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2:50 (토)
 실시간뉴스
‘인간극장’ 시인과 주방장 김을현·김경만… 그렇게 삶은 詩가 되고 꿈이 되고
‘인간극장’ 시인과 주방장 김을현·김경만… 그렇게 삶은 詩가 되고 꿈이 되고
  • 이주영 기자
  • 승인 2019.08.30 07: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라남도 무안군 고소한 냄새가 풍기는 작은 중국집. 주방장은 시인이 되었고, 시인은 철가방을 들었다. 손빠른 주방장 김경만(55) 씨와 초보배달부 김을현(56) 씨. 25년 경력의 손 빠른 중화 요리사 경만 씨가 음식을 만들어내면 뽀글머리 배달부 을현씨가 서둘러 배달을 나간다. 두 사람의 기묘하고 유쾌한 동거. 어떻게 시작된 걸까?

오늘(30일) KBS 1TV 휴먼다큐 미니시리즈 ‘인간극장-시인과 주방장’ 마지막 5부가 방송된다.

# 낙지 짬뽕으로 시작된 수상한 인연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난 것 같은, 운명 같아요”

전라남도 무안. 바둑판처럼 이어진 무안의 들녘 사이에 작은 중국집이 있다. 주인은 손빠른 25년 경력의 김경만 씨. 혼자서 요리 준비부터 음식에 들어가는 채소까지 농사짓고 있다. 그리고 또 한 명, 뽀글머리 배달부 김을현 씨가 있다. 예쁜 것 좋아하고, 지나가는 사람 다 인사 나누는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사람, 오늘도 밀린 배달 주문 나가면서 손이 느려 한 소리 듣고 진땀 빼는데….

뒤돌아서면 툭툭 장난 거는 두 사람, 인연이 궁금하다. 거슬러 2년 전, 겨울. 광주에서 잡지사 기자로 일하던 을현 씨는 무안 작은 중국집의 소문난 낙지짬뽕을 취재차 왔었다. 너른 들판 끝에 펼쳐진 바다가 좋았고, 무엇보다 소탈한 경만 씨가 이야기 나눌수록 좋았다.

그 후, 두 사람은 친구가 됐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오랫동안 글 쓰는 일을 해오던 을현 씨가 무안행을 결심했다. 그는 왜 광주에 가족을 두고 무안으로 오게 된 걸까?

# 중국집 배달원이 된 시인, 김을현

'어머니와 살 날이 또 하루 줄었습니다 눈길을 걸어 시장에 갈 날도 / 팥죽을 쑤어 후후 불며 먹을 날도 줄었습니다'  ----- 어머니와 살 날 中 / 김을현 시

사실, 김을현 씨는 시인이다. 2011년에 등단하여 시인으로, 1000여 편의 시를 쓰고, 잡지사 기자로도 꾸준히 글을 써오고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도시의 삶이 버겁게 느껴졌고 그 한계치에 다다른 것 같았다는데…. 그럴 즈음 무안의 경만 씨를 만났다. 아내와 딸에게 어렵게 허락을 구해 올 1월부터 중국집에서 일하며, 시를 쓰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가족이 있는 광주로 가는데, 항상 고마움과 미안함이 있다. 새로운 곳, 무안에서 살게 된 시인. 중국집 일을 하며, ‘배달하는 시인’이 됐다. 경만 씨의 배려로 중국집 옆 창고를 시인의 작업실로도 꾸몄다. 낮엔 중국집 배달원으로, 밤엔 시 쓰는 올빼미 시인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7남매 중의 막내인 을현 씨는 지난 봄, 보령 형님 댁에 계시던 아흔다섯의 노모(김기윤 95)를 모셔왔다. 몇 달이라도 엄마와 함께 살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을 경만 씨가 흔쾌히 받아줬다.

# 시 쓰는 주방장 , 김경만

‘밭에 있는 작물들과 함께 살려고 발버둥을 치며 / 긴 겨울을 견뎌왔다. / 참으로 강한 것이 잡초인 것 같다. / 그러나 봄이 오면 / 그 생명은 / 사람의 손에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다 / 이것이 잡초에 삶인 것 같다’  ----- 잡초의 일생 中 / 김경만 시

경만 씨는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형수님 손에 자랐다. 스무 살 무렵에 고향을 떠나 결혼하고 두 딸도 낳았다. ‘단란한 가정을 이뤄 알콩달콩 살고싶다’는 소박한 꿈은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네 살, 여섯 살 두 딸을 혼자 키우며 어려운 시절을 버텨왔다.

