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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식품 김영식 회장의 멋진 인생 들여다보기
천호식품 김영식 회장의 멋진 인생 들여다보기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02.1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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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치지 않으면 소비자를 미치게 할 수 없다…”


 

[김영식 회장은 2010년 11월 스페인 여행 중에 피켓을 들고 우리나라가 G20 정상회의 개최국임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고 촌스러운 화면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문모델은 아닌 듯한데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산수유, 남자한테 참 좋은데.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라는 멘트를 남기며 고민하는 얼굴을 짓는다. 두어 번 더 영상을 보니 이 광고 참 재미있다. 굳이 효능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어디에 효과가 있는지 짐작이 된다.
CF 속 주인공인 천호식품 김영식 회장은 “‘산수유 1000 프리미엄’ 출시를 앞두고 직원들과 신제품 홍보에 대한 아이디어 회의를 하다 무심코 내뱉은 푸념(?) 한마디에서 광고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광고는 김 회장의 집무실로 광고회사 제작진이 찾아와 ‘뚝딱’ 만들다시피 했다. 신제품에 관련한 김 회장의 자신감은 광고마저 단번에 오케이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처음부터 광고의 성공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광고가 나간 지 10일 후부터 반응이 조금씩 있기 시작하더니 각종 개그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참 좋은데’를 인용한 패러디 열풍이 일기도 했다. 예상치 못한 뜨거운 반응. 김 회장은 CF의 성공을 두고 진솔하고 소박한 영상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조심스럽게 점쳐본다. 광고가 나가기 직전인 2010년 1월에는 산수유 매출이 1억원 정도였는데, 광고가 나간 후인
2월부터는 매달 1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보니 산수유를 통해 벌어들인 지난해 매출액만 1천1백억원에 달했다.
“CF는 2010년 2월에 시작해 12월까지 방영됐어요. 지금은 방송사와 계약이 끝나 더 이상 나오지 않죠. 올해는 2탄을 새로 찍을 예정이에요. 더 재미있고 기발한 카피로 찾아갈 테니 기대해도 좋아요(웃음).”

G20 정상회의 이후 각국 정상들에게 감사편지 받아
평소 사회공헌에 관심이 많은 김영식 회장은 지난해 11월 스페인 여행 중에 피켓을 들고 대한민국이 G20 정상회의 개최국임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G20 정상회의 공식 사이트와 판도라 등 동영상 사이트에 올렸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김 회장의 UCC는 네티즌들의 인기를 얻으며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아내와 떠난 스페인 여행길에서 우연히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한국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을 확인하곤 강한 자부심을 느꼈어요. 하지만 국내에서, 특히 젊은 층에서 G20 정상회의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죠.”
김 회장은 “G20 참 좋은데… 말이 안 통해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라며 이전의 유행어를 패러디했다. 영상 속에서 김 회장은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에게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한국을 설명하고 그와 함께 “코리아 파이팅”이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였다. 소비자들뿐 아니라 젊은 세대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독특한 방법으로 소통한 셈이 됐다.
고정관념을 깨는 아이디어로 새로운 경영법을 선보이고 있는 김 회장은 이처럼 샘솟는 창의력의 원천을 ‘상상하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부산에 있는 천호식품 공장에 외국 바이어들이 밀려들 것이다’, ‘내 손이 약손이 되어서 손을 탁 갖다대면 아픈 사람이 싹 낳을 것이다’와 같은 즐거운 상상은 일을 하면서 자신을 더욱더 탄력적으로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낸다.
“상상을 습관화하다 보면 절로 실천하게 돼요. 작년에 G20 정상회의를 했잖아요. 한국까지 온 손님들인데 그냥 보낼 수 없어 각국 정상 20명과 비즈니스 서밋에 참가한 기업인 120명 등 약 140명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감사편지와 통마늘 그리고 산수유 엑기스를 보냈어요.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등 열두 곳에서 답장이 왔더군요.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어떻게 먹느냐’며 전화까지 줬어요. 그분들이 먹어보고 좋다고 소문이 나면 자연스럽게 외국 바이어들이 줄을 설 거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꿈을 이뤄가는 거죠. 지금도 9개국에 수출하고 있어요. 아직까지 수익은 많지 않지만 처음부터 많이 팔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씨를 뿌려야 열매를 맺으니까요.”

