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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편지문화재단 고도원 이사장과 명상의 숲 거닐다
아침편지문화재단 고도원 이사장과 명상의 숲 거닐다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02.14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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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루쉰의 ‘고향’ 중에서

“그렇습니다. 희망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생겨나는 것이 희망입니다. 희망은 희망을 갖는 사람에게만 존재합니다.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고, 희망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실제로도 희망은 없습니다”
- 2001년 8월 1일 고도원의 아침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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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한결같이 아침에 배달되는 편지가 있다. 편지를 읽다 보면 어쩌면 그리 나를 잘 아는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을 때도 여러 번이다. 천천히 곱씹으며 음미할수록 편지는 더욱 깊은 맛을 낸다. 2001년 8월 1일에 시작된 고도원의 아침편지. 이야기 몇 줄에 웃고 울고 위로 받고 꿈을 찾는 사람들이 이제 218만 명에 다다른다.

아침편지의 자양분, 책을 말하다
충북 충주의 깊은 산속에 자리잡은 명상센터 ‘깊은 산속 옹달샘’에는 춘하추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에 고도원의 집필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만져주는 따듯한 편지가 발송되는 곳에 들어서니 책장마다 가득히 꽂혀 있는 책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대부분의 책은 명상센터 내 도서관으로 옮긴 터라 극히 일부부만 있는 상태라지만 그래도 보통의 서가와 비교하면 누군가는 평생 걸려도 다 못 읽을 정도의 분량이다.
어린 시절 시골교회 목사였던 아버지가 물려준 독서습관은 그의 가장 큰 유산이자 인생 그 자체다. 늘 책을 읽으며 밑줄을 치도록 강조했던 아버지가 싫어 반항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순간이었으리라. 짧은 글, 긴 생각을 담아낸 그의 편지가 탄생한 데는 몇 십 년을 이어온 독서습관과 독서카드가 큰 몫을 하고 있다. 책에서 발췌한 글귀를 담아 차곡차곡 정리해놓은 독서카드는 그가 앞으로 5년간 책을 읽지 않아도 아침편지를 거뜬히 쓸 수 있을 분량으로 정리되어 있다. 인생 자체가 독서라고 말하는 그에게 좋은 책이란 어떤 것일까.
“책은 정신의 산물이자 영적 소산이에요. 다른 사람의 정신에 상처를 내기 위해 책을 펴내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모든 책이 다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자기에게 가장 좋은 책은 가슴을 뜨겁게 하고 녹아내리게 하는 책, 밑줄 긋는 부분이 많은 책이에요. 단 한 권의 책, 하나의 밑줄이 인생을 바꿔놓으니까요.”
책 속에 담긴 영혼을 읽어내고 싶어하는 사람. 지식의 축적물이면서도 저자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저자와 정신적 교감을 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먼저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평소에 독서를 즐겨야 저자의 생각도 쉽게 파악할 수 있어요. 음식으로 치면 처음부터 미식가가 되진 않거든요. 이것저것 먹어보고 엉터리도 맛봐야 진짜 음식 맛을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처럼 한순간에 책을 통해 저자와 교감하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에요. 늘 친구처럼 가까이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죠.”
그는 책을 기계적으로 읽지 않는다. 하루에 서너 권 볼 때도 있지만 ‘칼의 노래’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같이 ‘쫄깃쫄깃한’ 소설들은 한 권을 일주일에서 최대 두 달까지 천천히 음미하기도 한다. 꼭꼭 씹어 행간까지 정말 사귀는 듯한 마음으로 읽어야 진정한 의미의 독서가 된다는 생각이다.

