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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음악대제, 그리고 풍류 피아니스트… 임동창 음악인생 45년
명상음악대제, 그리고 풍류 피아니스트… 임동창 음악인생 45년
  • 이광희 기자
  • 승인 2019.11.01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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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춤추는 가얏고’라는 말이 있다. 드라마로 만들어졌는데 소외된 한국 국악의 현실 속에서도 예술혼을 지켜가는 이야기다. 탤런트 고두심. 오연수 등이 출연했다. ‘가얏고’는 가야금의 옛말이다. 여기에서 ‘피앗고’가 탄생한다. 우선 범상치 않은 시를 하나 쓰고 노래로 풀어가는 내용을 잠시 들여다보자.

글 김문(인터뷰 작가) l 사진 양우영 기자

여기 씨앗 하나가 있다. 이 씨앗은 꿈꾸고 있다.
아름다움 꿈, 꿈을 깨기 싫다.
오직 꿈속에서만 산다.(중략)
씨앗은 결단한다,
꿈은 충분히 꿨다.
‘나의 아름다운 꿈을 현실에 펼치자’라고.
그렇게 해서 이 씨앗은 연꽃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흠모한다.
연꽃이 지닌 덕을
마음짓을 통해 얻어진
행복하고 평화로운 풀어짐
이제 어디로 향할 것인가.

지난 10월12일 소슬바람이 부는 저녁, 서울 강남의 탄허기념불교박물관에서 눈길 끄는 음악회가 열렸다. ‘연꽃처럼’이라는 제목을 달고 관객들한테 등장했다. 풍류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임동창(63)씨가 ‘명상음악대제’를 열었던 것. 객석이라고 할 것 없이 300여 명이 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아 때로는 조용하고, 때로는 박수갈채로 환호했다. 이날 ‘피앗고’와 ‘신종협주곡’을 처음 선보였다. 임씨가 개발한 피앗고와 방짜유기로 만든 신종 37개가 빚어내는 ‘울림의 잉상블’인 ‘소리의 명상’을 펼쳐냈던 것. 이 앨범은 미국에서 지난 8월 발매됐고 한국에서는 12월에 발매된다. ‘신종’에 대해 좀 더 설명을 하자면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 이봉주 선생이 만들었다. 구리와 주석을 78대 22 비율로 합금하여 두드려 만든 것인데 보통 좌종 또는 경종이라 부르는데 임씨는 이를 신종이라고 한다.

피앗고와 신종협주곡 처음 선보여

그렇다면 피앗고는 무얼까. 피아노는 건반을 누르면 연결된 망치의 양모펠트가 쇠줄을 친다. 소리는 부드럽고 세련되지만 미끈하게 평면적이다. 임씨는 있는 그대로의 거칠고 원초적이며 입체적인 소리를 원했다. 그래서 임씨는 피아노 제작자 서상종과 함께 ‘피앗고’를 만들었다. 피아노와 가얏고가 합쳐진 것이다. 가얏고처럼 원시적인 현의 소리가 나는 피앗고는 특별히 고안된 액션을 장착한 새로운 피아노이다. 밝고 투명하며 날렵한 사운드를 구현한다.

임동창 하면 수식어가 많다. 그에게 피아니스트, 작곡가, 허튼가락 창시자, 수도승 중 어느 것이 제일 맞느냐고 물으면 항상 이도 저도 아닌 ‘노는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사람들은 풍류피아니스트라고 말한다. 17세 때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고 ‘허무’와 ‘안타까움’을 느꼈고, 몰입과 몰아의 과정을 거쳐 자유로운 영혼의 열쇠로 ‘풍류’의 세계를 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명의 소리를 만드는 천재 작곡가라는 말과 함께 세상의 모든 음악을 자유롭게 유희하는 풍류 피아니스트라고 부른다. 지금도 클래식·국악·가요·가곡·불교음악 등 그의 음악은 자유자재로 경계를 넘나든다. 2012년에는 서양에서 유입된 지 100년이 넘은 피아노를 국악기로 창조한 ‘임동창 피앗고’를 내놓아 음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나는 그저 노는 사람”

