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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Queen 다시보기] 1990년 12월호 -프라이버시 인터뷰/영화배우 신영균
[옛날 Queen 다시보기] 1990년 12월호 -프라이버시 인터뷰/영화배우 신영균
  • 양우영 기자
  • 승인 2019.06.02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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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2월호

"사업도 정치도 모두 뒷전, 나는 영원한 영화인"

영화배우이면서 사업가로, 정치가로 변화무쌍하게 그 모습들을 바꿔가며 상아온 영화계의 대부 신영균씨. 이제는 또 민영방송의 대주주로서 대중문화 예술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짐을 지게 되었다. 그가 털어놓는 자신의 사업 이야기, 잘 키운 자녀들 이야기, 그리고 오늘이 있기까지 가장 큰 조력자였던 부인 김선희 여사와의 요즘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취재했다.

1990년 12월호 -프라이버시 인터뷰/영화배우 신영균1
1990년 12월호 -프라이버시 인터뷰/영화배우 신영균1
1990년 12월호 -프라이버시 인터뷰/영화배우 신영균2
1990년 12월호 -프라이버시 인터뷰/영화배우 신영균2

60년대 은막을 주름잡던 배우이면서 동시에 사업가로 성공해 있는 명보극장 대표 신영균 회장. 지난 88년 총선 때는 서울 성동구에서 민정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던 그가 이제는 새로 출범하는 민영방송의 대주주가 되어 또 한번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문화예술계 인사로는 유일하게 민방에 참여한 신회장을 놓고 뒷이야기도 가지가지. "역시 신영균은 소문처럼 재벌이구만"에서부터 정부 고위층과의 관련설, 심지어는 태영그룹 윤세영 회장과의 친분설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기만 하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런 소문을 확인하려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현재 민자당에도 탈당계를 내놓고 있는 상태구요. 더구나 태영 윤회장과는 모임에서 몇 번 마주칠 기회가 있었을 뿐, 전연 친분 관계가 없습니다"

영화인 생활을 30년 가까이 하면서 TV에 의해 영화가 밀려나는 현상을 체험해야 했던 그로서는 TV매체의 위대성에 대해 늘 절감하고 있던 터. 따라서 이런 방송 매체를 운영하고 싶다는 것은 오래전 부터의 소망이었다. 원래는 유선 TV를 해보려고 했으나 민방 설립이 구체화되면서 그쪽으로의 참여로 마음을 바꿨던 것.

"재벌은 더욱 아닙니다. 명보극장을 비롯해서 갖고있는 사업체가 다 소규모예요. 다행히 운이 좋아서 큰 실패를 하지 않았기에 지금껏 버터온 것 뿐입니다"

부인 김선희 여사가 말하는 신회장의 성격은 무척이나 세심하고 꼼꼼한 편.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도 '안건너갈'정도로 신중하다. 그런 성격이 지금껏 큰 실패를 경험하지 않도록 했다는 설명. 그러나 지난 13대 총선 때는 엄청난 돈을 썼다는 고백이다. 부인 김여사의 표현에 따르면 평생 써도 남을 돈을 단 20일동안 물쓰듯 써버렸던 날들이었다. 

서울치대를 졸업, 엘리트 배우로의 출발

"사업을 계속하고 있고 정치에도 뛰어들어 봤지만 역시 나는 영화배우 신영균이라는 말이 제일 홀가분하고 또 기분이 좋습니다"

배우를 평생 천직으로 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신회장도 처음부터 배우는 아니었다. 그의 첫 직업은 치과의사. 서울치대를 졸업하고 한동안 개업까지 했었던 직업 의사였다. 그러던 그가 배우로의 전환을 이루게 된 것은 조긍하 감독의 영화 '과부'에 출연하면서부터. 첫 작품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고 그가 지금까지 영화판을 떠날 수 없게 만든 계기가 됐다. 

"제가 반대를 많이 했어요. 의사이던 남편이 하루 아침에 배우가 되겠다니 상상도 할 수가 없더군요"

나는 의사 신영균과 결혼한 것이지 배우 신영균과 결혼하지는 않았다며 계속 반대를 했으나 결국에 남편의 설득에 지고 말았다. 

"절대 당신 외에는 한 눈 팔지 않을테니 나를 믿어 달라고 했죠. 그랬더니 겨우 찬성을 하더군요"

막상 남편을 돕기로 한 부인의 입장에선 그 뒷바라지에 또 신경을 써야 했다. 신회장은 승승장구, 정상에 올라섰고 제1회 대종상남우주연상, 그리고 아세아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때는 부인이 더욱 기뻐했다.

"당시에는 위험한 촬영이 무척 많았습니다. 장비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액션물이나 사극에는 늘 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지요"

위기의식을 느낀 그는 사업을 생각하게 됐다. '갑자기 촬영 중에 내가 죽기라도 한다면···.' 이런 생각들은 아직 어린 아이들과 아내를 위한 대비책을 생각하게끔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극장을 운영하게 되었고 영화관이 많지 않았던 시대였으므로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자신의 말처럼 사업에도 취미가 있고 재주가 있었던 것 같다.

사업에의 길이 이렇게 잘 계산된 그의 계획대로 진행된 것이었다면 정치 입문은 사실 '무리하게' 뛰어든 것이기도 했다.

예총회장을 오래 하면서 특히 우리나라의 문화예술 사업이 뒤떨어진다는 생각을 갖고는 있었지만 정치에까지 뛰어들어 일을 벌이고픈 마음은 절대 아니었다.(중략)

 

Queen DB

[Queen 사진_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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