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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Queen 다시보기] 1991년 1월호 -드라마틱 스토리/재소 과학자 장학수씨 형 장낙수씨의 증언
[옛날 Queen 다시보기] 1991년 1월호 -드라마틱 스토리/재소 과학자 장학수씨 형 장낙수씨의 증언
  • 양우영 기자
  • 승인 2019.10.20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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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월호

단신 월복 → 소련망명 → 42년만에 고국 다녀간 내 동생

"갈때는 기어서, 헤엄쳐서 갔지만 올 때는 비행기 타고 날아서 왔지요"

16세 소년이던 48년 삼팔선을 기어 엄어 자진 월북→61년 두만강을 헤엄쳐 건너 소련으로 망명→66년 박사 학위취득→72년 소련 국적 취득→90년 여름 58세 초로의 신사가 되어 42년 만에 고국 땅을 다시 밟기까지, 한 사회주의 과학자가 걸어온 저 파란만장한 날들의 꿈 그리고 절망.

1991년 1월호 -드라마틱 스토리/재소 과학자 장학수씨 형 장낙수씨의 증언
1991년 1월호 -드라마틱 스토리/재소 과학자 장학수씨 형 장낙수씨의 증언

 

독립 운동가 집안의 막내 아들은 왜 붉은 별 아래 청춘을 묻었는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장낙수씨의 목소리는 조금 쇠잔해 있었다.

"학수 얘기요? 지금 몸이 안 좋아서 누워 있는데 굳이 찾아올 것가진 없어요. 그 애 얘기는 얼마전 나온 책에 다 나와 있습디다. 읽어 보고 좀 모자라다 싶은 부분만 다시 전화로 물어 봐요."

하긴 그럴 법도 했다. 16세 때 헤어진 동생인데 형인들 그 이후 행적을 무슨 수로 증언하랴.

다음에 소개하는 장학수 박사의 삶은 얼마 전 출판된 그의 자전적 스토리 '붉은 별 아래 청춘을 묻고'(문학사상사)를 아주 짧게, 약2백분의 1길이로 다이제스트한 내용이다. 장 박사의 형 장낙수씨의 증언은 다만 몇 줄만 참고로 삼았음을 밝혀 둔다.

1932년 9월, 장학수씨는 서울에서 독립 유공자 장석철씨의 5남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독립 운동을 하던 첫째 · 둘째형과 사회주의자였던 셋째형 사이에서 그는 일직부터 좌 · 우익 이념의 대립과 갈등을 지켜보았다. 

셋째형 춘수씨는 자주 학수씨에게 의식화 교육을 시키곤 했다. 

"봐라. 학수야! 저기 비쩍 마른 인력거군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인력거를 끄는 동안 살찐 저 부자놈은 계집을 옆에 끼고 노닥거리며 가지 않니? 모두 똑같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돼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어려서부터 과학에 소질이 있던 학수씨는 셋째형의 말에 자극 받아 이렇게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난 이 다음에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공기로 쌀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연구할 테다!"(중략)

 

Queen DB

[Queen 사진_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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