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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도형의 사진과 인생 #80
[연재] 김도형의 사진과 인생 #80
  • 김도형 기자
  • 승인 2020.04.10 0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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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김도형, 인스타그램(photoly7) 연재 포토에세이
사진작가 김도형의 사진- 고성 경남 (인스타그램: photoly7)
사진작가 김도형의 사진- 고성 경남 (인스타그램: photoly7)

 

살아오면서 술에 관해 한가지 아쉬운 것이 있어

가려리 옛집, 그러니까 우리 가게에서 팔던 막걸리는 요즘의 그 어떤 막걸리보다 맛이 좋았지

아침마다 십리쯤 떨어진 마을의 양조장에서 밤새 만든 술을 지금도 이름이 기억나는 성환이 형이 경운기에 싣고 왔어

한말짜리 말통에 담아온 막걸리를 큰 독에 부어놓고 팔았어

그 막걸리 걸쭉하기가 이루 말할수 없었어

지금의 시중 막걸리는 너무 묽어

술을 좀 일찍 배워서 그때 그 막걸리를 실컷 마셨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후회되는 거야

가게에는 맥주 소주 막걸리에 포도주 까지 종류별로 술이 있었지만 나는 입에 대지 않았어

고등학교 졸업무렵 한마을에 술을 엄청 즐겨마시던 친구가 있었어

마주는 앉았지만 술을 마시지 않는 나를 보고 그 친구는 '술을 마셔봐, 술을 마시면 철학적으로 큰다' 라고 하더군

그 친구 말대로 나도 술을 마시고 철학적으로 커보고 싶었지만 결국 술을 못배운 채로 대학에 입학했어

입학하고 얼마되지 않아 좀 희안한 일이 일어났어

어느 날 학교에 있는데 어떤 여대생이 내게로 다가왔어

본인을 무용학과 학생이라고 소개하면서 무용실에서 연습하는 모습의 사진을 찍어줄수 있겠냐고 하더군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오십여명의 사진전공 학생중에 왜 하필 내게 일면식도 없는 여대생이 그런 부탁을 했을까

약속한 날짜에 사진을 찍고 흑백으로 인화해서 사진을 주니 고맙다며 맥주를 한 잔 사겠다고 하더군

시간이 언제 좋냐고 묻길래 아무때나 좋다고 했더니 바로 그날 우리는 학교앞 카페로 갔어

결국 이 얘기를 하려고 서두가 길었는데 그 맥주를 앞에두고 나는 너무 촌스런 짓을 하고 말았어

스토리가 그렇게 전개되어 묘령의 여학생과 맥주잔을 사이에 두고 앉는 좋은 기회를 가졌으면 시원하게 들이키면 될일을 나는 좀스럽게 홀짝홀짝 새 물먹듯이 마시고 있었지

그랬더니 그 여인이 무슨 대학생이 맥주도 못마시냐고 하더군

인천 출신이라고 했어

얼굴도 참 예뻤지

요즘 만약 그런 상황이 벌어졌으면 말술을 마다하지 않고 청산유수로 떠들텐데 숙맥중의 숙맥을 앞에 앉혀놓고 좀 답답했을거야

사나이답게 한 잔 마시고 '왜 하필 내게 사진을 부탁하셨나요' 라고 똑부러지게 물어봤어야 하는건데 후회막급이지

그 이후로 그 여학생과 나는 서로 엇갈리게 휴학을 했는지 볼수가 없더군

위 사진은 그 옛날 술도가가 있던 내 고향마을 근처의 바다야

해질녘이면 그야말로 저녁놀이 타오르는 술익는 마을이었지

말나온 김에 서울 장수막걸리라도 한잔 해야 쓰것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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