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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의 디바’ 강은일, ‘만인의 해금’과 아리랑을 연주하다
‘해금의 디바’ 강은일, ‘만인의 해금’과 아리랑을 연주하다
  • 이광희 기자
  • 승인 2019.09.02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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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5일 연주자 100명과 서울시청 광장 연주회

21세기는 해금의 시대라는 말이 있다. 1116년, 고려 시대에 해금이 처음 등장한 이래 현대에 이르러 다시 빛을 보고 있다. ‘동이’와 ‘추노’ 같은 인기 드라마나 영화, 각종 광고매체에서 해금 소리가 자주 등장한다. 연극과 무용 등 무대 공연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 보니 해금이 대중화 됐을 뿐만 아니라 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 해금 소리에 찬사를 보낼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부단히 노력해온 사람, 바로 강은일 씨(52)가 주인공이다. 하여 사람들은 그녀를 ‘해금의 디바’라고 부른다.

글 김문(인터뷰 작가) | 사진 양우영 기자

여름이 한껏 짙어진다. 밤하늘의 별은 더욱 반짝이며 아름다운 수를 놓는다. 여름밤이 길기에 그리움도 많고 사랑도 많아 진다. 문득 ‘한여름밤의 꿈’이 떠오른다.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낭만 희극이다. 연인 사이에 사랑의 마찰과 갈등을 초자연적인 힘을 빌려 해결되는 꿈같은 이야기이다. 요정들의 노래와 춤, 마법 등 낭만적이고 몽환적 내용으로 가득 찬 것이 ‘한여름밤의 꿈’이다. 만약 셰익스피어가 집필 당시 한국의 해금을 생각했더라면, 그리고 그 요정들에게 해금을 손에 쥐게 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요정들의 노래와 춤은 지금보다 더 아름다웠을 것이다.

세계 200여회 순회공연…해금 한류 붐

해금으로 세계 각국 200여 회 순회공연을 해온 강은일 씨. 손마디가 가냘프다. 하지만 활대질은 천년의 한을 토해내면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송두리째 쥐락펴락한다. 국악계에서 가장 개성 넘치는 해금 연주가로 꼽힌다. 그는 국내에서 수십 차례 전국은 물론이고 유럽, 아시아, 북미, 남미, 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을 돌며 200여 회 순회 및 초청 공연을 펼쳤다. 해금으로 또 하나의 한류 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가느다란 활대 두 줄의 움직임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아지경의 소리를 추구하면서 말이다.또 자신이 이끄는 소리 그룹 ‘해금플러스’로 미국의 가수 바비 맥퍼린, 일본 현악기 샤미센 연주자인 요시다 형제, 일본 NHK체임버오케스트라, KBS국악관현 명 연주자 및 오케스트라 등과 많은 협연을 해오고 있다. 주요 앨범으로는 ‘오래된 기억’ ‘미래의 기억’ 등 솔로 앨범만 4집을 냈다. 해금의 디바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아쟁과 사물놀이 연주 실력도 수준급이다.

文대통령 북유럽 순방 때도 동행 연주

서울돈화문국악당(예술감독)에서 만났을 때에도 그는 해금과 함께 있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북구(北歐), 그러니까 노르웨이 스웨덴 갔을 때 동행했다.“현지 공연을 앞두고 스웨덴 주재 대사님이 그러더군요. 원래 이쪽 나라 사람들은 공연이 끝나도 별 반응을 내보이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민족성이 그렇다고요. 무대 위에 있는 사람은 관객의 호응이 없으면 좀 머쓱하잖아요. 걱정하면서 무대에 올랐는데 상황은 정반대였어요. 이례적으로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유럽에 주재하는 각 나라 대사들까지 참석했는데 사인을 해달라고 할 정도였어요. 대사님은 그동안 이런 일이 없었는데 국위선양을 잘해줘서 고맙다는 인사까지 받았습니다.”

“해금 소리는 절대 돈으로 살 수 없다”

“일본에서 바로크 시대의 음악을 연주하는 텔레만 앙상블과 협연할 때였지요. 공연 시작을 한 시간 앞두고 연습하다가 줄 부분이 깨져 무척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 부랴부랴 수소문해서 재일본 조선인 총연합회 관계자가 운영하는 상점에서 해금을 급히 구해 무대에 올랐지요. 그 사정을 관객들에게 미리 얘기해주었는데, 공연이 끝나자 한 관객이 다가와 혈관을 타고 흐르는 전율이 매우 감동적이었다고 말하더군요. 러시아 공연 때는 한 관객한테 ‘돈으로 어떤 좋은 자동차라도 살 수 있지만, 해금 소리는 절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들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외 팔레스타인의 작은 음악대학에서 연주했을 때 음악으로 민족성을 지키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고, 프랑스 리옹오페라극장과 벨기에 유럽의회에서의 공연, 미국 디즈니홀 공연과 일본 도쿄돔에서 인기 배우 배용준과 함께한 공연 등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20세기는 가야금, 21세기는 해금”

원래 그는 연극을 좋아했다. 그러다가 가야금을 배우고 싶어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입학 성적에 따라 차등적으로 적용되는 가야금 과목을 선택할 수 없었다. 선생이 부르더니 “그러면 해금이나 하라”고 했단다.그만큼 당시에는 해금을 배우려는 학생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해금이 가야금보다 더 선호하는 인기 종목이 됐다고 말한다. 그는 18~19세기에 거문고, 20세기에 가야금이었다면 21세기에는 해금이 대세라며 웃는다.이는 강씨와 같은 해금 연주가들이 전국을 돌며 대중과 부지런히 만나온 활동의 결실이기도 하다. 2000~2003년이 모색 단계였다면 2003년부터 크로스오버 등으로 본격적인 대중화와 세계화에 나섰다.1983년부터 해금을 연주했으니 올해로 해금 인생 46년째를 맞는다. 1986년 국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한양대에 진학해 4년 동안 장학생으로 다니면서 해금 연주실력을 쌓았다. 졸업 후에는 KBS국악관현악단을 거쳐 프로 솔리스트로 활약했다. 88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 등 굵직한 행사에서 기념공연을 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해금으로 예술적 지평 넓혀 갈 것”

그에게 해금이란 무엇일까.“처음에는 가냘픈 두 줄의 해금이었다가 지금은 ‘해금 플러스, 그리고 무엇’을 창출해낼 수 있는 위대한 악기로 존재합니다. 해외에 나가면 나갈수록 더욱 소중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해금은 천변만화(千變萬化), 즉 천 번을 변하고 만 번을 이룬다고 합니다.” 그는 앞으로 연주도 하고 작곡도 하면서 해금의 예술적 지평을 꾸준히 넓히겠다는 사명감으로 음악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말한다. 현재 단국대 교수로 있으면서 후학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가 9월15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전국에 해금을 연주하는 사람 100명을 불러모은다. 제목은 ‘만인의 해금’이다. 곡목은 ‘아리랑’이다.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정선아리랑, 해주아리랑 등이다. 이런 행사는 처음이다. 전국 15개 대학이 참여한다. 그날 아침 11시 시작한다. 그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스웨덴, 노르웨이 갔을 때 현지에서 해금 연주를 했다. 내년 2월에는 ‘엄마의 엄마 이야기’란 주제로 한국 여성 100년을 얘기한다. 전쟁을 겪은 여성들의 얘기다. 기대된다.

[Queen 김문 인터뷰작가] 사진 =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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