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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의 열정 내려놓고 나니 어느새 환갑을 맞다’ 자연인으로 돌아온 유인촌 전 장관의 아직 끝나지 않은 젊음
‘3년의 열정 내려놓고 나니 어느새 환갑을 맞다’ 자연인으로 돌아온 유인촌 전 장관의 아직 끝나지 않은 젊음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03.1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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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내게 남은 이미지가 있어 당장은 무대 위로 올라가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얼굴에 분장하지 않아도 될 만한 때가 오면 다시 무대에 설 것이다. 나는 장관이기 전에 배우이니까”

“전원일기 둘째 아들이 왜 양복 입고 뉴스에 나오는 거야?”
벌써 3년 전, 팔순을 넘은 할머니가 TV를 보다가 이렇게 물었다. 정치가 뭔지, 장관이 어떤 자리인지 모르는 할머니로서는 당연한 질문이었다. 아직도 할머니 머릿속에는 유인촌은 고위직 관료가 아닌 그저 ‘전원일기 둘째 아들’이었던 것이다.
얼마 전 역대 최장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퇴임한 ‘전원일기 둘째 아들’은 임기 내내 각종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장관이었다. 정권 초기에는 몇몇 산하단체장들을 하차시키는 데 앞장섰다는 말을 들었고, 직설적인 화법과 행동으로 인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 때문에 호감형 배우였던 그는 장관 취임 후 ‘완장’이라는 권위적인 이미지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직접 만나본 유인촌은 권위적이기보다는 소탈했다. 인터뷰 도중에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악수는 물론 사진 찍기를 청해도 일일이 응했다.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는 모습은 영락없는 배우였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나서인지 그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자연인으로 돌아온 현재 근황
장관에서 다시 자연인으로 돌아왔는데 요즘 어떻게 보내고 있나.
퇴임하고 앞으로 할 일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다. 어떤 큰일을 하려는 건 아니고 사회에서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장관 일을 2년 11개월 동안 했는데, 개인적으로 보면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받은 만큼 사회에 환원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늘진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중에서 청소년을 위한 일에 집중하고 싶다.
당분간은 좀 쉬겠다고 말한 것 같다. 여행은 다녀왔나.
여행은 안 갔다. 앞서 말한 일들을 준비하고 생각하는 것이 쉬는 거다. 쉬면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계획대로 진행하고 있다. 우선 국악 오디오북을 만들려고 한다. 우리 음악이라고 해서 우리가 국악을 잘 알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 못하지 않는가. 그래서 국악 하는 사람들과 같이 오디오북을 엮을 예정이다. 또 소년원, 쉼터에 있는 아이들에게 연극 교육을 해볼까 준비하고 있다. 법무부가 이 아이들을 상대로 연극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효과가 무척 좋았다고 한다. 법무부 쪽에서 내가 해주면 굉장히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준비하고 있다.
장관 자리에서 내려온 지금 홀가분하면서도 아쉬운 마음도 있을 것 같다.
아쉬운 마음은 별로 없다. 2년 11개월이나 했으니 국민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그 자리에 있으면서 해야 할 일, 계획했던 것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일단 제도를 바꾼다든지, 법을 바꾼다든지 하는 것들은 생각한 대로 다 했다. 할 만큼 했고, 적당한 시기에 퇴임했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다. 그동안 씨를 뿌렸던 일들이 꽃을 피우기를 바랄 뿐이다.

‘전원일기 둘째 아들’, 최장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되다
자유로운 예술인이었는데 어느 날 제약이 많은 관료가 됐다. 그 자리가 힘들지는 않았나.
많이 힘들었다. 출근도 힘들고 회의하는 것도 힘들었다(웃음). 정해진 틀이 있는 자리잖은가. 그 틀에 적응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주어진 일인데 어쩌겠나. 자유로운 생활을 하다가 제약이 많은 자리에 와서 힘들었다기보다 누구든 힘들어하는 자리일 거라 생각한다. 자기 개인의 삶을 돌아볼 틈이 없는 자리다. 그래도 문화부에 오기 전에 서울문화재단 대표를 3년 정도 하며 준공무원 생활을 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연기자와 장관 중 어떤 자리가 더 행복했나.
글쎄, 언제가 더 행복했다는 건 잘 모르겠다. 연기자로서 장관으로서 의미는 다를 수 있지만 나름대로 행복했던 것 같다. 사실 연기자나 장관 일이나 비슷하다. 무대 배우는 자기 수련의 과정이 매우 혹독하다. 왜냐하면 배우가 어떤 행위를 하면 관객들은 거울을 보듯 바라보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다 보니 나름의 책임이 있는 거다. 좋은 연극을 한 편 봤을 때 그것을 보고 자기의 삶을 되돌아보며 성찰하게 되지 않는가. 그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정치적인 일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대중한테 끼치는 영향이 크다. 물론 방법은 다르기는 하겠지만. 그래서 크게 연기자와 장관 사이의 이질감 때문에 힘들지는 않았다. 나름의 성취감이 있기에 두 자리에서 모두 행복했다.
장관 생활을 하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
연기자로서 갖고 있던 것은 모두 잃었다. 예전에는 사실 안티가 거의 없었다. ‘전원일기’ 같은 작품을 오래했기 때문에 농촌에 가든 어디 가든 계층에 상관없이 좋아해줬다. 그런데 장관 생활을 하면서
“나 예전에 전원일기 용식이 좋아했는데 요새는 싫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정치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입장에 서니까 반대의 목소리가 생기게 됐는데, 개인적으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평생 좋은 소리만 듣고 살겠는가. 올바른 일이라면 싫은 소리를 조금 듣더라도 개선하고 개혁하고 바꿔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어떤 장관이었다고 생각하나.
예술계 현장에서 온 사람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색깔로 일을 하지는 않았다. 요즘 말하는 ‘보수다 진보다’, ‘좌파다 우파다’ 이런 개념을 가지고 일하지도 않았다. 특히나 문화예술계는 모든 걸 보충하고 개선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게 갈라서 일해서도 안 되는 자리였다. 일하면서 갈등도 있었고, 말들도 많았지만 어떤 한쪽에 치우쳐서 결정하지는 않았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재임 시절 유난히 정치적인 인물로 부각됐다. 특히 일각에서는 정권의 완장 역할을 했다는 비난도 있었는데, 이렇게 비치는 데 대해 아쉬움도 클 듯하다.
처음 취임하고 모 일간지에 기사가 나간 것이 시작이었다.var ___BANNER = "ban_1681867254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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