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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아스트 송일곤 감독 영혼을 정화시킨 쿠바의 열정을 좇다
시네아스트 송일곤 감독 영혼을 정화시킨 쿠바의 열정을 좇다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01.11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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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곤 감독의 이름을 처음 접한 건 그가 쓴 여행 에세이 ‘낭만 쿠바’를 선물 받으면서부터다. 책은 다큐멘터리 영화 ‘시간의 춤’을 촬영하기 위해 떠난 쿠바의 풍경을 사진과 글로 엮은 것이었다. 쿠바와 관련해서는 체 게바라의 나라라는 상식이 전부였던 기자에게 송일곤 감독의 풍경과 감성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시간의 춤’까지 보게 됐다.
영화는 쿠바에서 살아가는 한인 3∼5세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100여 년 전 300여 명의 한인들은 4년 뒤면 부자가 돼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제물포항을 떠나 멕시코에서 억세고 고단한 삶을 살았다. 노예처럼 일했지만 고국으로 돌려보내준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그들이 받는 품삯은 하루 끼니를 해결하기에도 역부족이었다.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며 힘들게 살았지만 학교를 세워 한국어를 가르치고, 상해 임시정부가 세워질 당시 독립자금을 부치며 조선인으로서 정체성을 지켜나갔다. 지금은 한인 1∼2세들이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남아 있는 세대 역시 그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복을 차려입고 동요 ‘꼬부랑 할머니’, 가곡 ‘봄이 오면’을 배우는 쿠바 한인들의 모습과 어설픈 한국어 발음이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애국가를 부르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은 진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쿠바의 추억·색깔·향기까지 기억한다
“‘시간의 춤’의 시작은 쿠바를 배경으로 한 멜로영화였어요. 하지만 자료를 조사하던 중 조선인의 이주사실을 알게 됐죠. 멜로영화는 접고 다큐멘터리로 콘셉트를 정해 쿠바로 떠났는데 그곳에서 다시 주제가 사랑 이야기로 바뀌었어요. 사람들이 제 생각과는 다르게 너무 낭만적으로 살고 있더라고요. 너무 먼 곳으로 떠났기 때문에 의지할 것은 사랑밖에 없었던 거죠. 그래서 부모, 연인, 그리움 등 그들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어요.”
송 감독은 바쁜 촬영 스케줄이었지만 쿠바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을 기억하고 싶었다. 그리고 영화를 위해서가 아닌 온전히 자신을 위해 글을 쓰고 싶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카메라로 그들의 풍경을 담아 기억하고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푸른색 노트에 최소한의 단어를 썼다. 이를 모아 책으로 펴내고, 얼마 전에는 ‘스토리 오브 어 데이(Story of a day)’라는 주제로 사진 전시를 열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좀 더 깊이 쿠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인터뷰를 하며 쿠바에서 만난 장면, 사람, 추억, 색깔, 향기까지 고스란히 전해들을 수 있었고, 언젠가 그곳에서 모히토(Mojito)를 마실 그날을 꿈꾸게 되었다.

