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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도형의 사진과 인생 #06
[연재] 김도형의 사진과 인생 #06
  • 김도형 기자
  • 승인 2020.01.28 0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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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김도형의 사진
사진작가 김도형의 사진 (인스타그램-photoly7)

 

그 망원경은 생각보다 고급이었어

4단짜리 였는데 다 뽑으면 길이가 1미터가 조금 못되었지

나는 그길로 밖에 나가 성능을 테스트 했는데 배율이 얼마나 높은지 손으로 들고는 물체가 흔들려 망원경을 담벼락 같은 곳에 고정시켜야 했어

그렇게 이곳 저곳을 훑어 보던중 망원경의 이름인 크레이터의 뜻을 떠올리고 달을 관찰하기로 하고 밤을 기다렸어

천체 망원경 처럼 삼각대로 고정 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눈과 달을 일직선으로 맞추기가 힘들었는데 그것이 딱 맞는 순간 나는 탄성을 질렀어

달에 토끼와 계수나무는 없고 표면은 마치 천연두에 걸린 것처럼 셀 수없을 정도로 많은 구덩이가 있었지

그것이 바로 우주의 운석이 날아와 충돌하며 만들어진 크레이터 였어

렌즈 몇개의 조합으로 인간의 눈을 뛰어 넘는 미지의 세계를 보여준 광학의 능력이 놀라웠지

그때 렌즈가 부리는 마술에의 경도는 나중 고스란히 카메라 렌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는데 이 이야기는 한참 뒤에 등장할거야

윤극영의 동요 반달을 부르며 자란 나는 달을 숭배할 대상으로 바라보았는데 그날 밤 나는 달의 민낯을 보고 만것이었지

이 경이로운 과학적 발견을 나 혼자만 간직하면 안될듯 하여 나는 스스로를 가려리 천문대 대장으로 임명하고 그 신성한 의무를 실행하기로 결심했어

그 때 나는 동네 조무래기들 그러니까 나보다 두어 살 어린 사랑스런 동생들에게 동네 뒷산 꼭대기 큰솔나무(큰소나무) 옆 묏등 잔디밭에서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었어

태권도를 배운적이 없는 내가 뭘 알겠어 그냥 티비에서 본것을 흉내낸거지

내 구령에 맞춰 팔과 다리를 내지르며 우리 동생들은 수련에 열심이었어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수련이 아니라 썰매타기 아니면 딱히 할 일 없는 긴긴 겨울방학에 벌인 단지 시간 때우기용 놀이에 불과했지

나는 그 태권도 제자들에게 그날 밤 뒷 산 큰솔나무로 모이라고 했는데 몇몇놈이 '오늘은 태권도를 밤에도 함니꺼' 라고 물어서 '와보면 안다' 그랬어

당장 그날밤 이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여하간 명월이 만공산 하던 밤에 나는 제자들 앞에서 망원경으로 달을 보여주기 전에 우주에 관한 일장 연설을 했어

아무리 만화 때문이긴 했어도 그동안 샀던 소년잡지의 기사에서 읽은 상식과 은주 누나집에서 빌려본 우주의 신비를 다룬 책 등에서 발췌한 내용들을 떠든것 같아

지금 같아선 무변광대한 우주에서 우리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가 하는 철학적 소재까지 설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

그러나 아주 그러나 한참 떠들고 있을때 우리 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행님 춥십니더 고마 달이나 보이주소' 해서 나는 '춥구나 그래 보자 달' 했지

나뭇가지에 망원경을 걸어놓고 초점을 먼저 잡은 다음 한 놈씩 드디어 천체관람을 시켰어

목성이나 토성은 아니지만 달도 엄연한 천체이니 천체관람이란 것이 틀린말은 아니지

역시 동생들의 입에서도 내가 했던 것과 같은 탄성들이 터진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김도형 천문대장은 그렇게 맡은바 소임을 다하고 제자들을 인솔해 산을 내려왔어

마을은 은으로 도금한듯 달빛에 싸여 있었고 우리들의 발소리에 개들은 컹컹 짖었지

그 후로 한 사십년 흘렀네

얼마 전 고향 친구 모친상이 있어서 상가에 갔는데 친구의 동생 친구들 그러니까 내 옛 태권도 제자들이 먼저 와 있더군

같이 오십줄을 넘긴 중늙은이들 끼리 소주를 권커니 잣거니 하다가 그 옛날 망원경 얘기를 누가 하더군

그 때의 이벤트가 잊히지 않는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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