를 지나 앞가슴이 제법 부풀어 오르자 유양선씨도 여느 처녀들처럼 얼굴 한번 똑바로 못 본 신랑에게 시집을 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3년이 지나도록 임신이 안 되는 것이었다. 병원에 가 진찰을 받아 보니 그녀는 자궁 발육이 열 네 살 소녀 정도에 머물러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거였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어요. 결국 남편은 집을 나가 인천에서 딴여자와 살림을 차렸지요"

그때부터 그녀는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살아 꼭 성공하고야 말겠다고 굳게 마음 먹었다. 김장철 한 철만 장사 잘해도 일년을 먹고 산다는 말에 시작한 젓갈 장사는 제법 수입이 괜찮았다. 그러나 생활이 좀 폈다고 여유를 부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녀의 옷은 언제나 단벌이었고 반찬도 거의 안사 먹었다. 젓갈과 김치만으로도 밥이 잘 넘어갔기 때문.

하루는 교회에서 나온 아주머니들이 젓갈 바자회를 열어 고아원을 방문하다며 유씨의 가게를 찾아왔다.

"그들을 따라 상록 보육원에 갔을 때, 엄마라고 부르며 마구 매달리는 아이들을 보고 저는 두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습니다. 비로소 내가 할 일이 뭔가를 분명히 깨달은 거지요"

 

[Queen 사진_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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