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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도형의사진과인생 #17
[연재] 김도형의사진과인생 #17
  • 김도형 기자
  • 승인 2020.02.10 0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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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김도형의 풍경 '남해 2018' (인스타그램: photoly7)
사진작가 김도형의 사진 (인스타그램: photoly7)

 

내일이 정월 대보름이네

매년 정월 대보름이 되면 생각나는 일이 한가지 있어

이십년도 더 된 이야기인데
어머니와 가까이 살던 누님이 아무래도 엄마가 치매증상이 있는 듯 하니 한 번 내려와 보라고 했지

가보니 정말 정신이 오락가락 하시더군

서울로 모시고 올라와 진단을 받았는데 과연 치매초기 였어

별 효과도 없고 비싸기만 한 아리셉트 라는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며 당분간 우리집에서 지내기로 했지

그당시 나는 꿈에 그리던 아파트에 입주한지 얼마되지 않았어

상암동 아파트 우리 단지 주민치고 내 엄니 모르는 사람 없었지

틈만 나면 나가려고 문간에 서 계셨어
저기 버스 온다고
저 버스타고 집에 가야 된다고

용케 현관문 여는 방법을 알고는 수시로 밖으로 나가셨는데 단지 안을 암만 찾아봐도 보이지 않아 급기야 관리사무소에서 방송을 한 것이 여러번이니 자연히 305동 1101호 할머니를 주민들이 알게 된거지

그렇게 두어 달 감옥에 갇힌것 처럼 계시다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고향집에 내려갔어

본격적으로 모시려면 고향집 정리도 필요했고 앞으로 보기 힘들 고향이웃들과 인사도 할 겸해서 였지

그 내려가는 날이 바로 그 해 정월 대보름날 이었어

둘이서 버스를 타고 충청도 쯤 지나는데 정신이 돌아왔는지 난데없는 폭탄발언을 하시는 거야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너를 낳아준 생모가 따로있다' 라고 했어

나는 태연하게 이미 알고 있다고 했는데 엄니는 놀라는 표정으로 그 소리 어디서 들었냐고 하시더군

내가 눈치 하나는 빠른 편이라서 누님과 동네 어른들의 소곤거림 등으로 그 사실을 어릴때부터 알고 있었던 건데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그 누구 앞에서라도 내색하지 않았어

내 위로 누나가 넷이야

이것으로 내가 왜 태어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을거야

뿌리 깊은 유교정신의 영향으로 선영봉사, 그러니까 죽어서 제사를 지내줄 아들이 필요했던 거지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이제와서 누굴 원망하겠어

나는 이상하게도 내 생모가 궁금하지 않았어

또 궁금해 본들 어쩌겠어
"나 생모에게 돌아갈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초등학교 육학년때 미스터리한 사건이 하나 있었지

하루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인이 교문으로 들어서서 어떤 아이에게 누구를 좀 불러달라 해서 불려온 아이가 나와 같은 학년의 구도형이라는 아이였어

나와 이름이 같은 구도형은 왠지 그 여인 앞에서 주뼜주뼜한 몸짓을 하고 있었어

구도형의 모친은 아닌듯 했지

그래서 내 생각에 그 여인이 운동장의 그 아이보고 '김도형'을 불러 달라고 했는데 엉뚱한 구도형이 불려간 게 아닌가 하는 것이 내 추측이지

내 생모가 나를 한 번 보려고 찾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인데 누가 그걸 확인해 줄 수 있겠어

몇해 전 서울서 나보다 열살 가까이 많은 고향형님과 술을 마신일이 있는데 형님은 내 생모에 대한 생생한 기억을 갖고 있더군

어머니와 생모가 가게집에서 잠시 같이 산 적이 있었다는데 형님이 가게에 물건을 사러 갔을때 만난 생모의 인상을 얘기했지

어린 형님의 마음에도 시골에서 보기드문 미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었지

각설하고,

그리하여 다시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로 왔는데 그로부터 장장 이십년 가까운 치매노인 수발의 역사가 시작되었어

어릴때 나는 동네 어르신들에게서 너는 네 엄마에게 잘해야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

"왜요, 왜 그런말씀을 하시죠' 라고 굳이 묻지 않아도 그 이유를 알고 있었지

어머니는 당신의 배로 나를 낳지는 않았지만 나를 정성으로 키웠어

나도 그리 효자소리 들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머니께 내 할 도리는 다했지

아!
이 십년 치매노인 수발의 역사를 책으로 쓴다면 백과사전 한 질 분량은 될거야

어느 일요일에 어머니 목욕을 시키려는데 손가락에 반짝거리는 것이 있어서 보니 과자봉지를 묶는 금색 철심이었어

그걸 금반지 처럼 끼고 계신거였지

그제서야 환갑 진갑 거쳐오면서 그 흔한 반지 하나 못 끼워드렸다는 생각이 들더군

어머니는 2015년 2월에 92세의 일기로 돌아가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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