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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5월의 시인들-피천득·천상병·이육사
[기획특집] 5월의 시인들-피천득·천상병·이육사
  • 김문 논설위원
  • 승인 2019.05.31 1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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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5월이여 찬란하게 빛나라’
photo by KDH
photo by KDH

아련했던 낭만, 듣고 싶은 음악, 한 구절 읊어보는 자작시도 생각나겠다. 이제 5월이다. 5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목, 단연 꽃이겠다. 그리고 관련된 시일 것이다. 아름다운 5월의 신부도 생각날 테고… 그런 분위기를 맞아들이면서 5월의 시를 생각해보자.

피천득
피천득

인연이 오래돼 5월이면 생각나는 문학인, 시를 쓰기도 하고 수필을 쓴 사람이 먼저 생각난다. 금아 피천득이다. 5월을 찬미한 대표적인 문학이다. ‘내 나이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라는 대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추억의 수레바퀴를 돌려본다.

연분홍 치마가 꽃단장을 한 흐드러진 진달래가 집앞(서울 서초구 반포동)에서 먼저 반기던 그 봄날, 짙은 꽃향기를 맡으며 금아에게 넙죽 머리를 조아렸다. 악수를 건네는 그의 손이 어린애처럼 보드라웠다. 의자에 앉으며 그는 “책 읽는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라고 했다. 낡은 책장에서 셰익스피어의 시 ‘소네트’ 같은 영국 고전을 하나씩 꺼내 원어로 읽다 보면 하루가 후딱 지나간다고 했다. 대부분 예전에 읽은 것이지만 나이 들어 접하는 느낌이 새삼스럽다고 했다.

이어 2002년 월드컵 때 승리를 기원하며 시 ‘붉은 악마’를 지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붉은 악마들의/끓는 피 슛! 슛! 슛 볼이/적의 문을 부수는/저 아우성! 미쳤다. 미쳤다/다들 미쳤다 미치지 않은 사람은/정말 미친 사람이다.’

그렇게 처음 만났고 두 번째는 2006년 5월초였다. 그의 시 ‘오월’이 너무 좋아 퇴근길에 금아의 자택을 찾았다. 평생 가르치는 일을 천직으로 삼았기에 칠순이 넘은 제자들이 자주 찾는 집이다.

“선생님, 지난번보다 더 젊어 보입니다.”

“허허,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줄까. 영국의 버나드쇼가 채식주의자였어요. 나이 들어 죽었는데 이때 ‘런던타임스’에서 사설에 뭐라고 했냐 하면 ‘버나드쇼 장례행렬에는 염소와 소, 양떼들이 울면서 뒤를 따랐다’라고 했지. 평생 동안 육식을 안 했으니깐 그놈들이 얼마나 좋아했겠어. 어쨌든 사설에 그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해.”

피식 웃는 금아의 얼굴은 천진난만한 아이였다. 아껴도아껴도 부족한 봄날의 화사한 꽃이었다. 소설가 최인호는 “전생의 업도 없고, 이승의 인연도 없는, 한 번도 태어나지도 않은 하늘나라의 아이!”라고 읊었다.

“선생님, 오월이라는 시에 보면,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가락지,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고…’라는 게 있습니다.” “그거 말고, 좋은 시들 많아요. 영국시인이 그랬죠. ‘겨울이 깊었으니 봄이 그다지 멀겠는가’, 그리고 이것은 일본 시인데 ‘봄비니까 맞고 가자, 젖어서 가자’라고 하면서 요즘 같으면 황사로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생각할수록 아주 운치가 있어요”라고 말한다.

시라는 것은 영혼에 가장 좋은 양식이고, 시에는 순수한 동심과 맑은 서정이 담겨 있으며 마른 나무에서 꽃이 피는 것과 같다고 했다. 순수한 동심은 세상 살면서 희망의 빛을 선사하는 믿음이라고 강조했다.

세번째 만남은 2007년 5월26일, 장례식장이었다. 5월29일 태어나 98세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인형 ‘난영’을 꼭 껴안고 주무셨다. 난영은 딸 서영의 동생이라는 뜻에서 이름 지었다. 목욕도 시켜주고 예쁜 핀으로 머리도 묶어 주었다. 난영은 잠 잘 때 즐거운 꿈의 세계로 가는 길동무였다. 인형과 함께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을 자주 들었다. 아! ‘인연’이다. 흔하디흔한 단 두 글자임에도 불구하고 금쪽같은 소중함으로 다가왔다.

