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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창간 29주년 특별 인터뷰 “엄마의 교육방식이 나라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이어령 창간 29주년 특별 인터뷰 “엄마의 교육방식이 나라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9.08.23 0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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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 시대’를 사는 지혜
이어령 이사장 창간 29주년 특별 인터뷰
이어령 이사장 창간 29주년 특별 인터뷰

한국에서 창의적인 삶의 선구자로 칭송받는 석학 이어령. 신문인부터 교수, 평론가, 문화부 장관 그리고 지금의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까지. 그의 이력은 굉장히 화려하다. 평생 창조자로서 소명을 다해온 이어령 이사장이 돌연 은퇴를 선언한 지 2년 만에 다시 사회로 나온 것은 인공지능 알파고 때문이었다. 모두가 알파고를 위협의 대상으로 바라볼 때 다시 인간만이 지닌 기쁨, 행복, 사랑, 공감 능력, 인성, 창의력으로 희망을 이야기했던 그다. 앞으로 미수를 바라보는 그에게는 결단코 매일 반복되는 삶이란 없었다.

얼마 전 암 투병 사실을 고백한 이어령 이사장. 1년 반여 만에 다시 만난 이 이사장은 걱정했던 것보다 상당히 정정해 보였다. 여전히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이를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설렘도 가득했음은 물론이다. 그래도 물리적인 나이란 한계가 있기 마련인 것일까. 사람이 병이 나지 않더라도 태어난 지 여든 해가 지나면 초침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젊을 때는 시계도 잘 안 보였는데, 갈수록 나이를 먹다 보니 시침, 분침, 이제는 초침까지 보이는군요.”
요즘은 그간 계획만 하고 완성하지 못한 일들을 하고 있다는 이어령 이사장.
“우리가 서랍 정리하듯 제 머릿속에 흩어져 있는 쓰다만 글들을 꺼내서 새롭게 꾸리고 있습니다.”
곧 KBS 교양 프로그램 <이어령의 100년 서재>, 중앙일보 칼럼 <이어령의 한국 이야기>가 각 12권짜리 시리즈물로 출간될 예정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잘못 붙인 말, 지금은 디지로그 시대! 최근 그의 집필 방식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컴퓨터로 원고를 쓰던 이 이사장이 다시 옛날 수작업 때로 돌아가 펜을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그 펜이 만년필이 아니라 전자펜이라는 점이 굉장히 신선하다.
“눈이 침침해지니까 제일 먼저 못하겠는 게 컴퓨터더라고요. 태블릿 PC에 이 전자펜으로 원고를 쓰면 다 알아서 텍스트로 바꿔줍니다. 참 신통한 물건이지요.”

누구보다 시대를 앞서 사는 사람으로 유명한 이어령 이사장. 그가 근래 가장 이슈 되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해서는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을지 궁금했다. 이에 대해 그는 “우리가 진짜 새로운 시대 속에서 문명의 변화를 느끼려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산업이라는 말은 영어로 ‘industry’, 즉 공장·공업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공장에서는 무엇이 나오는가? 상품이다. 19세기부터 20세기, 21세기 초반까지 세상은 상품 경제가 지배했다. 모든 인간의 생활이 상품 중심으로 이뤄져 있었다. 상품을 만드는 공장에서는 동력이 필요할 터. 수증기 증기기관부터 전기, 전자, 원자력까지 산업혁명은 말 그대로 공장을 움직이는 동력을 혁명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흔히 말하는 AI는 상품보다는 지력이나 마음의 문제라고 그는 설명했다.

AI를 기반으로 하는 미디어, 인터넷, 사이버 공간, SNS 모두 빅데이터를 처리하는 능력, 소통하는 능력으로 무엇인가 창출하는 것들이다. 그 일이 벌어지는 곳이 더 이상 공장이 아니라 지장(知場)이라는 게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은 시대가 잘못 붙인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이어령 이사장은 ‘디지로그 시대’라고 답했다. 디지로그(digilog)는 디지털(digital)과 아날로그(analog)의 합성어로, 그가 10년 전부터 예언했던 것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조화, 결합. 지금의 구글이나 아마존이 다 디지로그인 거예요. 디지털 회사가 자동차를 만들었어요. 갖고 있던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자율주행차를 개발하고, 반대로 자동차 회사가 AI를 연구하며 디지털 세상에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둘이 결합하는 시대에 대해 일찍이 예견한 바 있지요.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아마존 고(amazon go)입니다.”
 

