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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찰 선암사... 선인들이 머물던 신선바위
천년고찰 선암사... 선인들이 머물던 신선바위
  • 유화미 기자
  • 승인 2019.04.06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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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산사 6
천년고찰의 역사를 간직한 아름다운 선암사.
천년고찰의 역사를 간직한 아름다운 선암사.


신라시대에 세워진 선암사는 천년고찰의 역사를 간직한 아름다운 곳이다. 선암이라는 이름은 ‘절 서쪽에 위치한 커다란 신선바위’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으며 이 바위 위에서 선인들이 바둑을 두었다고 전해진다. 커다란 개울 위를 가로지르는 무지개다리, 승선교를 건너면 그림처럼 나타나는 선암사는 속세에 물들지 않은 듯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유네스코 산사로 선정된 선암사를 찾았다.


선암사, 신선이 내린 바위

선암사가 위치한 소백산맥의 끝 줄기 조계산은 해발 889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동쪽에 선암사를 서쪽엔 송광사를 품은 불교의 성지라 불리는 곳이다. 신라시대에 창건된 선암사는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의 무구한 역사를 간직한 아름다운 고찰이다.

<선암사사적기>에 따르면 진흥왕 3년인 542년에 아도화상이 ‘바로암’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통일신라 헌강왕 원년인 875년에 도선국사가 재건해 신선이 내린 바위라는 뜻의 ‘선암사’라 명했다고 한다. 절로 가기 위해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무지개다리인 ‘승선교’와 그 밑으로 멀리 보이는 조그만 누각은 ‘강선루’라고 하니 선인들의 바위 선암사는 신선들의 세계인양 신비로운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곳이다.

선암사는 고려 선종 9년 문종의 넷째 왕자로 출가한 뒤 천태종을 개창한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크게 중창되었다. 선종이 의천에게 하사한 금란가사와 대각국사의 영정이 아직도 선암사에 전해 오고 있다. 조선시대 때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선암사 또한 어려 고비를 넘겨야만 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큰 화마를 입었으나 1698년 다시 중건되었다. 그러나 1759년 또다시 화재를 당했다.

계속되는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산 이름을 청량산으로, 절은 해천사로 변경했다. 현재에도 선암사 곳곳에 새겨진 물 수(水)자와 바다 해(海)자는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게 한다.
그러나 1823년 또 화재가 발생하자 대대적인 중창 불사를 단행했고, 옛 모습을 되찾아 원래의 이름 ‘선암사’로 돌아올 수 있었다.

현존하는 선암사의 전각 대부분은 이 때 중창된 것이며, 당시만 해도 60여 동이나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48년 여순사건, 1950년 한국전쟁 등을 겪으며 지금은 20여 동만이 남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1 선암사 전경 2 선암사로 향하는 승선교 3 대웅전의 모습
1 선암사 전경 2 선암사로 향하는 승선교 3 대웅전의 모습

정조가 후사를 위해 백일기도를 드린 원통전

현존하는 조선시대 다리 중 가장 아름다운 아치교라 평가받는 무지개다리, 승선교를 가로지르면 선암사에 다다른다. 선암사는 20여 동의 전각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게 대웅전, 원통전, 응진전, 각황전을 중심으로 4개의 법당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겹치마 팔각지붕인 대웅전은 순조 25년에 중창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사찰 건물로 선암사의 중심이다.

대웅전 뒤쪽에 위치한 원통전은 선암사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전각이다. 숙종 24년에 호암대사가 중창했다고 알려져 있는 이 건물에 얽힌 일화가 재미있다. 호암대사가 중창 불사를 위해 바위 위에서 기도를 드렸으나 대답이 없자 바위 밑으로 투신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코끼리를 탄 여인이 하늘에서 내려와 호암대사를 다시 바위 위에 올려놓고는 사라져 버렸다. 후에 이 여인이 관세음보살임을 깨달은 호암대사는 관세음보살 불상을 만든 뒤 원통전을 지어 이에 봉안했다고 한다.

원통전에는 정조의 염원도 담겨 있다. 대를 이을 후사가 없었던 정조는 원통전에서 백일기도를 올려 후사를 보았는데, 그 아들이 바로 순조이다. 순조는 이에 보답하기 위해 선암사에 ‘큰 복의 밭’ 이라는 뜻의 대복전이라는 현판을 직접 써 하사했다. 이 현판은 현재까지도 원통전에 남아 있다.

원통전 외에도 눈길을 끄는 것이 또 하나 있는데 해천당 옆에 자리 잡은 절집 화장실이다. 丁자형의 이 건물 안쪽에 앉아 창문을 바라보면 그림 같은 숲속 경관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건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해우소로 손꼽힌다. 근심을 풀고 번뇌가 사라진다는 ‘해우소’의 뜻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다.

 

4 선암사 봄 풍경 5 아름다운 선암사의 봄 6 첫 번째 사각형은 부처님의 다기물, 두 번째 물은 쌀 씻는 물, 세 번째 물은 과일 씻는 물, 네 번째는 허드렛물로 쓴다는 ‘칠전수각’
4 선암사 봄 풍경 5 아름다운 선암사의 봄 6 첫 번째 사각형은 부처님의 다기물, 두 번째 물은 쌀 씻는 물, 세 번째 물은 과일 씻는 물, 네 번째는 허드렛물로 쓴다는 ‘칠전수각’

 

100여개의 불화와 청매화의 아름다움이 그윽한 선암사

선암사에는 국내 최고로 손꼽히는 괘불을 비롯해 대웅전 석가모니불상 뒤에 걸려있는 영산회상도 등 전각 곳곳에 아름다운 불화가 무려 100여점이나 보관되어 있다. 이런 불화는 대부분 조선 숙종 때의 인물인 쾌윤거사의 손끝에서 탄생되었다. 호암대사의 스승이었던 침굉스님으로부터 그림을 배운 쾌윤거사는 평소에는 베로 오른손을 싸매고 있다가 그림을 그릴 때만 풀었다고 한다. 이런 그의 지극한 불심 덕분에 선암사 곳곳에서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불화를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불화들은 조선 후기 불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쓰이고 있다.

선암사의 또 다른 아름다움은 봄이 되면 절정을 맞이하는 수많은 화목들이다. 철에 따라 매화, 산수유, 철쭉, 동백 등이 피고 지지만 봄이 움트는 3월이 되면 ‘선암사 매화’라 불리는 고목 매화가 한 두 송이씩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대복전 뒤에는 100년도 더 넘어 보이는 청매화 고목 한 그루가 서 있는데,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황동규 시인은 ‘풍장’이라는 시집을 통해 선암사 매화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선암사 매화 처음 만나 수인사 나누고/ 그 향기 가슴으로 마시고/ 피부로 마시고/ 내장으로 마시고/ 꿀에 취한 벌처럼 흐늘흐늘대다/ 진짜 꿀벌들을 만났다.”


[Queen 유화미기자]  사진 선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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