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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Queen 다시보기] 1990년 12월호 -식도락 기행/서울시내 골목 골목에서 맥 잇는 전통 음식점들
[옛날 Queen 다시보기] 1990년 12월호 -식도락 기행/서울시내 골목 골목에서 맥 잇는 전통 음식점들
  • 양우영 기자
  • 승인 2019.09.22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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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2월호

"잃어가는 고향의 맛, 우리 손끝으로 지켜냅니다"

"그래, 이 맛이야." 모 회사의 조미료 광고는 '고향의 맛'이란 주제를 내걸어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그만큼 인스턴트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우리 전통의 향수가 서린 어머니의 손맛이 그립다는 뜻일 것이다. 많은 것 이 급속도로 변해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이런 고향의 옛 맛과 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전통 음식점 몇 곳을 찾아가 보았다.

1990년 12월호 -식도락 기행/서울시내 골목 골목에서 맥 잇는 전통 음식점들1
1990년 12월호 -식도락 기행/서울시내 골목 골목에서 맥 잇는 전통 음식점들1
1990년 12월호 -식도락 기행/서울시내 골목 골목에서 맥 잇는 전통 음식점들2
1990년 12월호 -식도락 기행/서울시내 골목 골목에서 맥 잇는 전통 음식점들2
1990년 12월호 -식도락 기행/서울시내 골목 골목에서 맥 잇는 전통 음식점들3
1990년 12월호 -식도락 기행/서울시내 골목 골목에서 맥 잇는 전통 음식점들3

 

어떤 한 분야만을 고집하여 대를 물려 가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장인정신'이기 때문이다. 특히 '맛'을 생명으로 하는 전문 음식점의 경우 손끝에서 우러나오는 정성과 비법이 성패의 관건이므로 오랜동안 하나를 유지하기란 더욱 어렵기만하다.

서구 문화의 유입으로 식생활 패턴이 급속도로 변화하는 요즘은 더우기 각종 인스턴트 식품들이 식탁을 가득 장식하고 있다.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생활의 편리를 찾아야 하는 것은 물론 당연한 일. 그러므로 집안에서 즐기기 어려운 구수한 맛을 보기 위해서 우리는 전통 음식점들을 찾아간다. 

골목 골목 깊숙히 자리하고 있어 언제 들러도 내집 안방처럼 편안한 곳, 수십년간 한 곳을 지켜온 주인 아주머니의 진솔함과 이웃의 정겨움이 느껴지는 이들 음식점의 소박한 '맛' 이야기를 들어보자.

돈암동 승원식당

밀린 밥값을 받아내기 위해 경찰서에서 욕질했던 욕쟁이 아줌마의 복집

성북구 한성대 입구 전통 한옥집 골목에 자리잡은 복요리 전문점. 상호인 승원식당이라는 이름보다 '욕쟁이 복집'으로 더 유명한 집이다. 웬만한 식도락가들 사이에서 승원식당은 몰라도 '욕쟁이 복집'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이름이 나있다. 주인 아주머니의 별명이 이제는 상호가 되어버린 셈이다. 그 욕쟁이로 소문난 사람이 바로 주인 최재팔씨.

욕쟁이라는 별명과는 달리 수더분한 인상에 질박한 충청도 사투리가 정감어린, 이웃집 아주머니처럼 다정해 뵈는 사람이다. 조치원에서 글방 선생을 지냈다는 아버지 밑에서 여자가 갖추어야 할 얌전함을 익혀온 그가 욕쟁이로 전락하게 된 것도, 험난한 요식업계에 뛰어들면서부터였다. 29세 때부터 복 전문점을 시작했었는데 그때 밥값이 25원.

당시 인근의 경찰관들이 단골 손님이었는데 밥값이 밀려 몇 천원이 되도록 외상값을 갚지 않기가 일쑤였다. 그 시절만 해도 경찰의 권위(?)는 식당의 밥값 쯤은 '나 몰라라' 할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생계가 매달린 아주머니는 그럴 수가 없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경찰서로 밥값을 받으러 갔다가 험한 욕설만 들었다. 하지만 밀린 몇 천원의 밥값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욕으로 응할 밖에 도리가 없었다. 주인 아주머니의 욕하는 버릇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이를테면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욕을 배운 셈이다. 

경찰서에서 욕을 한 것은 대밭에다 대고 욕을 한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곳을 출입하던 기자들이 욕쟁이 복집이라 이름을 붙여주고 소문을 냈기 때문.

1969년 집을 세내어 탁자 4개 놓고 복집을 시작했는데, 당시만 해도 복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잘못돼 먹으면 무조건 죽는다고 믿어 문을 닫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다른 업종으로 바꿀까 궁리도 해 봤지만, 용기가 나질 않아 계속한 것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나 봐유. 처음엔 욕쟁이라고 그랬는데, 지금은 욕쟁이 뒤에 할머니가 붙었으니 말이에유. 내가 해 준 밥 먹고 기사 썼던 기자들 참 많지유."(중략)

 

Queen DB

[Queen 사진_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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