금아는 원래 천득(天得)이었는데 면사무소 호적계의 잘못으로 ‘天’이 ‘千’으로 바뀌었다. 획수가 하나 줄어드는 바람에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고 우스개 삼아 말하곤 했다. 3일 뒤 그가 태어난 날 땅에 묻혔다.

오늘이 5월 첫날이다. 금아의 시를 음미하면서 찬란한 이 달을 맞이하는 것은 어떨까.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는 것이 참으로 즐겁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금아와의 만남은 그렇게 찐하게 이루어졌다. 해마다 5월이 오면 생각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여 잊을 수가 없다. 다들 금아를 알 테고 한번쯤 대신 느껴보면 어떨지 생각해본다.

아름다운 5월이여, 찬란하게 빛나라
아름다운 5월이여, 찬란하게 빛나라(픽사베이)

교과서에도 나왔던 신석정의 시 ‘5월이 돌아오면’이라는 시를 감상해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다.

오월이 돌아오면
내게는 제법 식물 내음새가 난다
그대로 흙에다 내버리면
푸른 싹이 사지에서 금시 돋을 법도 하구나
오월이 돌아오면 제발 식물성으로 변질하여라
아무리 그늘이 음산하여도
모가지서부터 푸른 싹은 밝은 방향으로 햇볕을 찾으리라
오월이 돌아오면
혈맥은 그대로 푸른 엽맥(葉脈)이 되어라
심장에는 흥건한 엽록소(葉綠素)를 지니고
하늘을 우러러 한 그루 푸른 나무로 하고 살자

신석정은 전라북도 부안(扶安)군 출생으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하여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중앙불교전문강원에서 약 1년간 불전(佛典)을 연구했다. 1931년 ‘시문학’ 3호부터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작품활동을 본격화했다. 그해에 ‘선물’ ‘그 꿈을 깨우면 어떻게 할까요’ 등을 발표했고, 계속 ‘나의 꿈을 엿보시겠습니까’ ‘봄의 유혹’ ‘어느 작은 풍경’ 등 목가적인 서정시를 발표하여 독보적인 위치를 굳혔다.

8 ·15광복 후에는 시작(詩作)과 후진양성에 전념했고, 저서로는 초기의 주옥같은 전원시가 주류를 이룬 제1시집 ‘촛불’(1939)과, 역시 8 ·15광복 전의 작품을 묶은 제2시집 ‘슬픈 목가’(1947), 그 뒤 여러 시집을 냈다.

그의 시풍은 잔잔한 전원적인 정서를 음악적인 리듬에 담아 노래하는 데 특색이 있고, 그 맑은 시정(詩情)은 읽는 이의 마음까지 순화시키는 감동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1976년 7월 전주 덕진공원에 '신석정 시비'가 건립되었다. 2009년 4월에 ‘신석정 전집’이 간행됐다.

천상병
천상병

천상병 시인도 5월만 되면 발동 걸렸다.

5월의 신록은 너무 신선하다
녹색은 눈에도 좋고
상쾌하다
젊은 날이 새롭다
육십 두 살 된 나는
그래도 신록이 좋다
가슴에 활기를 주기 때문이다
나는 늙었지만
신록은 청춘이다
청춘의 특권을 마음껏 발휘하리라

우리가 잘 아는 이육사도 ‘꽃’을 노래했다. 독립운동을 하면서 썼기에 비장하게 다가온다.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한 약속이여
한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 성에는
나비처럼 취하는 회상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이육사는 1904년 5월 18일 안동군 도산면 원천동 881번지에서 퇴계 이황의 14대손으로 태어났다. 보문의숙을 거쳐 도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으며 1921년 결혼 후, 백학학원에서 수학하고 9개월간 교편을 잡았다. 1924년 4월 일본으로 유학했다가 관동대지진을 겪은 후 귀국해 대구에서 조양회관을 중심으로 문화활동을 벌였다.

육사는 친가와 외가에서 익힌 항일민족정신을 바탕으로 자연스레 독립운동의 대열에 참여하게 되어,?1926년부터 중국 북경 등지에서 유월한국혁명동지회에 참가해 조직활동을 펼쳤다.

아름다운 5월이여 찬란하게 빛나라.

글 김문 논설위원 | 사진 서울신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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