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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도형의 사진과 인생 #47
[연재] 김도형의 사진과 인생 #47
  • 김도형 기자
  • 승인 2020.03.09 0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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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김도형, 인스타그램(photoly7) 연재 포토에세이
사진작가 김도형의 사진-양양 (인스타그램: photoly7)
사진작가 김도형의 사진-양양 (인스타그램: photoly7)

 

여러분의 사진작가 김도형이 오늘은 강화도로 촬영을 갔어

새벽 다섯시에 밥을 먹고 출발했지

내 경험상 좋은 사진은 아침에 나와
해뜨고 두시간 가량이 골든타임이야

그것도 해를 등지지 말고 마주보고 가면 좋은 장면을 만날 수 있어

오늘 아침에도 한바탕 사진춤을 추고 났더니 출출해 지더군

아홉시 반 경 강화풍물시장 단골 순대국집에 갔지

그 집은 이모뻘 되는 초로의 여인 두명이 운영하는데 내가 들어서자 이구동성으로 '오늘은 미남이 첫손님으로 왔으니 장사 잘되겠네' 라고 '분명히' 말했어

위 문장의 분명히에 따옴표를 친것은  결코 내말이 구라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야

어제 오늘 내 외모 자랑질이 하늘을 찔러서 미안하긴 한데 나도 한때 미남 소리 들은건 사실이야

순대국을 시켜놓고 기다리는데 눈이 자꾸 냉장고 속의 강화인삼막걸리에 가더군

저걸 시켜 순대국 먹으며 마시면 딱인데 운전을 해야 되는데 어쩌지

짧은 갈등의 시간을 보내고 결국 한 병을 시키고 말았어

그야말로 딱 한잔만 맛보고 나머지는 가져와 집필실에서 방금 전 마셨지

사실 나는 지난해까지 인음증 환자였어

인음증이라는 말 처음 들어볼꺼야

술을 입에 대면 자꾸 마시고 싶어하는 것이 인음증이야

나는 어쩌다 술을 마시는 스타일 이었는데 술을 한 번 입에 대면 만취 하도록 마셨어

내 인음증의 원인에는 내가 내게 느끼는 연민의 정이 크게 작용했던것 같아

맨정신에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데 술을 마셔서 취기가 오르면 왠지 내가
측은해지고 불쌍하다는 감정이 엄습했던 거지

이런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는 거나하게 마셔줘야 된다는 센치멘탈한 감정이 이성을 지배했던 거야

올해 들어서 그런 버릇은 사라졌어

그 증상을 고치기까지 많은 노력이 있었어

지금은 딱 필요한 만큼만 마시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것에 익숙해 졌어

내 고향집이 예전에 가게를 했다는 얘기는 여러번 해서 알거야

가게를 둘로 나눠 한쪽은 과자와 잡화를 팔고 한쪽은 술을 파는 주점이었지

내가 꼬마 때 우리집 주점에서 술을 마시며 우는 어른들 많이 봤어

과자를 입에 문 나는 그런 장면을 보고 별꼴이 반쪽이라는 생각을 했어

우는 것은 얘기들이나 하는 짓인데 왜 다 큰 어른들이 우냐는 것이었지

우리집은 어릴 때 고향을 떠나 객지를 떠돌던 사람들이 고향생각이 나서 들리는 경우가 많았어

마을에 연고가 없으니 우리 가게에서 술마시며 시간을 보내다 가는 것이었지

가수 김상진이 불렀던 노래 '고향아줌마' 의 고향아줌마가 딱 우리 엄니였어

객지에서 고생하며 살던 사람이 한잔술에 신세타령을 하면서 우는 거였지

그럴때 마다 엄니는 위로의 말을 건냈는데 하도 반복해서 들은 말이라 지금도 잊지 않았어

그것은 바로 '누구나 사는 것이 다 똑 같다. 살다보면 좋은날이 온다' 였어

과자를 입에 문 꼬마였던 내가 어른이 되어보니 왜 어른들이 술을 마시고 우는지
알겠더군

이 신산한 풍진세상을 살아가면서 술잔을 앞에 두고 한번쯤 울어보지 않은 남자는 로보트 라고 해야 맞을거야

이 참에 술마시며 맘껏 울 수 있는 가게를 한 번 차려볼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

타이틀은 '크라잉 바 crying bar' 라고 하면 딱이겠고

기생충의 송강호씨가 '도형아 너는 계획이 참 많구나' 라고 한마디 하겠군

위 사진은 지난번 동해 출장길에서 찍은거야

작품이라기 보다 스케치에 가까운 사진이지

한 평생 한 동네에서 같이 늙어온 갯마을 어머니들의 모습이 한없은 정감을 자아내는 사진이야

이 신산한 풍진세상을 거뜬히 헤쳐오신 저 어머니들이 자랑스럽네

작년 같으면 이렇게 어중간하게 술을 입에 대면 반드시 폭음으로 이어졌는데
걸음 수 만보를 채우기 위해 운동 하려고 신발을 바꿔신고 있어

김도형 확실히 사람됐어

앞으로는 제발 기뻐서 울 일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세상일이 또 어디로 흘러갈지

그나저나 '크라잉 바' 정말 멋진 아이디어 같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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