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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의 풍경 '가려리 옛집의 막걸리'
김도형의 풍경 '가려리 옛집의 막걸리'
  • 김도형 기자
  • 승인 2019.10.11 0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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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김도형의 풍경 '고성 경남, 2018' (인스타그램: photoly7)
사진작가 김도형의 풍경 '고성 경남, 2018' (인스타그램: photoly7)

 

여러가지 종류의 술이 있지만 특히 막걸리를 좋아하는 편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막걸리 중에 내 입에는 국순당의 '고(古)' 와 배상면 주가의 '느린마을' 이 가장 맛있다.

'고(古) 막걸리는 향수를 자극하는 진한 누룩향이 일품이고, '느린마을'은 고급스러운 달콤함과 목을 타고 넘어가는 감촉이 좋다.

그러나 이제까지 맛보았던 막걸리 중에 최고는 뭐니뭐니 해도 내 유년시절의 우리집 막걸리다.

내가 어릴적에 우리집은 백여가구 남짓되는 마을에서 가게를 했다.

가게공간을 둘로 나눠 한쪽은 과자 고무신 못등의 잡화를 팔고 한쪽은 나무 탁자와 의자를 놓고 술을 팔았다.

소주와 맥주는 읍내 주류도매상에서 트럭으로 배달했고 막걸리는 우리집에서 십리쯤 떨어진 내 외갓집 마을의 도가에서 밤새 빚어 지금도 이름을 기억하는 '김성환' 씨가 아침마다 경운기에 싣고왔다.

경운기에서 내려진 막걸리는 조금이라도 저온에서 보관하기 위해 가게안에 땅을 파고 묻은 큰 독에 부어졌다.

먼동이 틀 무렵부터 들에 나간 아버지를 대신해 갓 배달된 막걸리가 혹시 쉬지는 않았는지 맛을 보는 것은 내가 할 일이었다.

반사발 정도를 바가지로 퍼서 마셔보면 술이 마치 물에 탄 미숫가루 처럼 걸쭉했다.

천상병 시인이 '나는 막걸리가 밥이다' 라고 해서 막걸리가 무슨 밥이 될까 하고 생각했는데 지금 시중의 막걸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걸쭉했던 그 예전의 우리집 막걸리를 연상하니 이해가 되었다.

요즘 라디오의 청취자들이 보내는 사연을 들어보면 농번기에 막걸리 심부름을 하던 중에 논두렁에서 노란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를 홀짝홀짝 마셨던 어린시절의 추억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노란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를 팔던 집이 우리집이었다.

내 초등학교 졸업식날 저고리를 차려입은 어머니가 반말(다섯 되) 짜리 흰색 플라스틱 막걸리 통을 들고 식장에 들어왔다.

아들을 6년 동안 보살펴 준 선생님들께 보답하느라 마땅히 가져 올 것은 없고 해서 그 무거운 막걸리 통을 이고 오리가 넘는 길을 걸어온 것이었다.

외갓집 동네의 도가는 없어진지 오래고 우리 가게집도 묵혀둔지 수십년이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막걸리 냄새 풀풀나던 남도의 우리 옛집, 그 시절이 그리운 아침이다.

 

[글 사진, 사진작가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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