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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과 정의> 펴낸 김영란 전 대법관, ‘법과 사회에 던지는 화두’
<판결과 정의> 펴낸 김영란 전 대법관, ‘법과 사회에 던지는 화두’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9.12.02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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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과 정의' 펴낸 김영란 전 대법관, ‘법과 사회에 던지는 화두’
'판결과 정의' 펴낸 김영란 전 대법관, ‘법과 사회에 던지는 화두’


대한민국 최초 여성 대법관, 김영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하는 판결로 ‘소수자 대법관’이라는 평가를 받은 김 전 대법관은 일명 ‘김영란법’이라고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입법한 장본인이다. 지금은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으로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있다.

김영란 전 대법관이 최근 저서 <판결과 정의>를 펴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의 후속작이다. 전작에서 미처 못다 한 이야기가 있었던 것일까? 10월 16일 열린 김 전 대법관의 북토크 현장을 찾았다.

창비서교빌딩에 마련된 행사장은 김영란 전 대법관의 사회적 명성에 버금갈 정도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메워졌다. 시간에 딱 맞게 등장한 김 전 대법관은 북토크인 만큼 자신을 편하게 ‘작가’라고 불러달라며 첫인사를 건넸다.

판사는 늘 어떠한 질문에 대해 결론을 찾아야 하는 직업이다. 모난 데 없이 둥글둥글한 인상의 김 전 대법관은 판사 생활 당시 남을 심판하는 일이 자신에게 과연 맞는 것인지 속으로 매우 괴로웠다고 토로했다.

“이제 대법관 자리를 떠나 다른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아도 되어서 안심이에요.”
 

다시 거시적으로 보는 판결들

<판결과 정의>는 그가 대법원의 논쟁으로 한국 사회를 보고 기록한 책이다. 기존 책에서 주로 자신이 직접 관여했던 판결을 다루었다면, 이번 책은 대부분 그가 대법관을 퇴임한 이후에 선고된 전원합의체 판결들이 등장한다. 이에 판결 하나하나의 개별적 분석에 치중하기보다 좀 더 포괄적으로 거시적인 사고의 틀 속에서 묶어 보려 한 점이 유독 눈에 띄었다.

사실 판사는 사건을 거시적으로 보는 데 익숙하지 않다는 김 전 대법관. 판결을 위해서는 법 조문에 맞춰 형식적인 해석이 먼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거시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는 게 옳은지 그른지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대법관 직을 내려놓은 지 1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판사도 사건을 거시적인 시각에서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책이 나오게 된 계기다. 한 장 한 장 쓰다 보니 대법원의 논쟁에 현재 한국사회가 어떠한지 고스란히 반영돼 있었다고 한다.

과거사 청산과 소멸시효 문제

간혹 대법원의 판결이 선택이어야 할 때가 있다. 예컨대 2006년 공유 수면 매립이 정당한지, 가둬진 물이 오염될 것을 고려해 친환경적인 개발을 고민할 것인지를 다룬 새만금 사건도 어찌 보면 대법관들의 선택의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과거사에 대한 사법부의 권한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해서도 김 전 대법관은 의문을 제기했다.

진도민간인학살 사건부터 정원선 사건 재심까지 정치권에서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한 과거사들이 사법부로 와 법원 소송까지 진행되었다. 결국 법원은 법적으로 판결 아닌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온다. 한국과 일본이 외교적으로 풀지 못한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도 마찬가지다.

“이게 과연 법원으로 와서까지 해결할 문제였나 싶어요. 정치권에서 해야 될 일을 사법부에 떠민 격이지요. 그게 최선의 방법이었을까요?”
또한 그는 국가배상청구 소멸시효, 손해배상금 지연이자 삭감 등 문제도 과거사 청산 문제와 일맥상통한다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국가가 잘못한 일에 대해 스스로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게 타당할까요?”
김 전 대법관이 사회에 던지는 하나의 화두다. 특히 소멸시효의 경우 이번 화성연쇄살인사건 만큼은 특별법을 제정해 예외를 두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그녀는 제안했다.

