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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 돈황·실크로드 답사 후…결국 깨달은 것은 한국 석굴암의 위대함
유홍준 교수, 돈황·실크로드 답사 후…결국 깨달은 것은 한국 석굴암의 위대함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9.07.21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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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 돈황·실크로드 답사 후…결국 깨달은 것은 한국 석굴암의 위대함
유홍준 교수, 돈황·실크로드 답사 후…결국 깨달은 것은 한국 석굴암의 위대함

이번엔 중국 대륙이다. 한국과 일본을 답사한 데 이어 중국의 문화유산인 돈황과 실크로드를 다녀온 유홍준 명지대학교 석좌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을 펴냈다. 중국의 답사 일번지에서 그가 배운 것은 상당하다.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 그동안 한국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쓰며 깨달았다는 이 진리는 중국 답사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지난 5월 16일 메가박스 코엑스점 MX관에서는 이번 신간에 대한 그의 강연회가 열렸다. 교보문고가 메가박스와 협업한 ‘북토크 인 시네마’라는 문화행사에 그가 첫 강연자로 선 것이다. 
이번 강연은 다소 늦은 시간에 진행됐음에도 총 450석에 이르는 좌석이 가득 찰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한국 땅 곳곳을 누비며 전국토가 박물관임을 설파한 유홍준 교수. 그가 중국 대륙을 향한 장대한 발걸음을 내디딘 첫 기착지는 다름 아닌 실크로드 도시 돈황과 그곳으로 가는 경로인 하서주랑이었다. 무대 위 스크린을 가득 채운 돈황의 석굴 유적 ‘막고굴 제96굴 9층 누각’ 사진이 강연의 포문을 열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것들, 그동안 직접 가보지 않고 사진으로만 접했던 것들을 꼭 만나고 싶었어요. 우리 불교의 원리도 바로 이곳에서 찾았으니까요. 특히 실크로드의 관문인 돈황의 명사산과 월아천은 온통 모래밭인 곳에 있는 오아시스인데요. 종합적으로 이런 곳들을 한번 여행하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이는 그가 중국 답사기 일번지로 돈황과 하서주랑을 택한 이유다.

동서의 만남, 병령사석굴

누군가는 실크로드의 출발점이 한국의 경주, 또 다른 이는 일본의 도쿄라고 말한다. 그러나 유 교수는 기본적으로 실크로드의 출발점은 중국의 서안이라고 이야기했다. 서안에서 관중평원, 진령산맥을 지나면 위수를 넘어 섬서성, 감숙성으로 들어간다. 야간열차를 타고 꼬박 3일은 가야 하는 거리다. 그때 볼 수 있는 풍경이 국내 자연의 개념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 사이 천수라는 곳에서 중국의 4대 석굴 중 하나인 ‘맥적산석굴’을 만날 수 있다. 1,000년 동안 조성된 작은 석굴 230개의 전경이 그야말로 감탄을 자아낸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지요. 불교가 처음 중국에 들어올 때 불상, 불경과 함께였어요. 자신의 부, 저승에 갔을 적 극락 완성을 위해, 사회적으로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또 국가가 권위를 갖기 위해 만들어 온 게 이렇게 완성됐지요.”

불상 속 패션이 인도 스타일에서 중국 스타일로, 특히 북쪽이라는 환경 상 두툼해져 가는 변화가 눈에 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어 황하석림을 지나 ‘병령사석굴’을 마주한 그는 역사상 석굴이 나오는 중요한 특징이 모두 실크로드에 있었다고 회상했다. 병령사석굴은 육감적이면서 에로틱한 면모가 도드라졌다. 몸에 착 달라붙은 옷 주름은 당대 중국 사람의 출세, 부를 상징하는 듯했다. 얇은 천을 입고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모습이라고 한다. 옷 주름의 표현은 그리스로마에서 르네상스 미술까지 조각상의 중요 변천사이기도 하다. 알렉산더 대왕 때 영향이 중국을 통해 한국의 석굴암에까지 미친 것이다. 석굴암이 가히 미술사 양식의 표적이 될 만하다.

“‘동서가 이렇게 만나는구나’. 병령사석굴의 ‘삼굴의 자세’를 보고 실감했어요.”

불교, 중국을 지배하다

중국에 들어온 불교는 대승불교다. 그러나 인도에서 대승불교가 한 번도 주가 된 적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대승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200년 넘게 이데올로기로 지배할 수 있었을까? 죽음의 문제를 현재의 삶과 어떠한 관계 속에서 잘 설명하고, 희망을 주었던 사상이 중국 사람들에게 잘 통했을 것이란 주장 등 다양하다.

유홍준 교수의 생각은 어떨까? 당연히 그는 불교가 중국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미술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유교는 지식인들이 가진 독점적인 지식으로, 시험으로 관료를 뽑을 때 유용했으나 우상을 숭배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반면 불교는 어땠나요? 전생담, 화엄 세계라는 다소 유치한 이야기를 꾸며낼 뿐 아니라 그림으로 쫙 그러셔 보여주기까지 합니다. 조각으로, 불상으로, 건축으로 말이지요. 그것이 모든 사람들을 다 끌어들일 수 있는 힘이 아니었나 싶어요.”

