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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Queen 다시보기] 1990년 12월호 -그림이 있는 아틀리에/유경채 화백
[옛날 Queen 다시보기] 1990년 12월호 -그림이 있는 아틀리에/유경채 화백
  • 양우영 기자
  • 승인 2019.04.27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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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2월호
1990년 12월호 -그림이 있는 아틀리에/유경채 화백
1990년 12월호 -그림이 있는 아틀리에/유경채 화백

 

충만과 공허가 공존하는 침묵의 세계

유경채

유경채(70세) 화백은 색채의 화가이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을 색깔로 표현한다면 무채색에 가깝다. 그만큼 변신의 폭이 큰 작가라는 뜻이다.

불과 스무 살의 나이로 선전(鮮展)에 입선한 것을 시작으로, 1949년 제1회 국전에서 '폐림지 근방'으로 대통령상을 수상, 화단(畵壇)에 보폭 큰 걸음으로 뛰어들었다.

초기의 작품은 사슴 · 해바라기 · 소녀 등 서정적 대상을 소재로 한 자연주의적 화풍을 보여 준다. 그러나 유경채 화백의 사실주의 회화 작품은 사물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화가의 사각, 즉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 재해석한 세계를 그려낸 것이다.

6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는 반추상의 단계에 접어 들었다가 60년대 후반에서 70년 후반에 이르러서는 자연과의 교감이 화면 속에 등장한다. '나무아미타불' '날' '비원' 등이 이 무렵의 작품.

그러다가 80년대 들어서자 또다시 도망치듯 대담한 변신을 시도한다. 그것도 안주(安住)에 빠져들기 쉬운 육순의 나이에.

그의 작품은 최근에 이르기까지 기하학적 구성의 단순 명쾌한 독자적 추상 세계를 보여 준다. 화면의 거의 전체를 차지하다시피하는 여백. 그것은 동약사상의 '충만된 공(空)의 세계'를 표현한다. 화면 중심은 비워둔 채 감각적인 색채는 변두리 쪽으로 밀려나가 최대한 억제되고 집약된 구성을 보여 준다.

작년에 고희(古稀)를 맞아 노화백의 이러하 끊임없는 변신은 그의 작가로서의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성향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는 천성적인 불사조 같은 작가'라는 게 화우(畵友) 이준 화백의 평.

유경채 화백의 신촌 화실에는 늘 거울과 향이 준비돼 있다. 거울을 보면서 작품에 대한 열정을 스스로에게 묻고,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향을 피워 마음을 모은다.

그렇게 해서 오랜 시간 창작에 몰입하다가 보면 무의식 상태에서 작가의 개성이 자연스럽게 표출돼 나온다. 유화백은 작가의 '오리지날리티', 즉 개성이 없는 작품은 이미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잃은 '제품'에 불과하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그 개성은 누에가 실을 풀어내듯 작가 자신이 자기 안에 내재해 있는 것을 작품 속으로 끄집어내야 한다는 게 그가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들려 주는 말이다.

한국 근대 회화의 산 증인 중의 한 사람인 유경채 화백. 그는 자신의 작품 192점이 수록된 두툼한 고희 기념화집을 받아들고서 문득 6.25직후의 어려웠던 때를 떠올렸다.

셋방을 꽉 채운 커다란 테이블 위에서 남편은 60호 크기의 대작을 그리고, 아내는 테이블 밑에 쪼그리고 앉아 가재 도구를 펼쳐 놓고 살림을 하던 시절. 그 궁핍하고 절실하던 때의 그림이 오히려 진실했다는 자성(自省) 때문이리라.

화집 출간 기념 회고전(11월15일~24일 · 현대화랑)을 가진 유화백은 요즘은 붓을 잡기만 하면 손에 힘이 쥐어진다. 화가는 붓을 놓는 순간, 매몰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Q

 

Queen DB

[Queen 사진_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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