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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 "미술관 제대로 즐기는 법"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 "미술관 제대로 즐기는 법"
  • 송혜란 기자
  • 승인 2020.04.07 0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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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 미술로 소통하다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 미술로 소통하다

 

예술이란 궁극적으로 무엇일까? 미술이 주는 시각적인 효과도 좋지만, 사실 예술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넘어 상상하게 하고 또 그 세계를 지향하도록 하는 동력이라고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이야기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다양해지는 사회. 미술관은 항상 그 선두에 서 있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창의성을 갖춘 아티스트의 경쟁력이 더 강화될 미래. 현대 미술관은 과연 어떤 역할을 자처해야 할까?

하나의 전시가 나오기까지 수많은 스토리가 있다. 큐레이터가 전시를 기획할 때부터 작가는 물론 목공, 철공, 운반, 운전 등 다양한 인력이 협업해야 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직렬만 24개에 이를 정도다. 매우 복잡한 과정이 정교하게 엮여 마지막으로 떨어지는 게 전시고, 그조차도 지킴이, 도슨트가 있어야 현존이 가능하다. 어찌 보면 전시는 오케스트레이션과 많이 닮았다는 백지숙 관장. 그중 백 관장은 오랫동안 큐레이터이자 평론가로서 활동해왔다.


그녀가 처음 전시를 기획한 게 1992년. 벌써 27년의 세월이 흘렀다. 백 관장은 초기 독립 큐레이터, 문화평론가로 일하다 잠시 기관에 속해 있을 때가 있었다. 조직이 요구하는 부분과 예술가로서 수반돼야 하는 자유로움 사이에서 아주 힘들었을 터. 아무래도 기관은 딱딱하고, 관료적이며, 형식적이고, 예외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예술 활동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둘 사이를 조정하는 게 제일 어려웠다고 그녀는 토로했다.


직장을 다니더라도 계약직이었기에 안정성이 떨어져 무엇인가 계획을 세울 수 없었던 것은 당연지사다.
“예술은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한 것인데도요.”
그럼에도 그녀가 이 일을 계속해 온 데는 그만한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추구, 확인할 때 가장 보람찼어요.”


예컨대 미술품을 걸기 위해 벽에 못을 못 박게 하는 소소한 규제와 한계를 바꿔나가는 것도 가시적인 성과였다고 그녀는 회상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었지만 말이다. 또한 긴 시간을 함께한 동료 큐레이터, 평론가들이 서로 성장하는 모습을 포착하는 공동체적 유대감도 그녀를 지금의 이 자리에 있게 해줬다. 커먼 그라운드를 기반으로 성장해온 그녀는 어느덧 문화예술계에서 베테랑으로 통한다. 그리고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을 이끄는 관장으로 와 있다.


아트와 테크놀로지


올 초 서울시립미술관장이 된 그녀의 책임감은 사뭇 무겁다.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으나 그녀는 직원들끼리 태스크 포스를 꾸려 여러 가지 아젠다를 중심으로 문제를 해석, 연결, 솔루션을 찾는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실제로 해결책이 적용 가능한지 따져보는 시간도 있었다. 제일 큰 축은 역시 ‘사람’이었다는 백지숙 관장.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관객들, 작가들, 그들의 작품을 관객과 연결하는 매개자인 스텝들.


미술관은 이들이 연합하는 활동의 장이다. 다 같이 힘을 모아 3년 안에 서울시립미술관의 정체성을 다잡을 것이라고 그녀는 포부를 밝혔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남서울미술관을 비롯해 북서울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SeMA창고, 백남준기념관, SeMA벙커 등 7개의 분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 공간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가 그녀에겐 크나큰 과제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남서울미술관을 비롯해 북서울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SeMA창고, 백남준기념관, SeMA벙커 등 7개의 분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 공간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가 백지숙 관장에겐 크나큰 과제다. 백 관장은 다 같이 힘을 모아 3년 안에 서울시립미술관의 정체성을 다잡을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인 서소문관은 한창 공사 중이다. 인터뷰와 촬영을 위해 찾은 남서울미술관을 비롯해 서울시립미술관은 북서울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SeMA창고, 백남준기념관, SeMA벙커 등 7개의 분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 공간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가 그녀에겐 크나큰 과제다.


특히 '거대 도시 서울을 네트워킹하는 현대 미술관의 역할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은 그녀가 향후 서울시립미술관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 큰 그림과 맥을 같이 한다. 아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은 예술의 멋이 그윽한 도시로 변모하지 않을까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에 앞서 서울에는 세 개의 새로운 서울시립미술관 분관이 더 문을 열 것으로 보인다. 서서울미술관과 평창동에 미술관의 자료나 연구기능을 갖춘 아카이브, 창동에는 사진미술관 오픈이 예정돼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서울 도시의 크기만큼이나 볼륨을 갖춘 미술관이 될 거예요. 지리적으로 떨어진 기능을 어떻게 특화할 것인가에 요즘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IT 기술이 안 들어갈 수 없겠지요. 과거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옮겨간 것처럼, 또 필름 영화에서 비디오, 인터넷으로 발전할 것처럼 아트도 테크놀로지와 결합될 겁니다. 미디어도 이 둘의 관계를 해석하는 하나의 틀이기도 하고요. 그 프로세스에서 현대미술이 진화해왔다는 것은 미술사를 통해서도 계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양한 사회, 다양한 표현


더욱이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창의적인 인재가 각광받고 있다. 아티스트들의 경쟁력이 강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다양해지는 사회. 그 흐름은 늘 미술관에서 제일 먼저 느낄 수 있었다. 다양한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 다양한 표현 방식이 눈에 띈다. 전시회장에서 선보일 수 있는 예술의 범주가 한층 넓어지고 있다는 것도 참 반가운 일이다.