예를 들어 열반상을 봐도 죽음이 가진 의미를 이토록 편안하게 전달해주는 것도 불교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전통은 시대에 따라 변해야

그의 답사기는 서안에서 천수, 난주, 무위, 장액, 주천, 돈황까지 이어졌다. 도중에 그는 평소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일들을 경험했다. 그중 그는 명사산 ‘명불허전(鳴不虛傳)’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기 그지없는 목조건물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시멘트로 지은 역대 최대 규모의 건축물이다.

“물론 그들이 잘못한 건 없어요. 어느 시점에서 복원하느냐가 문제였겠지요. 본래 각 시대는 전통을 지키면서 당 시대에 맞는 것으로 새롭게 구현하는 게 맞습니다.”

얼마 전 화재로 붕괴된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도 어떤 시점에 맞게 복원될 것인지 논란될 것이라고 그는 전망했다. 프랑스 정부는 이미 첨탑 재건안을 국제 공모에 부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국민 대다수는 원형 그대로 되살려야 한다는 입장이라 복원 과정에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이번에 불에 탄 것도 1,000년 전에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300년 전에 복원한 것인데요. 반대가 있어도 프랑스는 결국 소신대로 갈 겁니다. 분명한 것은 자신 있는 사람이 전통을 바꿔야 한다는 거예요.”

전통은 결코 인습이 아니라는 유 교수. 전통은 변하지 않아야 하지만 항상 변해온 것이 전통이란 점이 더 중요하다고 그는 역설했다.
“저도 명불허전이 시멘트로 만들어진 걸 보고 처음엔 거부감이 강했어요. 이제는 이해갑니다.”

이와 함께 그는 2004년 문화재청장으로서 안동 종갓집 맏며느리와 가졌던 간담회 에피소드를 전했다.
“요즘 제사가 가지는 의미가 많이 퇴색됐잖아요. 안동 종갓집 맏며느리들에게 전했습니다. 제사 때 아무도 안 먹는 전은 이제 안 부쳐도 되지 않느냐고요.”

이에 동의한 그들이 전 대신 피자를 올리자 손녀들이 맛있게 먹고 갔다고 한다.
“어느 선까지 바꾸느냐는 그 시대 안목이 정해요. 우리 전통에 대해 고지식한 생각으로 묶여 있으면 스스로 발전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방탄소년단이 세계를 사로잡은 비결

그의 중국 답사기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중화주의다. 동아시아 전체에서 중국을 볼 필요가 있다는 유홍준 교수. 더욱이 그는 돈황을 다녀온 뒤 새삼 한국의 석굴암이 얼마나 위대한지 깨달았다고 털어놓았다.
 

1 국내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석굴암의 본존불상.(사진 제공 : 경주시) 2 중국 병령사 대불좌상 3 월아천 4 막고굴 전경(사진 제공 : 창비)
1 국내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석굴암의 본존불상.(사진 제공 : 경주시) 2 중국 병령사 대불좌상 3 월아천 4 막고굴 전경(사진 제공 : 창비)

“막고굴의 492개 석상을 통틀어 봐도 석굴암의 아름다움은 없더군요. 막고굴이 사암 지역이기 때문에 곡괭이로 석굴 사원을 조성했다면, 우리는 화강암 지대에 살면서 인공적으로 부처님의 세계를 건축적으로 완벽하게 재현했어요. 이것은 역시 우리 문화유산이 가진 자랑거리로 그들에게 석굴의 전통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산사의 전통이 있어요.” 

그런데 돈황에 대한 글을 쓴 중국의 교수들에게 석굴암에 대해 물으면 아무도 모른다고 그는 안타까워했다. 그들에겐 자기 것만이 최고일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위대한 유적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다.
“얼마나 오만한가요. 중국 사람이 가진 오만한 중화사상은 서유럽사람들의 백인 우월주의보다 더합니다.”

이와 달리 한국은 예부터 해외 문화를 곧잘 받아들여 왔다. 현재 방탄소년단이 세계를 사로잡은 비결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그는 확신했다.
“그동안 우리는 온갖 문화를 다 흡수해 왔어요. 동서양 문화의 많은 요소들을 다 이해하고 있지요. 한류문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중국은 물론 서양의 것까지 시공창이 따로 없었는데, 거기서 비로소 연꽃이 피어난 셈이에요. 한국 사람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민족입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1, 2권으로 돈황과 실크로드 이야기를 마친 그는 향후 3권에서 타클라마칸 사막에 있는 누란에 관해 쓸 예정이다. 이후 중국 고도들과 한·중 교류사를 중심으로 임시정부가 있었던 상하이 등을 비롯해 연행 사신의 길을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 또다시 이어질 그의 중국 문화유산답사기를 기대해 본다.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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