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내 딸 대학 졸업식이 예정된 날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취소되었어
딸이 어느덧 대학 졸업을 한다니 만감이 교차하는군
만감이 교차한다는 표현은 진부하지만 이대목에서 이 말보다 내 마음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또 있을까
고백하자면 나는 사실 내 학벌 콤플렉스 한풀이를 딸을 통해 한 셈이됐어
순서상 내가 신문사에 입사하는 얘기는 아주 나중에 나와야 되지만 오늘 저녁에 좀 해야 되겠어
언론고시 라고 할 만큼 언론사 입사가 힘든 것은 잘 알거야
나는 부산 소재의 한 사립대학교 재학시절에 신문사 기자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 했지
중편소설 한 편 분량의 수험기는 나중에 자세히 말할 기회가 있겠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시험에 합격했어
입사해서 출근한지 얼마 쯤 되자 사보가 나왔는데 신입기자들의 프로필이 실렸지
프로필에는 얼굴사진과 이름 부서 출신대학이 기재되어 있었어
나는 그 당시 기자증을 받고 사보에 프로필까지 나오니 세상을 다 가진것 같았어
그런데 사보를 본 선배들이 이구동성으로 내게 질문을 했는데 질문의 요지는 네가 나온 대학은 어디에 소재한 대학이냐는 거였지
그제서야 나는 사보를 다시 보았어
그 때 나와 함께 입사한 동기들이 십 오명 가량 됐는데 나를 제외한 나머지 동기들의 출신대학을 보니 대단하더군
그제서야 선배들이 왜 내게 그런 질문을 했는지 이해가 되었고 그 때부터 내 학벌 콤플렉스가 시작되었어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았지
딸이 초등학교 5학년 갓 올라갈 무렵 나는 대단한 결심을 했어
입사시험 과목에 영어가 있어서 영어는 자신 있었기 때문에 딸 영어교육은 내가 시킨다는 결심이었지
교보문고의 영어교재 코너에서 세시간 가량 교재를 비교한 끝에 '쉽게 외우는 영단어' 라는 책을 골랐어
저자를 아직도 기억하는데 서울대 출신의 송인수씨가 쓴 책이야
손바닥 보다 조금 더 큰 사이즈의 그 책은 백 여개의 길고 짧은 영어문장이 실려있어
영어문장을 공부하면 자연히 단어를 익힐 수 있다는 컨셉의 책이야
초등학교 5학년 초부터 중학교 1학년 끝날 무렵까지 저녁 8시부터 9시까지 한시간은 무조건 영어를 가르쳤어
아이의 생일, 설, 추석, 크리스마스 날도 여지없이 책상에 앉혔어
책을 1회독 할때마다 책 맨 끝장의 백지에 횟수를 적고 사인을 하게했어
마침내 그 책 공부를 끝낼을 때 사인의 갯수를 보니 17개 더군
그 책을 17번 반복해서 공부했다는 얘기인데 좀 무식하긴 하지만 결과는 대단했지
목동 학원가에서 고액을 들여 영어를 공부한 아이들을 제치고 상암중학교 교내 영어 경시대회에서 수상을 했어
중학교 3년 동안과 고등학교 2학년까지 한번도 빼먹지 않고 상을 받았지
고 3때는 대회가 없었어
나는 아이들을 영어공부 시킨답시고 이학원 저학원 학원쇼핑하는 학부모들이 제일 한심해
이학원 좋다는 소문에 이학원 가면 저번 학원에서 공부하던 교재는 빠이빠이지
교재 한 권을 죽어라고 반복하면 문리가 트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지금도 굳게 믿고있어
어느덧 딸이 고3 이 되어 학종으로 수시 여섯개 대학을 지원했어
학종은 평가하는 항목이 많지만 생기부에 기재되어 있는 교내 영어경시대회 수상 경력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을것 이라는 사실에 나는 흐뭇했어
최종 합격자 발표날은 밥이 목구멍으로 안넘어가더군
시간이 그렇게 안가더니 결국 발표가 났고 결과는 합격이었어
눈물이 찔끔 날뻔했지
길고 힘들었던 학창시절을 끝내는 딸에게 직접 말로는 못하고 여기에 글로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네
사랑하는 딸아 사춘기 시절 공부하기 싫은 날도 많았겠는데 억지로 책상머리에 앉혀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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