수면제 한 통을 늘 옆에 두고 자야 할 만큼 절박했던 지난날
김영식 회장이 처음 건강식품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를 당하고 난 뒤부터다. 중상을 입고 6개월이 넘도록 깁스를 하고 지냈는데 쉽게 뼈가 붙지 않았다. 사방팔방으로 수소문하던 중 한 지인이 달팽이를 추천해줬다. 그 효과를 체험하고는 식용 달팽이 농장을 운영하며 본격적으로 건강식품사업에 착수했다. 1991년 달팽이 엑기스 사업을 시작하고 3년여 후 ‘대박’을 냈다. 부산에서 현금 보유율 100위 안에 들 정도로 큰돈을 벌기도 했지만 건설업, 황토방, 서바이벌 체인본부 등 무리한 사업 확장과 IMF로 인해 큰 위기를 겪기도 했다.
“순식간에 바닥까지 추락하더군요. 누군가에게 들으니 1998년에는 부산에서 빚 많은 사람 100위 안에 들었대요. 불과 몇 년 만에 완전 상황이 바뀐 것이죠. 1997년 후반기부터는 비참한 생활을 했어요. 동아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 송년회가 있다기에 자존심 버리고 쑥 엑기스를 만들어 가져갔죠. 그때 ‘어정쩡한 가격 파괴는 기업을 망하게 하고, 고객이 만족할 만한 가격 파괴는 기업을 살린다’는 것을 배웠어요.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그들에게
‘사람 병의 원인은 만 가지다. 만 가지 병을 고쳐주는 게 3년 숙성된 쑥이다. 쑥은 여자들 손발 찬 데 좋고 위장병에도 좋다. 20만원에 판매하는데 오늘은 5만원에 팔겠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평소에 구매하지 않던 사람들이 그날은 몇 박스씩 주문하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 55박스를 주문 받았어요.”
55박스를 팔고 남은 마진은 5천원이 전부였지만 이것을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던 중 책상 서랍에서 아내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500만원짜리 반지를 발견하게 되었고,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해 반지를 판 돈 130만원으로 다시 사업에 도전했다.
“130만원을 손에 꼭 쥔 채로 전당포 문을 나섰어요. 그러고는 역삼동에 10평 정도 되는 사무실을 60만원에 얻고, 여직원을 한 명 채용했죠. 당시 여직원은 사무실이 작으니까 월급이나 제대로 주겠냐는 눈빛이었어요. 그래서 40만원을 선불로 줬죠. 남은 돈 30만원 중 20만원을 가지고 전단지를 제작했어요. 직접 돌리려고요. 그 당시에는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뿐이었어요.”
서울에 마땅한 거처가 없었던 김 회장은 가장 저렴한 여관방에서 장기 투숙했다. 당시 저녁식사는 600원짜리 소시지 하나와 소주 한 병이 전부였다. ‘6개월만 이 악물고 옆도 뒤도 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달리자’며 스스로 다짐을 거듭했지만 영화로웠던 과거를 쉽사리 놓진 못했다.
“빨리 전단지를 돌려야 하는데, 부산에서 100위 안에 들 정도로 부자였던 사람이 전단지를 돌리는 신세로 전락했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너무 상했어요. 굳게 다짐하고 잤지만 아침 해가 뜨면 부끄러워서 전단지를 들고 밖으로 나가지 못했죠.”
누구보다도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기에 그러한 현실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사무실 건물에서 뛰어내리려고 마음먹은 것도 여러 번. 재기에 성공하지 못할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 잠자리 곁에는 늘 수면제 한 통이 놓여 있었다.
“너무 힘드니까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당시에 가장 겁이 났던 건 아내의 전화였어요. 집안 살림도 힘이 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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