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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택배작가 김도형의 사진과 이야기 '선운사 목련'
풍경택배작가 김도형의 사진과 이야기 '선운사 목련'
  • 김도형 기자
  • 승인 2019.04.02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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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적인 한국의 풍경을 택배기사가 물품 수거하듯 파인더에 담아와 사람들의 마음에 배달하다.
---풍경택배작가 김도형의 사진과 이야기)
풍경택배작가 김도형의 사진 '선운사, 2018'
풍경택배작가 김도형의 사진 '선운사, 2018'

 

휴대폰이 없었던 시절이니 오래전이다.

전라도 방면으로 출장을 갔는데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고창 선운사에 들렀다.

절 경내를 구경하고 아름다운 계곡길을 따라 사십 여 분을 걸어 올라 가니 진흥굴이 있었다.

그 때도 마침 지금 이 계절이어서 굴 입구의 아치 모양 실루엣과 연초록의 이파리가 달린 바깥의 나무가 어우러져 보기드문 이색적인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늘 가지고 다니던 카메라를 그 출장길에 지참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돌아왔다.

진흥굴의 요맘 때 풍경을 꼭 한 번 찍어야 되겠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지만 차일 피일 미루다 이십 여년이 흘렀다.

그러던 중 지난해 어느 봄날의 아침에 드디어 진흥굴을 찍으려 선운사에 도착했는데 가는날이 장날이라 전 날 밤새 불던 비바람이 아침이 되어도 그치지 않았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데로 운치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우비를 입고 진흥굴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예전에는 없던 차단막이 굴 입구에 가로놓여 있었다.
절을 찾은 관광객들이 굴에서 음식을 먹고 쓰레기를 버리는 것을 막을 방편으로 차단막을 세운 모양이었다.

실루엣으로 보이는 아치 모양의 입구에 대형 차단막 역시 실루엣으로 버티고 섰으니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오랜시간 벼르던 장면의 촬영이 허사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다시 선운사로 내려왔는데 대웅전 옆 목련나무 아래서 젊은 스님 한 분이 서성이고 있었다.

스님은 밤새 불었던 바람에 떨어진 목련 꽃잎을 한 참을 바라보기도 하고 가지에 매달린 꽃잎을 만져 보기도 했다.

찬란히 피었다가 한 순간 져버린 꽃을 안타까워 하는 스님의 마음이 파인더로 전달되어 왔다.

비록 진흥굴을 찍지는 못했지만 평생 다시 접하기 힘들 장면을 만난 것이 행운이었다.

지금 서울의 목련이 한창이니 선운사 목련은 지고 있을 것이다.


글 사진: 풍경택배작가 김도형(김도형의 서정적 풍경사진 인스타그램 갤러리 ID: photoly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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