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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Queen 다시보기] 1991년 1월호 -용인 기흥 고매리 현지르포
[옛날 Queen 다시보기] 1991년 1월호 -용인 기흥 고매리 현지르포
  • 양우영 기자
  • 승인 2019.10.12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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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월호

'이순자 12월초 경기도 용인 밀행' 한때 소문

①5공초 이규동씨, 망우리 부친묘 용인에 이장

②'서울서 만나자' 下山의지, 용인두고 하는 말?

③작년 여름 속초서 냉면먹고 별장에 들렀다는 소문도

④이순자씨, 용인땅 선호하는 까닭은

1991년 1월호 -용인 기흥 고매리 현지르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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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월호 -용인 기흥 고매리 현지르포2
1991년 1월호 -용인 기흥 고매리 현지르포2
1991년 1월호 -용인 기흥 고매리 현지르포3
1991년 1월호 -용인 기흥 고매리 현지르포3

 

금계포란형(金鷄抱卵型) 용인땅 이곳에서 묻히면 자손이 번성한다고

용인(龍仁), 용인은 경기 남부 지방의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40분 거리. 용인은 일찍부터 나무와 물이 좋은 고을로 잘 알려져 왔다. 

조선시대의 가객(歌客) 함부림은 용인을 가리켜 이렇게 노래했다. 

'소나무와 참나무는 산성(山城)에 잇닿았고

뽕나무와 삼은 아가위 나무와 섞였다'

용인은 명당(明堂)이다.

신라의 중 도선은 용인 땅을 가리켜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型),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금계포란형에 무덤을 쓰면 닭이 한번 알을 품어 십수 마리의 병아리를 까듯이 여러 사람을 이끌어갈 영걸이 나오거나 자손이 번성한다고 한다. 

용인 사람들은 '살아서는 진천서 살고 죽어서는 용인에서 산다···'라는 말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전두환씨의 장인 이규동씨는 5공 초기 망우리에 안장되어 있던 부친 이봉희(李鳳喜)씨의 묘를 용인땅(추계리)에 이장하기도.

다음은 이규동씨의 부친 묘를 관리하던 망우리 공동묘지 관리인 도정호씨의 증언.

"5공 출범 직후였어요. 자고 일어나니 글쎄 이봉희씨의 묘가 사라졌어요. 이것 큰일났다 싶어 이규동씨 댁에 전화를 했죠. 이규동씨 청지기가 이렇게 얘길 해요. 어젯밤에 다른 곳으로 이장했으니 염려말라고. 그말을 듣고 나니 괘씸한 생각이 듭디다. 수십년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정성을 다해 이봉희씨의 묘를 관리해 온 나한테 일언반구 말한마디 없이 묘를 옮기다니···"

이규동씨의 부친 묘가 있는 추계리 주민의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신한다.(중략)

 

Queen DB

[Queen 사진_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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