체 게바라의 나라에서 찍을 영화 대본을 쓰고싶다
송일곤 감독은 폴란드 유학 시절 체 게바라에 빠졌다. “책 ‘체 게바라 평전’에서 인생을 배웠다”고 말하는 송 감독은 “체 게바라처럼 살 수 없지만 이상에 대한 자기희생이라는 숭고한 정신을 살면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고백한다.
“체 게바라는 자신의 조국 아르헨티나가 아닌 다른 나라, 쿠바의 혁명을 위해 피델 카스트로와 목숨을 걸고 싸웠고 기적처럼 혁명에 성공했어요. 그리고 얼마 후 볼리비아에서 또 다른 혁명을 위해 게릴라의 일원으로 총을 들고 싸우다가 처형당했죠. 그는 사르트르가 말한 것처럼 근현대 역사에서 가장 완벽한 인간이었어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이웃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완벽한 죽음이었죠. 저는 최소한 그가 목숨을 걸었던 그 신념이 50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쿠바에서 이뤄졌는지 궁금했어요. 체 게바라와 쿠바, 쿠바와 한인들. 이 두 개의 전혀 다른 이미지에 매혹을 느꼈죠. 저는 이 설명할 수 없는 이끌림으로 쿠바로 가기로 결심했어요.”
송일곤 감독이 살갗으로 느낀 쿠바는 지독히 가난해 자본의 유혹에 넘어간 듯하면서도 순수함을 지키는 나라였다. 쿠바 혁명은 자국 문화가 미국 자본에 잠식당하는 것에 맞서 자주성을 회복하기 위함이었다. 그 혁명에 성공했기 때문에 자본의 나쁜 영향은 적었다. 예를 들어 약자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일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국가를 무척 사랑했다.
“국가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감정이 우리나라와 다른 것 같아요. 시민들이 진정으로 원해서, 밑으로부터 혁명에 성공했으니 스스로 만든 국가를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리 가난해도 낙천적일 수 있는 거죠.”
그러나 가난하기 때문에 다시 자본의 유혹에 노출되는 모습이었다. 아름다운 해안인 바라데로에는 외국 자본으로 지어진 화려한 호텔이 빼곡하다. 가난한 쿠바인들은 아예 들어갈 수조차 없다. 많은 쿠바인들은 그곳에서 일하고 싶어한다. 달러를 벌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쿠바를 먹여살리는 게 관광산업이잖아요.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느꼈어요. ‘체 게바라가 만들고자 했던 국가가 이런 건 아니었을 텐데’라는 생각과 함께 슬프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이 나라가 낭만적인 까닭은 옛 우리 민족이 그러했듯 이웃과 웃으며 대화할 수 있고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공동체 문화가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쿠바에는 유리창이 없다. 유리가 비싸기도 하지만 바람이 잘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여러 개의 나무판을 비스듬하게 띄엄띄엄 이은 창이 있다. 이웃 간에 소리가 다 넘나들기에 교류가 많을 수밖에 없다.
“영화 촬영차 어느 집에 머물렀는데 옆집에서 늘 밥 먹으러 오라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그 정도로 이웃과 사이가 좋았죠. 생활공간 자체가 혼자만의 장소를 갖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인 데다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소유 개념이 약하다는 점이 한국과 다른 삶의 가치를 추구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쿠바에 다녀온 이후 행복의 개념을 다르게 생각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좋은 집, 좋은 차, 많은 돈 같은 주변 것들을 목표로 살고 싶지는 않죠. 쿠바를 다녀오고 영화를 편집하고 책을 쓰면서 떠오르는 하나의 글귀는 바로 ‘삶에 감사합니다’였어요. 또 한번 쿠바에 가고 싶네요. 책에 써놓은 것처럼 쿠바 거리를 천천히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달리고 싶어요. 쿠바에서 찍을 멜로영화 대본을 아주 느리게 쓰고 싶은 생각도 있고요(웃음).” 

 

“나의 작은 바람은 다시 쿠바를 찾아서 변변치 않은 나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 ‘시간의 춤’을 쿠바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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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열정과 낭만 속을 거닐다
송일곤 감독의 포토 에세이

# 1  사진으로 보던 곳에 왔다. 당신도 지금 사진을 보고 있다. 공간으로 나아가는 것은 용기와 시간이 필요하다. 그곳에는 냄새가 있고 촉각이 있으며, 당신의 동공을 열어 줄 빛이 있다. 2009년 4월의 쿠바. 아직 우기가 시작되기 전이며, 오후는 뜨겁고 밤은 훈풍에 열기가 식어가는 계절이다. 선글라스를 벗고 연두색 머플러를 풀어 땀을 닦으며 멀리 바라본다. 드디어, 나는 이곳에 왔다.

# 2  혁명 50주년의 노동절 기념행진 전날 합창단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쿠바혁명 영웅들의 그림이 걸리고 있었고 간이로 만든 단 위에 다양한 표정의 쿠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뜨거운 오후였고 조금은 무료한 표정이었다. 군악대와 시민 악단이 섞인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흐르자 사람들은 기립했고 혁명가를 목청껏 부르기 시작했다.

# 3  나는 5년 동안 폴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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