올 한 해 현대미술과 씨름해온 백지숙 관장. 관장으로서 그녀의 고민은 많지만, 결은 하나다. 어떻게 미술로 파티를 열 것인가? 어떻게 사람들이 소통하게 할 것인가? 이야기하게 할 것인가? 현대미술만큼 어떤 형식을 가지고 계속 실험하고 도전, 변화해온 매체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관람객은 그림에 어떤 내용이 담겼느냐를 중심으로 볼뿐, 작가나 현대 미술 생태계에 있는 사람들은 그 내용을 어떤 형식으로 재해석해서 보여줄지를 치열하게 고뇌해왔다.
 

그 형식을 새롭게 하는 일 자체가 관객의 사물이나 사람을 파악하는 관점을 바꿔줄 수 있다고 백 관장은 확신했다.
“그런 점에서 현대미술이 다양해진 것은 너무나 당연해요. 그 당연함은 어디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변하는 속도와 유사합니다. 약간 빠르거나 앞선 정도일 뿐이에요.”

이제는 그 형식이 테크놀로지로 결합되어 표현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거기서 미술관은 단순히 전시만 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신진 큐레이터와 신진작가를 발굴, 지원하는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미술관이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는 등 금전적으로 직접 지원해 미술 생태계를 선순환되도록 하는 게 현대 미술관의 역할 중 하나다.
 

창의력 못지않게 중요한 소통능력

예술을 향유하는 공간, 미술관. 미술관은 광장과 닮았다. 두 개의 서로 이질적인 공간이 시대에 따라 겹치기도 하고, 뒤집히기도 하며, 그 영역이 오버랩 되기도 한다. 혹은 완전히 단절될 수도 있다. 사회적인 담론과 미술의 관계가 어떻게 펼쳐지는지 계속 봐온 백 관장은 어쩌면 구리고 낡은 이야기라 할지라도 미술관은 앞으로도 가장 진보적인 담론을 제시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술관이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무중력 상태에서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지난 벨기에 영사관이었던 남서울미술관에도 이미 왜 미술관이 중요한지 인공지능의 모습을 한 아나운서가 이야기하는 영상작품이 전시돼 있다. 미술관을 안내해주는 안내 로봇도 있다. 단지 에이아이와 비판적인 거리를 확보할 것인가, 산업적인 측면에서 말하는 에이아이, 노동과 관련된 인공지능의 새로운 롤에 대해서는 작가마다 해석을 달리할 수 있다.


이때 개인의 창의력만큼이나 협업능력이 요구되는 인공지능 시대에 어떻게 정확하고 심도 있는 이야기로 서로의 생각 차이를 좁힐 수 있을지는 작가들에게 예술적 감성 못지않게 중요한 이슈다. 특히 협업정신은 후배 큐레이터, 신진 작가에게 그녀가 늘 강조하는 점이기도 하다.


미술관을 제대로 즐기는 법


수많은 것들이 한 데 집합된 미술관이라는 공간은 어떻게든 방문하는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그녀는 믿는다. 미술이 보이는 세계를 넘어 상상하게 하고, 그 세계를 지향하도록 하는 동력이 있기 때문이다.


“미술이야말로 우리가 가보지 않은 세계, 시간에 대해 예측, 끝까지 그 한계까지 밀어낼 수 있는 경험들을 제공하는 예술 장르인 셈이지요.”
이에 백 관장은 퀸 독자들에게 미술관을 제대로 즐기는 팁을 공개했다.
 

실제로 그녀가 잘 써먹는 기법이다. 바로 국내 미술관을 마치 외국인 관광객이 되어 들어가는 것.


“우리가 해외여행을 가면 새로운 경험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잔뜩 품고 미술관에 가지요. 그 미술관에서 만나는 작품들, 사람들, 공간적 체험들, 건물들이 평소 쓰지 않던 근육이나 세포를 자극하고 단련하는 계기가 돼요. 한국에 있는 미술관을 들어갈 때도 이러한 마인드 셋을 하면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낯설게 보기’와 같다.
“그래서 더 집중할 수 있어요. 이국적인 풍경을 기억 속에 저장하겠다는 강력한 욕망을 갖게 되는 것처럼요.”


자녀의 미술관 문턱 낮추기


이를 자녀교육 측면에서도 활용해 볼 수 있다는 백 관장. 다만 이때는 무엇보다 양이 절대적으로 우선시 된다. 아이들과 무조건 자주 미술관에 들르라는 의미다.
“아이의 미술관 문턱을 조금 낮출 필요가 있어요.”


어릴 때 운동을 많이 하면 몸에 배는 바람에 커서 운동을 안 하면 견딜 수 없다. 미술관도 신체적인 체험이다. 어려서부터 아이가 미술관에 종종 가 예술을 쉽고 편하게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녀는 재차 강조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백지숙 관장이 미학, 미술 쪽으로 진로를 구체화한 것도 유년 시절 스스럼없이 예술을 접한 게 큰 바탕이 되었다.


“부모님이 매달 미술 잡지를 정독했었고, 미술학원 선생님이 옆집에 살아서 친하게 지냈거든요. 자연스럽게 미술관도 자주 보러 다니게 됐고요.”


서울 시내에 있는 미술관과 박물관만 170여 개에 이른다. 한 달에 한 번씩 아이들 손을 잡고 미술관에 들러보는 것은 어떨까.
“부모님부터 잠시 스마트 폰을 꺼둔 채 미술관으로 접속해보세요. 복잡한 도시 삶 속에서 벗어나 새로운 차원으로 이동할 수 있답니다.”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 촬영 협조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 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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