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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로 빙의한 김희애, 억척스럽거나 우아하거나
‘윤희’로 빙의한 김희애, 억척스럽거나 우아하거나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9.12.24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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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여성. 배우 김희애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다. 드라마 <밀회>의 오혜원, 영화 <허스토리>의 문정숙이 남긴 잔상이 꽤 컸던 것일까. 그래서 더욱 최근작 <윤희에게>가 그녀를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잠시 ‘윤희’로 빙의한 김희애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우리 맘속으로 훅 들어왔다.

1983년 영화 <스무해 첫째날>로 데뷔한 김희애. 리즈시절 단아함과 청초함의 대명사로 이목을 끌었던 그녀는 <내 사랑 짱구>, <불의 회상>, <영웅 돌아오다> 등 스크린에서 여주인공으로 활약했다. 또래 배우 전인화와 함께 전성기를 누릴 때였다. 1992년엔 드라마 <나목>으로 브라운관에 진출한 그녀는 이후 <아들과 딸>, <폭풍의 계절>, <사랑과 결혼>, <아내> 등 드라마는 물론 영화 <101번째 프로포즈>까지 다작에 임했다. 거기서 비롯된 그녀의 연기 경력은 드라마 <부모님 전장서>, <눈꽃>, <내 남자의 여자> 등에서 빛을 발하며 연말 시상식 상을 휩쓸었다. 그렇게 점차 중년 배우가 되어 간 그녀는 지금껏 톱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강한 여성상의 표본

한글과 컴퓨터 창업자인 이찬진 씨와 결혼해 슬하에 두 아들을 둔 엄마가 되기도 한 김희애. 늘어난 나이테만큼 그녀의 연기력은 갈수록 깊어져 갔고, 연기에 대한 열정은 도무지 식을 줄 몰랐다. 드라마 <밀회>에서 20대 남자 배우인 유아인과 격렬한 러브신을 선보이는 데도 망설임이 없었으며, <미세스 캅>, <허스토리>에서는 더욱 강한 여성상을 만들었다.

특히 <미세스 캅>은 경찰로는 백점, 엄마로선 빵점. 정의롭고 뜨거운 심장을 가진 경찰 아줌마의 활약을 통해 대한민국 워킹맘의 위대함과 애환을 그린 드라마였다. 극중 그녀는 거침없는 카리스마, 노련하고 능수능란한 수사력, 세상을 끌어안는 따스한 눈빛으로 최고 시청률 15.8%를 견인하는 데 성공했다.

영화 <허스토리>에서는 또 어떠했는가. <허스토리>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 동안 오직 본인들만의 노력으로 일본 정부에 당당히 맞선 할머니들과 그들을 위해 함께 싸웠던 사람들의 뜨거운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당시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을 만큼 유의미한 결과를 이뤄냈음에도 여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관부재판 실화를 소재로 했다. 영화에서 그녀는 6년의 관부재판을 이끄는 원고단 단장 문정숙으로 분해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당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작품에 동참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출연을 결심했다고 그녀는 털어놓았다.

연기마저 고혹적이다

이는 그녀가 이번 영화 <윤희에게>를 택한 이유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윤희에게>는 우연히 한 통의 편지를 받은 윤희가 잊고 지냈던 첫사랑의 비밀스러운 기억을 찾아 설원이 펼쳐진 여행지로 떠나는 감성 멜로물이다. 50대에도 변치 않는 미모로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그녀는 이번 작품 출연 계기에 대해 자신 특유의 담백한 목소리로 “영화 시나리오를 마치 소설책처럼 행복하게 읽어 내려갔다. 영화 속 어떤 역할이건 호감을 느꼈고, 참여하고 싶게끔 했다”고 밝혔다.

영화 속에서 윤희의 여정엔 딸이 함께한다. 윤희는 여성인 동시에 엄마, 더 나아가 아내의 정체성도 가지고 있다. 때로는 신경질적이면서, 때로는 억척스럽고, 때로는 꾸밈없이 수수하다. 캐릭터에 우아함이 묻어나는 것은 순전히 배우의 영향 때문이다. 작품엔 평소 일상을 제대로 살아내야 좋은 연기가 나온다고 이야기했던 그녀가 표현해내기 사뭇 어려운 장면들도 많다. 자신의 체험이나 상상이 아니고서는 만들 수 없는 신들. 그럼에도 그녀는 연기장인의 정신으로 술술 풀어내며 감탄을 자아냈다.

“너무 보고 싶어 하는 마음,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안타까움 등 복합적인 감정을 어떻게 한 번에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하고 걱정도 많았어요. 감성을 말랑말랑하게 운동시키기 위해 다른 작품들을 많이 보고 최대한 마음을 촉촉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남다른 눈빛, 감성을 지닌 배우들과 함께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에요.”

 

1 2014년 드라마 '밀회'에서 성공을 위해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예술재단 기획실장 오혜원을 맡은 김희애는 자신의 재능을 모르고 살아온 천재 피아니스트 이선재 역의 유아인과 파격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2 '허스토리'에서 김희애는 6년의 관부재판을 이끄는 원고단 단장 문정숙으로 분해 카리스마 넘치는 강한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3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윤희에게'의 윤희. 김희애의 섬세하고도 깊은 감성이 돋보이는 신이다.
1 2014년 드라마 '밀회'에서 성공을 위해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예술재단 기획실장 오혜원을 맡은 김희애는 자신의 재능을 모르고 살아온 천재 피아니스트 이선재 역의 유아인과 파격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2 '허스토리'에서 김희애는 6년의 관부재판을 이끄는 원고단 단장 문정숙으로 분해 카리스마 넘치는 강한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3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윤희에게'의 윤희. 김희애의 섬세하고도 깊은 감성이 돋보이는 신이다.

 

여배우의 끝없는 열정이 주는 희망 

잔잔하게 그리고 은은하게 흐르는 다큐 형식의 영화 전개에도 그녀의 연기는 한 번도 사실적이지 않았던 적이 없다. 미묘한 표정과 눈빛, 행동 하나하나, 숨결까지도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아낸 김희애. 생활연기는 물론 가슴 깊은 곳 상처를 달래는 처연함이 보는 이의 마음을 뒤흔드는데…. 역시 명품 배우라는 예찬이 나올만하다.

한편으론 퀴어 영화이자 엄마와 딸의 아름다운 동행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 나가는 가슴 따뜻한 드라마다. 사랑의 상실과 복원, 두려움과 용기, 화해와 성장까지 모두 녹아냈다. 그 속에서 그녀도 진정한 자신을 찾고, 성장했을 터. “이번에 연기하면서 참 행복했어요.”

영화에서 처음으로 웃는 윤희가 마지막 신을 장식할 때, 그녀는 가고 오롯이 배우 김희애만 남았다. 이로써 그녀는 비로소 희망을 전하는 듯했다.

“제 나이에 아직도 주연을 한다는 데 감사함이 커요. 특히 이번 작품이 여성 캐릭터가 전면으로 나서도 될 까라는 선입견을 깨는데 큰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그녀가 보여줄 새로운 모습들이 더욱 기대된다.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자료 사진 JTBC, NEW, 리틀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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