이렇게 살아온 그의 음악 인생이 올해로 45년을 넘었다. 15세 때 무당의 신내림을 받듯 피아노 공부를 시작했고, 17세 때 주체할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악상으로 작곡에 빠져들었다. 20세 때 피아노 페달에 구멍이 난 후 피아노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 다음은 출가로 이어지고….그는 늘 헐렁한 옷차림이다. 머리를 빡빡 깎았기에 양산을 자주 쓴다. “햇살이 뜨거우면 머리가 좀 거시기하다”며 활짝 웃는다. 그에게 ‘임동창의 풍류’란 무엇인지 물었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네 가지 숙제가 있단다. ‘자유로운 연주’ ‘오롯한 내 음악’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 뭐꼬?’ 등이다. 나이 오십이 넘어 겨우 끝냈고, 나름대로 인생의 족쇄가 풀렸다. 그동안 살아온 삶의 결정체가 바로 풍류가 됐다.

그는 인간의 본성에는 하늘의 이치, 자연의 이치, 즉 풍류성이 본디 들어 있다고 했다. 그 풍류성을 깨어나게 해서 사느냐, 잠든 상태로 사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며 풍류성이 안 깨어나면 불감증으로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풍류성을 깨워서 아름답게, 건강하게, 신명 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네 음악 속에, 핏속에 그 절대자유의 에너지 풍류가 녹아 있으며 그가 풀어낸 ‘허튼가락’도 바로 이러한 풍류에서 비롯됐음은 물론이다. ‘허튼가락’은 틀에 박힌 박자를 허문 순수한 내면의 소리, 즉흥의 소리, 자유의 소리를 말한다. 그는 2010년 이 같은 새로운 장르의 음악 ‘동창이 밝았느냐’를 발표하면서 주목을 끌었다.

“사람의 마음과 몸은 직선 활동을 합니다. 이 직선 활동은 에너지가 있어 얻는 것이 많아 보이겠지만 하나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곡선 활동은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는 듯 하지만 단 하나도 내 손 안에 잡히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보이는 것은 물이 흐르듯, 보이지 않는 것은 바람이 불듯, 이것이 ‘허튼가락’이지요.”

“이 뭐꼬?”를 던지며 수없이 풀어내

그는 얼마 전까지 완주에 풍류학교를 설립 운영하면서 제자들을 길러냈다. 풍류학교는 아마도 세계 최초일 듯싶다. 풀어낸 네 가지 숙제 가운데 ‘이 뭐꼬?’에 대해서는 인천 용화사 행자승 시절 송담 스님한테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화두를 받을 때였다. 수식관을 할 때 수를 세었던 그 자리에 경상도 사투리로 줄여서 ‘이 뭐꼬?’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지면서 풀어낸 것이었다. ‘이 뭐꼬?’는 소리도 듣고, 냄새도 맡고, 돌도 고르고, 붙잡으면 달아나고, 놔주면 돌아오고…. 결국 피아노 치는 것과 너무도 똑같으며, 해도 해도 끝이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현재 임씨는 풍류학교 운영을 끝내고 바람 따라 물결따라 자유롭게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전북 군산 바닷가에서 태어난 임씨가 피아노와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엔 수업이고 뭐고 관심 없던 개구쟁이 시절이었다. 하루는 친구들과 신나게 떠들고 있을 때 음악 선생님이 ‘고향집’이라는 노래를 피아노로 연주했다. 임씨는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한 짜릿한 전율로 다가왔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음악 선생님한테 달려가 막무가내로 음악실 열쇠를 잠시만 달라고 했다. 건반을 이리저리 눌러봤다. 신기하게 악보도 없이 ‘고향집’ 선율이 비슷하게 흘러나왔다. 둘째 날도 그랬다. 왼손을 두 배로 빠르게 쳤다. 완전히 신이 났다. 이후 머릿속에는 온통 피아노 생각뿐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학교 수업은 뒷전으로 하고 피아노 연습에만 몰두했다. 낮에는 이길환 선생한테 레슨을 받고, 저녁에는 교회 피아노로 연습하고, 밤에는 계단 틈에서 잠을 잤다. 그러다 보니 고3 때 자퇴 처리가 됐고, 야간학교에 진학해 겨우 고교 과정을 마쳤다. 그는 고교 졸업 무렵 한양대에서 열린 제1회 ‘월간음악’ 콩쿠르에서 고등부 1위를 차지해 실력을 인정받았다.

