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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4관왕' 기생충 촬영지 돼지슈퍼, 외국인 관광객들 찾아와
'아카데미 4관왕' 기생충 촬영지 돼지슈퍼, 외국인 관광객들 찾아와
  • 김정현 기자
  • 승인 2020.02.11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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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찾은 영화 '기생충' 촬영지 서울 마포구 아현동 '돼지슈퍼'
11일 찾은 영화 '기생충' 촬영지 서울 마포구 아현동 '돼지슈퍼'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과 국제극영화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4관왕에 오르며 101년의 한국영화사를 새로 쓴 영화 '기생충'의 촬영지인 서울 마포구 아현동 '돼지슈퍼'의 사장 내외는 아직도 기쁨이 가시지 않는 듯 활짝 웃었다.

돼지슈퍼는 영화에서 기택(송강호)의 아들 기우(최우식)가 대학생 친구인 민혁(박서준)에게 과외를 넘겨받는 장면에 배경으로 등장한다. 기우가 민혁과 야외 테이블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던 골목이 슈퍼 앞길이다.

슈퍼를 왼쪽에 끼고 골목으로 들어가면 기택의 일가족이 동익(이선균)의 집에서 빠져나와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뚫고 내려가던 계단을 볼 수 있다. 기정(박소담)이 원래 동익의 집 가정부인 문광(이정은)을 내쫓기 위해 복숭아를 사들고 지나가던 곳도 이 골목이다. 기택의 일가족이 동익의 집에 '기생'하려는 욕구가 시작되고 자라나는 장면의 배경이 된 셈이다.

45년째 한동네에서 가게를 운영한 이정식씨(77·남)와 김경순씨(73·여) 부부는 장사에 매달리느라 결혼 이후 제대로 '영화 구경' 한번 못해봤지만 영화가 개봉하자 큰맘 먹고 신촌의 한 영화관을 찾았다. 김씨는 "처녀 때 충무로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 한번 본 이후로 영화를 처음 본 것"이라며 "남편은 안 간다고 하는 걸 '이왕이면 가보자' 하고 가게문을 닫고 갔다"고 웃음을 지었다.

김씨는 영화를 보며 "'여보, 우리 가게 나왔어' 하며 반가워서 남편에게 막 말했다"며 "가게가 예쁘게 나오더라"라고 말했다. 모처럼 본 영화에 관해서는 "우리 삶이 묻어나는 영화"라며 "나도 처음에 우리 아저씨(남편) 만나서 어려운 데서 살아보고 했는데, 예전에 고생한 생각들이 나기도 했다"고 했다.

이씨 역시 "내 일생을 찍은 영화라고, 나를 찍은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보고 나왔다"며 "송강호가 맡은 역할이 나와 비슷하다"고 아내와 같은 감상을 전했다. 

돼지슈퍼는 '기생충'의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과 함께 덩달아 명소가 됐다. 이날 오전에도 외신을 비롯한 취재진들이 찾아오면서 넓지 않은 가게가 사람들로 붐볐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가게를 많이 찾는다. 김씨는 "일본사람들이 특히 많이 오고, 스페인과 영국에서도 오더라"라며 "그전부터 계속 찾아왔는데, 어제부터 특히 사람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씨 등 유명인들을 가까이서 지켜봤지만, 김씨는 "하도 바빠 보여서 말도 못해봤다"며 "감독님이 한번 오셔서 사진이라도 같이 찍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내비쳤다.

"무엇보다 장사가 잘 되는 게 제일이죠. 아직까지 큰 변화는 없지만, 여기 찾아오는 사람들이 음료수라도 하나씩 사먹고 가면 좋겠어요, 하하"

같은 날 찾은 또 다른 촬영지 동작구 노량진동의 '스카이피자' 사장 엄향기씨(62·여)도 "감개무량하고 심장이 벌렁벌렁하다"고 시상식 시청 소감을 전했다. "여기서 (시상식을) 아들이랑 다 같이 봤죠. 마지막에는 박수도 치고. 일본 기자들 6명이 딱 오후 2시에 오더라고요."

피자가게는 '기생충 효과'를 조금씩 실감하고 있다. 엄씨는 "어제(시상식 당일) 집이 여의도라는 젊은 사람이 오후 6시쯤 헐레벌떡 와서는 '봉준호 감독을 좋아한다'며 피자를 사 가더라"며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도 사람이 와서 피자박스를 (기념품으로) 얻어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기택의 가족이 접던 피자박스는 실제 쓰고 있는 피자박스와는 다른 디자인이다.

가게 한쪽에는 봉 감독의 사인과 함께 외국인 관광객들이 '기생충 순례'를 하면서 남긴 손편지도 남아 있었다. 엄씨는 "전혀 대화가 되지 않지만 몸짓 발짓을 하며서 피자를 먹고 갔다"며 "영화를 보고 찾아왔다며, 좋다고 엄지를 들어올린 채 사진도 찍더라"고 했다. 봉 감독에 대해서는 "감독님이 신문에서 보는 거랑 똑같다"며 "말할 때도 존댓말을 쓰고 중심을 잡아서 코치를 하는 것 같더라"고 회상했다.  

가게 앞을 지나다니는 시민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사람들은 가게 앞에 멈춰서서 전경을 찍거나 봉 감독의 사인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아카데미의 기운을 느껴보자"며 사진을 찍는 시민도 있었다.

직장인 최윤진씨(39·여)는 "회사가 근처라 지나다니다 자주 봤는데, 영화를 봤는데도 전에는 긴가민가했다"며 "(상을 탄 이후) 제대로 알게 됐다"고 말했다.

"어제 수상소감을 듣고 기분이 좋았어요. 회사에서 한번 시켜먹어볼 생각이에요. '기념비적인 칸의 느낌을 한번 맛보자'는 의미로 시켜먹으려고요. 하하"

영화 '기생충'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과 국제극영화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4관왕에 오르며 101년의 한국영화사를 새로 썼다. 또 외국어 영화로는 작품상을 처음으로 수상하면서 외국어 영화에 쉽게 벽을 허물어주지 않았던 아카데미 시상식의 92년 역사도 갈아치웠다. '기생충'은 지난해 칸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종려상도 수상했는데,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것은 역대 두 번째다.
 

 

[Queen 김정현 기자] 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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