그렇게 30여 년을 도회지에서 허덕이며 살던 삶도 지칠 무렵, 7년 전, 경만 씨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 땅을 얻어 맨발로 농사짓는 생활, 몸은 고단해도 마음이 편했다. 무, 마늘, 대파, 양파, 옥수수, 고구마…. 직접 농사지은 재료에 무안 낙지로 만든 짬뽕이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시인이 찾아왔다.

일기 한번 써본 적 없고, 술을 마시고 흥이 나야 노래라도 흥얼대보던 삶이었다. 두 딸만 어떻게든 잘 키워내려고 남의 식당도 전전하면서 살던 삶에 ‘꿈’이란 건 꿔본 적도 없었다. 그런 삶에 바람이 분다.

밭에서 잡초를 뽑다 흙 묻은 손으로 끄적여봤다. 그게 경만 씨의 첫 시, ‘잡초의 일생’이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시가 벌써 20편 정도. 작년에는 ‘꼬부랑 할머니’라는 시로 한 문예지에 출품해 ‘신인상’을 받았다. ‘시인’이라는 기분 좋은 꼬리표가 붙었다. 뿐인가 좋은 친구를 얻고 나니, 엄마가 생겼다.

# 그렇게 삶은 詩가 된다.

‘경만이란 / 속이 보이는 투명한 쇠같은 나로서는 바꿀 수 없지만 /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은 / 나에게 경만이란 / 물처럼 조약돌처럼 함께하는 함께 노래하는 사람’  -----‘경만이란’ / 김을현 시

“을현이는 나의 진짜 친구죠 나한테 새로운 꿈을 심어준 사람이에요” - 김경만

시인이 찾아들고 얼마 후 백발의 노모까지, 무안의 작은 중국집에는 식구가 세 명으로 늘었다. 순한 막내아들, 을현 씨가 있고, 아침저녁으로 갈치며, 좋아하시는 수제비도 척척 만들어 내는 착한 경만 씨가 있으니  노모도 무안 생활이 심심하지 않다. 

석 달째, 어머니 모시며 함께 일하며 사는 주방장 경만 씨. 한데 가만 보니, 바지런한 주방장과 글 쓰는 것 말고는 모든 게 어설픈 시인 을현 씨. 두 사람은 티격태격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배달만 가면 눌러앉아 꽃구경하고, 신속배달이 뭔가, 시골길이 익숙치 않아 헤매기 일쑤인 초보 배달부다 보니 주방장 경만 씨는 또 화르르 열불이 난다.

그러나 주방장도 바로 꼬리를 내릴 때가 있다. 바로 시(詩)! 을현 씨는 경만 씨의 ‘시 선생님’이다. 작년 광주에서 을현 씨가 시 강연을 했고, 경만 씨는 아무 생각 없이 찐빵이며 고구마를 삶아갔단다. 그 자리에서, ‘훅’ 경만 씨 마음을 파고든 시!

어느 날 흙 묻은 손으로 을현 씨에게 건낸 글을 보고 을현씨는 ‘그게 바로 시다!’ 라고 하였다. 그 이후 지금은 잡초를 뽑다가 시를 외우고, 이모를 만나고 돌아온 밤의 심란함을 휴대전화에 끄적인다. 한 번도 시를 써보라고 권한 적 없다는 시인은, 경만 씨가 보여주는 시를 볼 때마다 슬픔 속에서 살아있는 동화적이고 순수한 감성에 놀라는데….

오늘 5부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무안의 작은 중국집. 무화과 한 쪽도 나눠먹는 주방장 경만 씨와  배달부가 된 시인 을현 씨.
갑작스런 비 소식에 옥수수 팔러 축제에 간 경만 씨와 을현 씨는  결국 기름값 한 푼 벌지 못하고 허탕만 치고 돌아온다. 벌써 저녁.  씁쓸한 마음이지만 밥이라도 비벼 먹을 서로가 있어 든든하다.

다음 날, 광주에서는 배달부가 된 편집장을 만나기 위해 문예지 회원들이 직접 찾아왔다. 이번 호에는 경만 씨의 시 '꽃 상여'까지 올라와 있어 경만 씨는 못내 흐뭇한데…. 

한편 경만 씨의 수제자인 을현 씨는 짜장면 실력을 뽐내려 출장요리를 가게 되는데, 을현 씨의 '첫 짜장' 을 맛보는 주인공은 누구일까?

보통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 특별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를 표방하는 KBS 1TV ‘인간극장’은 매주 월~금 오전 7시 50분에 방송된다.

[Queen 이주영 기자] 사진 = KBS ‘인간극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