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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거장' 앤서니 브라운 "어린이에게 행복을"
'그림책의 거장' 앤서니 브라운 "어린이에게 행복을"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9.10.20 0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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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거장, 앤서니 브라운.
그림책의 거장, 앤서니 브라운.

전 세계 어린이에게 행복을 안겨준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 그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극장展>을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2009년 이후 10년 만의 방한이다. 기자간담회에서 그를 만나 그의 작품 철학, 가족과 관련된 작품 비하인드 스토리, 상상력의 비결 등을 들었다.(Queen 9월호)  

<우리 아빠가 최고야>, <꿈꾸는 윌리>의 창작자로 유명한 앤서니 브라운 작가. 어린이들에게 그는 그림책 아빠로 불린다.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2000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수상하며 일찍이 아동문학에 큰 공로를 세운 작가로 인정받았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은 어린이 책 분야 노벨상만큼의 위상을 갖는다. 그의 그림책에는 앤서니 브라운 특유의 위트와 풍자가 가득함과 동시에 가족애, 우정, 예술, 자유, 행복 등 인간적 가치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진지한 질문 역시 내포돼 있다.

늘 행복한 결말을 꿈꾼다

앤서니 브라운 작가의 올해 전시 주제는 ‘행복극장’이다. 2016년에도 ‘행복한 미술관’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운 바 있다. 마치 행복이 그의 작품들을 모두 관통하는 주제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그가 행복을 주제로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제가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행복한 결말이에요. 아이들이 제 책을 읽고 우울감, 불안감을 느끼길 원치 않거든요. 물론 어두운 이야기, 무서운 것을 좋아하는 어린이들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면을 제 책에 차용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결말만큼은 아이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쓰려고 해요.”

그의 작품 중에는 2017년 한국을 주제로 한 <숨바꼭질>도 있다. 올해는 멕시코를 주제로 <나의 프리다>를 내놓았다. 해마다 주제를 잡고 작업하는 그가 매번 주제를 선정하는 데도 다 배경이 있다는데…. 먼저 <숨바꼭질>의 경우 그가 오랫동안 작업하던 방식인 ‘그림의 증거를 숨기는 것’과 관련이 깊다. 그림 속의 디테일이 주제가 된 것이다.

“숨바꼭질이란 게임은 전 세계 아이들이 즐기는 놀이잖아요. 어렸을 때 저도 형과 이 게임을 참 많이 하고 놀았습니다. 여기서 영감 받아 숨은 그림을 넣는 것으로 <숨바꼭질>이란 책이 탄생했어요. 이때 키우던 강아지를 잃어버린 지인의 상황이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제 책의 행복한 결말대로 그분이 진짜 강아지를 찾게 됐는데요. 당시 강아지 이름도 ‘럭키’였답니다.”
 

(왼쪽부터) 3 국내 최초로 공개된 올해 그의 신작 <리틀 프리다(Little Frida)>. 4 1993년, 그가 완성한 <아기가 된 아빠>. 5 2000년도 그의 작품 <우리 아빠가 최고야>. 실제로 권투 선수였던 아버지에 대한 그의 동경심이 담겨있다.

 

운명처럼 찾아온 프리다 칼로

이어 <나의 프리다>는 20년 전 그가 멕시코에 갔을 때 프리다 칼로가 살았던 푸른 집에 방문했던 것이 큰 계기가 되었다. 그곳에서 본 프리다 칼로가 남긴 옷, 화장품, 장애인을 위한 용품 등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그는 되뇌었다.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우연히 프리다 칼로의 초기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비행기를 달라고 했는데 빨대로 만들어진 날개를 줬어>라는 그림이었다. 그 그림이 앤서니 브라운 작가의 이야기 초석이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보면 그림 주제랑 상관없는 디테일들이 곳곳에 숨어있어요. 그림보단 그녀의 삶과 연관돼 있지요. 그림에 디테일을 숨겨놓는 것은 저도 많이 사용하는 기법이에요.”
어떤 점이 그가 프리다 칼로의 작품에 빠지게 했을까? 그는 자신의 어릴 적 기억을 꺼내 들었다.