인생을 바꾼 세 번의 기회
누구에게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있기 마련이다. 생각과 행동뿐 아니라 인생 자체를 송두리째 바꿔놓는 순간 말이다. 고도원에게도 그런 때가 세 번 있었다. 첫 번째는 대학 학보사인 연세춘추에서 활동하던 시절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기 위해 연세대 신학과에 진학했지만 대학 학보지에서 기자 일을 경험하면서 그의 인생 방향도 바뀌어 글쟁이의 길을 걷게 됐다. 하지만 당시에 그가 썼던 글이 긴급조치 9호 때 문제가 되어 강제징집을 당했고 결국 졸업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마음으로 포장마차, 문방구 운영도 해봤지만 사기를 맞거나 결국 실패했다.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고통 속에서 자살만도 여러 번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런 시간이 이제 와 돌이켜보면 소중한 경험이 되었죠.”
암흑과도 같은 삶, 한 발짝도 내딛기 힘들었던 시기에 인생의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아내를 만난 것이다.
“아내는 새카맣고 작아지고 움츠러들던 시절에 만난, 저에게는 말벗이자 에너지가 되어준 동갑내기 친구예요.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꿈만 먹고살았어요. 그야말로 황당한 꿈이었죠. 많은 사람들이 꿈을 듣고 나면 눈빛이 달라지고 갈라서거나 다투기 일쑤였는데 아내만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들어줬어요. 조롱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박수쳐준 것이 저에게는 그 어려운 시절을 극복하는 큰 힘이 됐죠.”
6년의 연애 끝에 결혼에 이르기까지 부부에게는 일곱 번의 이별과 재회가 있었다. 지난 시간을 회상하던 그는 자신과 아내는 서로 다른 점이 정말 많은 사람이었다고 고백했다.
“아내와 달리 당시 저는 웃음이 많지 않았어요. 그 사람은 서울 태생에 부잣집 딸인 데 반해 저는 찢어지게 가난하고 촌놈 중에 촌놈이었죠. 또 저는 기독교인이고 그쪽은 불교 신도였고요. 어쩜 맞는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연애하는 동안 사랑하지만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됐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둘이 합해져서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헤어진다고 해서 또 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 번 더 다시 만나자”와 “각자의 길을 가자”를 반복하던 끝에 그는 작심하고 새벽부터 아내를 집 앞에서 기다렸다.
“우연을 가장한 채로 만나야겠다는 생각으로 찾아갔어요. 그리고 집 앞에서 나오는 아내에게 프러포즈를 했죠. 아무것도 없던 상태에서 전기밥솥 하나 놓고 시작한 살림이 벌써 35년이 지나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그 시절, 꿈을 꾸게 하고 어둠의 터널에서 한 줄기 빛이 되어준 아내를 두고 그는 “신의 선물”이라고 표현한다.
“물론 저도 아내와 다투기도 하고 갈등도 있지만 그 추웠던 시절을 생각하면 안 좋은 마음이 오래 못 가죠. 한순간에 바로 꼬리 내리고 정말 사랑하고 감사하고 존경한다는 마음을 갖고 살고 있어요(웃음).”
월간지 ‘뿌리 깊은 나무’ 기자와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로 16년여를 지내온 그가 1998년부터 청와대 연설 담당 비서관으로 살게 된 것은 인생의 세 번째 기회였다. 그가 하는 일은 대통령의 모든 연설문, 기고문 등 대통령을 대신해 글의 초안을 쓰는 것이었다.
“굉장히 힘든 작업이었어요. 긴장과 스트레스가 엄청나 손과 어깨가 마비되어 거의 죽을 뻔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죠. 누구보다 대통령의 생각, 철학, 표현방식을 가장 깊이 꿰뚫고 있어야 했어요. 그만큼이나 세계, 국가, 역사, 민족을 생각하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감각을 기를 수 있었던 시간이었죠.”
5년간의 임기를 마치자 그에게는 정치권 여러 곳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당시 정계에 진출했다면 지금과는 아마 다른 모습이었을 터. 하지만 그는 청와대를 나온 뒤 바로 배낭을 메고 동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몸과 마음에 진정한 휴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정치권에서 제의가 몇 번 더 있었지만 아침편지에 모든 힘을 쏟기로 결심한 그이기에 지금까지도 그 마음을 지켜오고 있다.

‘오늘 편지는 당신을 위해 보냈어요’
아픔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다른 이의 상처에 공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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