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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Queen 다시보기] 1990년 12월호 -방송화제/5·18당시 혁명검찰부장 박창암 장군 직접고백
[옛날 Queen 다시보기] 1990년 12월호 -방송화제/5·18당시 혁명검찰부장 박창암 장군 직접고백
  • 양우영 기자
  • 승인 2019.05.0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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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2월호
1990년 12월호 -방송화제/5·18당시 혁명검찰부장 박창암 장군 직접고백1
1990년 12월호 -방송화제/5·18당시 혁명검찰부장 박창암 장군 직접고백1
1990년 12월호 -방송화제/5·18당시 혁명검찰부장 박창암 장군 직접고백2
1990년 12월호 -방송화제/5·18당시 혁명검찰부장 박창암 장군 직접고백2

 

"일본군 중위 박정희, 광복군에 참가했다니···그건 엉터리입니다"

과연 박정희는 8.15전후 소속부대원(철석부대) 60여 명을 이끌고 광복군과 합류, 항일운동을 전개했는가. KBS-1TV '여명의 그날'에서 일본군 중위였던 박정희의 행적이 미화되어 여론이 들끊고 있다. 당시 박정희와 함께 만주에서 일본군인으로 복무했던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박정희의 친일(親日)과 반일(反日)의 이중주를 집중취재해 보았다.

'멀리 지평선에 노을이 지고 넓은 들판에는 일본군과 팔로군들의 시체가 즐비하게 널려 있다. 여기저기 일장기가 부러진 채 버려져 있고, 타고 있는 장비들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고 부상한 자들은 계속 신음 소리를 낸다. 그 와중에 크게 부상한 장교 한 명이 소리를 내며 몇 발자국 걷다가 그 자리에 고꾸라진다'

KBS-제1TV 광복 45주년 실록 대하드라마 '여명의 그날'(김교식 극본, 이녹영 연출)의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어 카메라는 일본군 중위 박정희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해방 전야, 박정희는 일본 제국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수도 신경에 있는 사령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그의 일본명은 岡本實(오카모토 미노루). 통명(通名)은 高木政雄(다카키마사오). 기록에 의하면 조국이 해방될 때까지 북지전선(北支戰線)에서 중국군과 싸운 것으로 되어 있다.

박정희는 관동군 생활을 통해서 일본의 유신정신과 군인정신을 함양했을 뿐 아니라 국적이나 사상을 초원한 일본에 대한 동류의식을 길렀다 한다.

그의 투철한 일본 군인 정신은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에서도 지켜볼 수 있다.

그는 일본장교로 복무하기 전 만주군관학교 2기생으로 입교했다. 군관학교 생활에서 승마, 유도, 검도 등 모든 과목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려 졸업할때는 최우등생으로 뽑혀 당시의 만주 괴뢰국 황제인 푸이(溥儀)부터 금시계를 상으로 받기도. 일본 육사에서도 그의 성적은 탁월해 졸업할 때 조선인으로는 최초로 일본 육군대신상을 받았다.

이렇듯 일본 천왕에 대해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했던 박정희, 그런데 KBS-제1TV '여명의 그날'의 카메라는 일본군 장교 작정희의 색다른 모습을 찍고 있다.

'압록강을 건너 조국으로 진군해 갈 꿈을 안고, 일본 관동군 소속 박정희 중위가 이끄는 만군대원 60여명은 광복군과 합류한다'

광복군과 합류하는 박정희 중위의 모습이 브라운관에 비쳐지자 각계에서는 박정희의 관동군 시절의 행적이 미화되고 왜곡되게 그려졌다고 강력히 항의 했다.

한편 방송위원회는 '여명의 그날'과 관련, 의견 수렴을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는데···이 간담회에서 '여명의 그날' 도입부에서 관동군 중위였던 박정희가 과연 독립군과 접촉했느냐는 점을 놓고 작가와 학자 및 관련 인사들이 참석하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김우룡 교수(방송비평가 · 한국외국어대)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는 작가 김교식씨를 비롯하여 김창순(북한 연구소 이사장), 허동찬(대륙연구소 연구위원), 박영준(한국 광복군 동지회 회장), 이연복(서울대 교수), 이진욱씨(KBS 예능국 제작위원)등이 참석했다.

두 시간여 동안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서 학자들과 당시의 증언자들은 관련자료들을 들어 지나친 박정희에 대한 미화에 대해 공박했고 작가 김교식씨는 많은 관련자료와 서적들을 참고하여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집필했다고 답변했다.

박정희는 과연 광복군에 참여했는가?

그것은 완전히 엉터리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박창암씨(朴蒼岩).

5·16혁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그의 이름 석자를 기억할 것이다. 5·16직후 서슬이 시퍼렇던 혁명 검찰부장 박창암 대령. 머리를 빡빡 깎아 더욱 날카롭고 그의 두 눈에는 찬바람이 휘몰아쳤다. 5·16직후 그는 혁명검찰부장으로서 이른바 '자유당 부정축재자 사건', '정치 깡패 사건', '장도영 반혁명사건'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처리해 뉴스의 초점이 됐고···그후 63년2월 준장 진급과 함께 예편했으나 예편 한달만에 반혁명사건에 연루, 구속됨으로써 또 한번 세상을 놀라게 한 인물.

현재 그는 옛 서울고 한 건물에서 월간 '자유'라는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그 역시 박정희와 함께 해방전 만군 하사관으로 복무한 이력이 있다.

그를 만나 박정희의 독립군 참여설 진위를 알아보았다.

"한마디로 가당찮습니다. 20년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3공 당시였지요. 3공 정권이 나를 비롯한 만군 생존인물들에게 몇차례나 사람을 보내 박정희씨가 항일운동을 했다고 증언해달라는 부탁을 해왔으나 거절한 적이 있어요. 박정희씨가 항일 운동도 하지 않았는데···어떻게 그를 독립투사로 만들어 줍니까? 김일성이 독립투사라고 PR해대니까 덩달아 박정희씨도 독립투사가 되겠다고 난리니··· 그게 우상화 작업이지"(중략)

 

Queen DB

[Queen 사진_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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