별명은 석가모니

그는 고등학교 때 좋아하던 여학생을 집에 바래다주다가 밤하늘의 별을 보고 영감을 받아 독학으로 작곡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마음대로 잘되지 않았다. 불교 서적 2권을 읽고 ‘나를 알아야 내 음악을 작곡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출가를 하게 됐다. 인천 용화사에서 9개월 동안 공양주로 지낸 뒤 상법 스님을 은사로, 송담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법명은 ‘보림(寶林)’이었다. 그러다가 입대 영장을 받았고, 논산훈련소에서 신병교육을 받다가 피아노 실력을 인정받아 영천에 있는 육군 제3사관학교 군악대에 배치됐다. 그런데 절에 있을 때 수행했던 ‘이 뭐꼬?’가 안 돼 탈영을 결심했다.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하던 중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꼭 봐야 한다는 핑계로 2박 3일 특별휴가를 얻었다. 부대를 빠져나온 그는 먼저 피아노를 가르쳐준 이길환 선생한테 인사드리고 용화사에 올라가 군복·군화·군번줄·군모 등을 모두 아궁이에 넣어 태워버렸다.

승복으로 갈아입은 후 고향 시청을 찾아가 대뜸 본인 사망신고를 하러 왔다고 말했다. 될 일이 아니었다. 다시 용화사로 발길을 옮겼다. 진허 스님이 “군대생활 3년도 못 하는 사람이 어찌 평생 중노릇을 하겠는가”라고 꾸짖었다. 결국 부대로 돌아가 일주일 동안 자대 영창 신세를 진 뒤 한 달간 대구에 있는 5관구 헌병대 감옥에서 지냈다. 이때 하루 종일 가부좌를 튼 채 ‘이 뭐꼬?’를 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석가모니였다.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나온 뒤 재즈와 작곡 공부를 다시 했다. 아울러 서울시립대 작곡과에 진학했다. 대학에서는 작곡 공부뿐만 아니라 지휘 공부도 했다. 대학 2학년 때에는 김자경 오페라단에서 지휘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졸업 무렵에는 김덕수 사물놀이패를 통해 국악에 흠뻑 빠졌고, 졸업 후에는 연극 음악에도 참여했다.

꿈의 아리랑 공연

이달 말 김덕수와 함께, 그리고 12월6일 세종시에서 꿈의 아리랑 공연이 있다. 그에게 풍류에 대해 다시 물었다. “아무 것도 없구나 그저 놀기만하면 되는 것을, 논다는 것은 삶을 흐르게 두는 것이며 바람과 하나 되어 숨결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이 풍류로다.”

우리가 아리랑을 말할 때 곧잘 민족의 ‘영혼’이요 ‘한’이라는 말을 한다. 널리 알려진 진도아리랑·정선아리랑만 봐도 독특한 가락, 고유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이런 아리랑이 내가 사는 지역에도 있을까? 서울·부산·인천 등 광역시를 비롯해 강원 태백·경북 경주에도 있다. 제주에는 설문대할망 아리랑 등 각 지역의 특성을 살린 아리랑이 존재한다. 천재 피아니스트·작곡가·허튼가락 창시자 등으로 다채롭게 불리는 풍류 음악가 임동창 씨가 7년에 걸쳐 200곡을 작사·작곡한 덕분이다.

[Queen 김문 인터뷰작가 ] 사진 =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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