정치의 사법화

특히 최근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큰 논란거리다. 정치와 사법이 종이의 앞뒷면처럼 떼서 말할 수 없게 된 요즘. 정치적 판결은 물론 청와대와 사법부의 거래 의혹, 사법부가 외부의 힘을 빌린다는 의심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대법관마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판결이 사뭇 달라진다는 분석도 나와 있다. 실제로 그 역시 대법관 시절 그들의 정치적인 성향을 통해 각 사건의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독수리 오형제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는걸요.”
자연스럽게 삼성엑스파일 사건이 거론되었다. 2005년 고 노희찬 전 국회의원이 개인 온라인 사이트에 삼성 엑스파일에 등장하는 검사의 실명을 발표한 일이 있었다. 그의 행위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는지, 검사들의 프라이버시 침해였는지를 두고 대법원 재판이 이뤄졌다. 이 사건 또한 둘 중 선택하는 문제였다고 김 전 대법관은 회상했다.

대법원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택했고, 헌법재판소는 공공의 이익이 크다고 판결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법률해석 범위가 엇갈린 것인데, 불이익은 노 전 의원이 받았다고 그는 가슴 아파했다.

“개인적으로는 정당행위의 범위를 넓게 봐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견해가 옳지 않았나 싶습니다. 검사는 개인이 아니라 공직자였으니까요. 그렇다면 이후 따라오는 문제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봐야 하기도 하고요.”

더 나아가 해당 판결의 선택 대상이 삼성과 검찰 대 노 전 의원이었을 가능성은 없는가라는 의문 제기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김영란 전 대법관의 판결과 정의
김영란 전 대법관의 판결과 정의

 

성인지 감수성이란

북토크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쯤, 토크쇼 주제는 가부장제로 옮겨갔다. 그녀의 책 맨 첫 부분에 등장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법이란 기득권을 지키는 거예요. 무엇인가 지킬 게 있을 때 법을 만드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법이 기득권만 지키고 있을 때 사회는 어떻게 될까요?”

이는 곧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대부분의 기득권은 가부장제에서 온다는 김 전 대법관. 이를 빅히스토리 관점에서 보면 농경사회에서 시작, 상당히 희석됐다가 유교 문화시대를 거쳐 여전히 굳건하게 우리 사회의 기저에 흐르고 있다. 이제 와 그 기득권이 옅어져가면서 남성 혐오, 여성 혐오 문제도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비단 남녀문제로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그녀는 성희롱 교수의 해임결정취소 소송을 토대로 성인지 감수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먼저 해당 사건 대법관 판결문에서 처음 등장한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이에 대해 김 전 대법관은 “성인지 감수성이란 기득권의 차이를 인지하는 능력이다”고 설명했다.

“꼭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힘의 대칭성의 차이라고 보면 됩니다. 미국의 경우 인종 차별과 맞닿아있지요. 그 힘의 대칭성의 차이에 대한 감각이 있느냐 없느냐를 다루는 게 바로 성인지 감수성입니다.”

그렇게 보면 이후 뇌물 감수성, 절도 감수성이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도 설명이 가능해진다. 

계약이 법보다 우선된다면

마지막으로 그는 가습기살균제 사건, 통상임금 사건, 철도노조 파업 사건을 바탕으로 계약이 법보다 우선할 수 있는가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일도 잊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근대 야경 국가 시대에서 자유주의를 거쳐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합의가 법보다 우선되면 20세기 초의 야경 국가 시대로 돌아가 버리는 것은 아닐까라는 게 그의 우려다.

“합의라는 게 어찌 됐든 이득이 되기 때문에 이뤄지는 거니까요. 분명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까지 훼손해서는 안 됩니다.”
김 전 대법관은 후배 판사들에게 하나의 사건에 대해 다소 민감하게 다양한 방향에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전언했다.

취재 송혜란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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