이어령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
이어령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

인공지능이라는 말에 올라타라

더 나아가 생명화 시대가 오고 있다는 이어령 이사장. 지금 어느 나라를 가든 제일 화제 되는 키워드가 교육, 의료, 엔터테인먼트다. 과거 반도체로 산업혁명을 일으켰던 한국도 더 이상 제품이 아니라 BTS, 축구, 김연아로 세계에서 고부가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반면 의료 분야는 어떤가? 환자가 의사를 만나 면접 후 진단받는 데까지 5분도 채 안 걸린다. 1분만 더 문진해도 오진율이 떨어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물질적인 것만 쫓다 보니 정말 생명적인 것을 잃어버렸어요.”
이제 와서 건강검진, 예방의학, 선제의학, 정밀의학이 뜨고 있지만, 이는 이미 왓슨이라는 인공지능이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때 인공지능이 대부분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라며 위기의식이 전 사회에 자리하기도 했다.

“천만에요.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면 뭐 때문에 병이 낫는 줄 아나요? 주사? 약? 아니에요. 때맞춰 간호사가 웃으면서 들어와 한마디 걸어주면 통증이 확 가라앉습니다. 인공지능이 기계적인 일을 대신해주면 인간은 인간만이 능히 할 수 있는 일에 더 집중하면 됩니다.”

인공지능을 절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그는 재차 강조했다. 물론 지력 부분에서 우리보다 더 우수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에 그는 인공지능을 말로 비유했다.
“인간이 말이랑 달리기 내기를 하면 져요. 그냥 지는 게 아니라, 말 뒷발에 차여 죽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길들이다 재갈을 물린 후 등자를 놓아 올라타야지요.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예요.”

자녀의 호기심을 격려하는 엄마들

세상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이제는 머리가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고, 남을 위해 울어줄 줄 아는 사람이 리더가 되는 시대다. 지력이 아니라 인성을 가꾸고, 창의력을 키워야 한다. 한국의 미래가 현재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 교육으론 안돼요. 언론도, 인터넷도 바꿀 수 없어요. 어머니가 가정교육으로 위대한 유산을 남겨야 해요.”

그렇다면 엄마가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사실 엄마가 아이에게 가르칠 것은 없어요. 어린아이들이 어른인 우리보다 훨씬 생각하는 게 새로운걸요.”

세상에 태어난 후 최초로 본 꽃, 태양 빛, 구름, 새, 그 경이로움을 여태껏 기억하고 있다는 이어령 이사장.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본 것이 꽃이고, 해며, 구름, 새라는 것을 어른이 알려주자 호기심이 싹 사라지고 말았다고 한다.
“전부 제 머리가 아니라 남의 머리에서 나온 거니까요.”

어린아이가 막 태어난 신선한 눈으로 천지창조를 볼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이는 매우 쉬운 듯 어려운 일이다. 대신 그는 무엇인가 궁금해서 자꾸 질문하는 아이가 다소 엉뚱해 보이더라도 절대 윽박지르며 억누르지 말고 무조건 친절히 응답, 격려하는 어른의 태도가 주효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엄마 새는 왜 울어?’ 어른들도 잘 모르면서 다 안다고 생각하고 지나쳤던 것들을 아이들이 물어요. 과학자도 답을 못할 겁니다. 절대 풀릴 수 없는 궁금증이더라도 ‘글쎄, 엄마도 잘 모르겠어. 새가 왜 울까? 엄마랑 같이 알아볼까?’라고 대응하는 엄마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미래가 좌지우지될 겁니다.”

아이의 실수에서 의미를 발견하다

이어 그는 구체적으로 아이가 어릴 적 자다가 이불에 오줌을 싸는 상황을 예로 들어 이야기를 이어갔다. 옛날엔 아이가 자던 중에 오줌을 누면 엄마들이 키를 쓰고 동네에서 소금을 받아오라고 시키는 전통이 있었다. 체면을 중요시하는 한국인의 벌이다. 좀 똑똑한 엄마는 아이의 야뇨증을 걱정하며 병원에 데려간다. 더 현명한 엄마는 어떻게 할까?

“창의적인 엄마는 아이에게 ‘이불에 지도를 그렸네’, ‘한국이 어디쯤 있는지 한번 찾아볼까?’라며 아이의 실수를 반전시켜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꿔줍니다.”
이런 아이는 앞으로 커서 엄청난 불행을 겪어도 그 안에서 자기만의 의미를 곧잘 발견해낼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이 이사장은 한국의 미래는 어머니들에게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지금이라도 우리 어머니의 교육 방식이 바뀐다면 한국은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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