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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도형의 사진과 인생 #58
[연재] 김도형의 사진과 인생 #58
  • 김도형 기자
  • 승인 2020.03.20 0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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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김도형, 인스타그램(photoly7) 연재 포토에세이
사진작가 김도형의 사진- 탄현 파주 (인스타그램: photoly7)
사진작가 김도형의 사진- 탄현 파주 (인스타그램: photoly7)

 

고등학교에 올라가니 우열반이라는 것이 있더군
이과와 문과 각각 한개반이 우반이었고 나머지는 열반이었어

싹수가 보이는 학생들을 한데 모아 집중적으로 키우겠다는 의도 같은데 지금 어느 학교에서 그런일을 벌이면 sns에서 난리가 나서 아마 그 학교 문닫아야 될지도 모르지

나는 당연히 열반에 배치되었는데 아침마다 조회를 마치면 열반 수업이 있는 교실을 찾아가야 했어

열반 교실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이백미터쯤 가야됐지

그것은 일종의 수모였지만 스스로 공부에 손을 놓은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어

영어를 가르치시던 서상정 선생님은 참 고마웠지

어느날 아침 열반으로 가고 있을때 마주친 선생님은 내게 아직도 늦지 않았으니 열심히 해서 육사 같은 학교를 가라고 하시더군

중고등학교 6년을 통틀어 내게 그런말을 해준 유일한 선생님이셨어

나는 열반에서 기억에 남을 두 개의 에피소드가 있었어

둘다 순간적인 암기테스트에 관한 것이었지

영어과목 이순옥 선생님은 열반 첫 수업시간에 약간 감동적인 멘트를 하시더군

너희가 열반 학생이라고 기죽지마라
우반 꼴찌와 열반 일등이 차이가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냐고 하셨지

알쏭달쏭하긴 하지만 여하간 우리를 위로 하려고 하신 말씀은 분명했어

어느날 수업시간에 느닷없이 예고도 없는 영어단어 암기테스트를 하겠다고 하셨지

시간은 십분인가를 주고 새 단원의 단어 몇십개를 외우라고 하신거야

이순옥 선생님은 언젠가 이 반에 유독 미남들이 많다고 한적이 있어

그 말을 할때 시선이 내게로 향하고 있었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는데 아마 아닐수도 있을거야

내 아무리 책에서 손을 뗀지 오래라고 하지만 이래봬도 나는 초등학교때 국민교육헌장 먼저 외우는 학생 먼저 집에가기 테스트에서 제일 먼저 교실문을 나선 이력이 있는 사람이야

그까짓 단어 몇십개 정도야 껌이지

이순옥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호감(?)이 없었다면 그러든지 말든지 했겠는데 그날따라 왠지 머리를 한 번 굴려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타임이 아웃되고 끝까지 외운 사람 손을 들어보라 하시더군

나 외에는 손든 사람이 없었지

청산유수같이 외운걸 증명했어

그날 수업을 마치고 본 교실로 돌아갔더니 우반의 한 친구가 너 정말 그 짧은 시간에 그 단어를 다 외웠냐고 하더군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물었더니 이순옥 선생님이 수업에 들어와서 그 얘기를 하셨다고 했어

나 원 선생님도, 겨우 그 정도 사실을 아이들 앞에서 밝히다니

두번째는 생물시간의 에피소드야

역시 똑 같은 방식으로 정해진 시간안에 비타민 B1에서 B12 까지 그것이 부족하면 발생하는 병에 대해 암기하라는 거였어

그 왜 각기병 구루병 같은거 있잖아

못외우면 운동장에서 얼차려를 받아야 한다고 하더군

그 순간 위기 대응반이 마음속에서 즉각 가동되었지

나는 책을 두손으로 부여잡고 안광이 지배를 철할 정도로 책을 뚫어지게 보며 외우기 시작했어

안광이 지배를 철한다는 표현을 여기에 쓰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여하간 나는 온 신경을 집중했지

정해진 시간이 끝나자 못외운 학생들은 자진해서 운동장으로 나갔어

남은 놈은 둘이더군

나외에 그친구는 암기가 매끄럽지 못했지만 운동장으로 나가지는 않았어

나는 일사천리로 대답했지

이거 뭐 쓰다보니 자랑만 늘어놓았네

나는 아직도 중학교 가서 공부에 손 놓은 것을 후회하지 않아

조금 뒤면 얘기가 나오겠지만 어쭙잖은 공부를 해서 어중간하게 풀리는 것보다 사진을 만나 언론이라는 환경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내게는 전화위복의 축복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내일 얘기는 내일 계속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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