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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 '우리 마음을 열어주는 박물관 이야기'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 '우리 마음을 열어주는 박물관 이야기'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9.05.13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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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

고고학자인 배기동 관장은 문화계 베테랑이다.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졸업, 1976년 호암미술관 학예연구원을 시작으로 박물관 일에 첫발을 디뎠다. 뒤늦게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 대학원에서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배 관장. 이후 그는 한양대 박물관, 한국박물관협회 회장, 국제박물관협의회 국가위원회 의장 등 국내는 물론 세계 박물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해오고 있다. 2017년부터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수장을 맡고 있다. 봄이 시작을 알릴 무렵, 배기동 관장을 만나 문화 안팎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무려 40년이 넘는다. 그가 외길을 걸어온 세월 말이다. 누군가 이토록 오래 한 분야에 몸담았다는 것은 수많은 풍파 속을 헤쳐 갈 어떠한 힘이 있었다는 뜻일 터. 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동안 어려운 일이 왜 없었겠어요. 그래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싶어요.”
지금 와 반추해보니 평생 문화예술과 함께한 지난 삶이 참 행복했다고 그는 이야기했다.

배기동 관장이 걸어온 길

1952년생인 그는 어릴 때부터 무엇인가 모으는 습성, 수집벽이 있었다. 그가 현재 박물관장이 될 수 있었던 단초다. 또 하나는 학창시절 여행을 다니며 들렀던 절에 대한 추억에 있다.
“그때만 해도 가난했던지라 무전여행을 하며 대구의 동화사부터 김천의 직지사, 속리산 법주사, 양산 통도사 등 국내 큰절 10곳을 다 둘러봤어요. 당시 스님들이 어린애라도 가리지 않고 손님이 오면 밥도 주고, 덕담도 아끼지 않았거든요. 그때 본 절 이미지가 참 좋은 거예요.”

이는 그가 문화를 대하는 태도를 가지게 해준 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남들이 법대, 의대, 상대를 갈 때 특이하게도 고고학이라는 학과를 선택한 그다. 과 동기 중 지금껏 고고학을 하는 사람도 그가 유일하다.

“다들 외교관이며, 삼성, 방송국에 들어가는데, 그 길이 도통 제 적성에는 맞지 않더라고요. 타고난 성향이 오지랖이 넓지도 않고, 한곳에 오래 앉아있기를 좋아해 자연스레 대학원을 갔지요.(웃음)”

시간도, 경제적 여력도 없었던 대학원 시절 썼던 역사시대 마부에 대한 논문이 일본의 한 학자의 주목을 받자 스승도 결국 그의 재능을 알아주었다. 어느 날 스승이 말하기를, ‘호암 선생이 박물관 만든다고 사람을 구한다는데 가볼래?’ 그 인연으로 그는 고 이병철 삼성 창업자가 설립한 호암미술관에서 본격적인 문화의 힘을 체험하게 되었다.

공부에는 정년이 없다

미술관 학예연구원은 학교에서 공부만 하던 골동품이 어떻게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로 승화되는지 일련의 과정을 쭉 살펴볼 꽤 귀한 기회였다는 배기동 관장.
“호암 선생이 꼬장꼬장한 늙은 기업가였지만, 자기 나름대로 정확한 판단 하에 터뜨리는 일을 보며 많이 배우기도 했어요.”

이후 서울대학교 박물관, 한양대 박물관에서 일했던 진한 경험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예연구원으로 일하러 갔지만 수천 권의 고고서적을 섭렵할 수 있었으니까요. 제대로 된 월급을 40대 되어서 받는 등 초장기에 고생도 상당했지만, 지난 40여 년간 충분히 보상받고도 남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양대학교 명예교수에 퇴임 후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온 것만 해도 그는 문화를 연구하는 사람 중 자신이 아주 럭키한 케이스라며 겸손해 했다. 물론 경기 연천군 전곡리 구석기 유적지 발굴, 전곡선사박물관 설립 등 자신의 전공 영역에서 남긴 치적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미션이 끝난 후엔 다시 현장으로 돌아갈 겁니다. 글 쓸 힘이 있는 한 계속 고고학을 연구해 논문을 발표할 거예요. 공부에는 정년이 없더랍니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
고고학자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

멍하니 앉아 있어도 좋을 박물관

그가 평생 몸으로 깨달은 문화예술의 힘은 가히 대단하다. 이에 이 시대 박물관의 역할은 가치 있는 우리 사회의 유산을 잘 지켜내는 데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더 나아가 박물관은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잘 활용해서 즐길 수 있을지를 연구해야 한단다. 즉 박물관은 전천후로, 누구나 잘 배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 이때 학교 시험을 위해 단순히 박물관에 있는 지식을 터득하는 데서 그치는 시스템은 과거의 것이다. 박물관이라는 공간 자체에 더욱 큰 의미가 있다고 그는 운을 떼었다. 