“제 책에 나오는 프리다 칼로의 나이대와 비슷한 다섯, 여섯 살 때 저도 부모님께 트럼펫이 갖고 싶어서 생일선물로 사달라고 했던 적이 있어요. 생일날 밤 우연히 눈을 떴는데 바로 앞에 패키지가 있기에 열어봤더니 진짜 트럼펫이 아니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트럼펫이었습니다. 부모님께 실망했지만 표현하지 않았지요. 프리다 칼로는 어땠을까? 이런 저와의 연결고리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좋은 아버지가 된다는 것

앤서니 브라운 작가가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는 방식은 늘 이런 식이다. 어린 시절 경험부터 시체 그리던 무명 화가 시절, 자신이 본 영화, 밤새 꾼 꿈, 친구가 겪은 이야기까지. 어떻게 보면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서 그는 영감을 받는다고 이야기했다. 중요한 것은 영감을 애써 찾으려고 하기보다 부단히 기다리는 과정에 있다는 앤서니 브라운 작가.

“저는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하는 여느 직장인과 같은 루틴을 매일 지키고 있어요. 오전에 일하다가 점심을 먹은 뒤 오후에 다시 작업하러 스튜디오에 가지요. 이렇게 규칙적으로 일하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혹은 스스로에게 던졌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 자체가 작품의 소스가 되기도 한다. 고릴라가 등장하는 <우리 아빠가 최고야>가 제일 대표적이다.
“아내와 첫 아이를 기대하고 있었을 때 가졌던 고민이 있어요.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은데, 좋은 아버지란 무엇일까? 자연스럽게 제 아버지가 떠오르더군요.”

그의 아버지는 육체적으로 굉장히 강한 사람이었다. 전직 권투선수. 전쟁에도 참여했으며, 럭비 등 남성적인 스포츠를 즐겼다고 한다. 동시에 따뜻하고 자상한 면모도 있었다고 그는 자랑했다. 가족들과 앉아서 책을 읽고 시를 쓰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단다. 다소 대조적인 면이 있었던 것이다.

“고릴라라는 존재도 그렇지요. 겉으로 보기엔 힘이 세고,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는 동물이면서도 매우 예민하고, 가족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부분도 있잖아요. 어느 날 동물원에서 고릴라를 보면서 인간, 특히 저희 아버지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반면 침팬지 캐릭터인 윌리는 제 어릴 적 모습과 닮은 캐릭터입니다.”

고릴라, 침팬지라는 중립적인 이미지,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만 이를 극복하며 성장해가는 캐릭터 스토리는 전 세계 어린이들의 공감을 사기 충분했다. 이는 그가 지금의 그림책 거장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이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놀이법
 

앤서니 브라운 작가는 항상 작품을 통해 기발한 상상력을 뽐내왔다.
앤서니 브라운 작가는 항상 작품을 통해 기발한 상상력을 뽐내왔다.

앤서니 브라운 작가는 항상 작품을 통해 기발한 상상력을 뽐내왔다. 그림책 작가인 그가 자녀에겐 어떻게 창의교육을 하는지 궁금했다. 이에 대해 그는 화가인 자신뿐 아니라 음악을 하는 부인 사이에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창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을 뿐이라고 답했다. 대신 다소 철학적인 이야기를 덧붙였다.

“우리는 어른이든, 아이이든 상관없이 다 창조적인 존재예요. 다섯 살 아이에게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써보라고 하면 마치 공을 차는 것처럼 쉽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예요.”

이어 그는 하나의 활동을 추천했다. 한 명이 어떤 모양을 그리면 후발 주자가 해당 모양을 보고 더 추가해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내는 놀이다. 이름하여 추억의 셰이크 게임이다. 이것이 바로 창조적인 활동이라는 것. 또 하나, 아이들이 그림책을 읽은 후엔 꼭 부모가 함께 대화를 나눌 것을 그는 권했다.

보통 그림책을 보며 텍스트보다 그림에 집중하는 아이들은 어른이 보지 못하는 여러 디테일을 발견하곤 한다는 앤서니 브라운 작가. 이것에 대해 부모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림과 글 사이에 존재하는 갭을 아이들이 상상으로 채울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게 주효하다.

“그림은 소통의 도구에요. 예술을 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예술가, 작가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수학자, 배관공들도 얼마든지 창작활동이 가능해요.”

어린이들이 자신의 책을 읽으면서 기뻐하고 신나 보일 때 제일 큰 보람을 느낀다는 앤서니 브라운 작가. 그동안 했던 것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요즘은 작품 하나를 기획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그는 이 어려움 또한 견뎌내며 꾸준히 일하는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다고 소망했다.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자료 사진 예술의전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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