“박물관이야말로 최고급 공간이죠.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국가 보물도 많으므로 한국에 박물관장인 저보다 부자는 없을 겁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풍성한 기억이 엉켜 있고, 그걸 구현해 내는 박물관은 어느 곳보다 사무적이지 않으며 절대 허드레 공간도 아닙니다.”

이어 그는 박물관은 단순히 유물을 보러오는 곳이 아니라,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오는 곳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멋진 풍광이 있으면 멍하니 앉아 있어도 힐링이 되잖아요. 박물관도 그런 곳인 셈이지요. 인간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불상 옆에 앉아 있을 때 동해안 앞바다 솔섬을 보고 있는 것 이상이어야 합니다. 언젠가 일상에 감성이 떨어졌다 싶을 때 찾아와 재충전하고 갈 수 있는 곳 말예요.”

궁극적으로 박물관은 인공의 공간으로서 가장 인간에게 마음을 열어주고, 공감해주는 감성의 소통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는 게 그의 뜻이다.

아이들에게 신데렐라의 유리구두 하나씩을 안겨라

그 혜택은 아마도 배 관장의 자녀들이 많이 받았을 것이다. 슬하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둔 그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유물 발굴 현장이며, 박물관에 데려와 풀어놓았다고 한다.

“일이 바쁘니 별 수 있나요? 발굴 현장에서 아이들이 알아서 흙도 만지고, 저 땀 흘리며 일하는 것을 보며 자랐어요. 박물관은 제 집 마당인양 뛰어다녔지요. 제 직업이나 커온 환경 덕분인지 아들은 여전히 방황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기 길을 찾아 가고 있고, 딸아이는 뒤늦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며 미술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일찍이 누적되어 온 아이의 정서의 힘은 무시 못 하겠더군요.”

이에 그는 부모가 아이와 박물관에 와서도 절대 지식을 외우도록 강조하지 말고, 그저 스스로 박물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하라고 조언했다. 박물관에 들리기 전 아이들에게 신데렐라의 유리구두 하나씩을 안겨주라는 꿀팁도 아끼지 않았다.

“신데렐라가 잃어버린 유리구두를 들고 어딘가를 찾아가듯 아이가 직접 퍼즐을 맞출 수 있도록 궁금한 것을 던져주라는 뜻이에요. 동기부여 말입니다. 그래야 박물관에 온 아이가 스스로 몰입해 무엇인가를 얻어갈 수 있어요. 부모는 자녀를 문화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환경만 조성해주면 충분합니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보고 들은 것들은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다가 언젠가 빛을 발할 것이다.
“아이들의 본능을 믿으세요.”

인공지능 시대, 스마트 뮤지엄

결코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문화의 힘. 과거 우리 민족이 3·1 운동을 통해 일본과 독립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문화의 힘이다. 세계적으로 엄청난 붐을 일으키고 있는 BTS 등 케이팝 속 한류 문화도 오스트리아 원주민에서는 나올 수 없다. 근래 한국 음식도 세계적으로 건강식으로 호평받고 있지 않은가.

“우리 문화가 아주 신통합니다.”
다가오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 그는 앞으로도 이러한 우리 문화를 통해 평화와 번영에 힘쓸 예정이다. 제일 단적으로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내에 안내로봇 큐아이를 설치해 놓았다. 박물관에 대한 여러 정보를 안내해주는 인공지능 큐레이터다. 곧 구현해 낼 스마트 뮤지엄의 첫선이다. 인공지능이 단순 노동을 대체해 여가시간이 늘어날수록 박물관이 이를 때우는 준비를 더욱 서둘러야 한다는 배기동 관장.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에도 없는 정원이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광장에 폭포도 있습니다. 향후 국립중앙박물관을 레저의 공간으로 재탄생시킬 계획입니다. 국가가 박물관에 큰 선물을 했는데, 기대해 부응해야지요. 지켜봐 주십시오.”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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